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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by 작은영웅

요리에 관한 한 자부심이 있다. 도전하기만 하면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런 이유 없는 자부심은 드라마 ‘대장금’에 장금이처럼 절대 미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나는 시각은 별로지만 후각과 미각이 매우 발달해 있다.

남편 차를 타면 다른 사람이 탄 흔적을 냄새로 느낄 정도로 예민한 후각을 자랑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제 술 마신 사람이 탔었나 봐.”, “어제는 샤넬 향수를 쓰는 여자가 탔었군.” 내가 이러면 남편은 식겁한다.

미각도 예사롭지 않아서 식당에 가서 뭔가를 먹으면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예측이 가능하다. 마늘과 후추와 같이 강한 맛의 식재료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나의 미각이 예민한 탓일 것이다.

하지만 절대음감은 있으나 피아노 연주를 못하는 사람처럼 나 또한 절대미각은 있으나 요리를 잘하지는 못한다.


일단 나의 요리 역사를 되새겨 보자. 아빠는 성질이 급하고 음식맛에 대해 까다로운 분이셨다. 식사를 하시면서 맛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기에 엄마는 심혈을 기울여서 음식을 만드셨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침 내내 도마질 소리가 들려서 기대를 하고 식탁에 앉으면 된장찌개 하나가 놓여있곤 했다. 성질 급한 아빠는 이런 엄마가 못마땅했던 것 같다.

가끔 엄마가 외갓집에 가셨을 때 아빠를 위해 김치찌개를 끓인 기억이 있다. 조미료를 엄청 넣었던 것 같은데 아빠가 맛있다고 해주셨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끓인 음식이라 그러셨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때부터 요리에 자신감이 생겼다. 엄마도 듣지 못하는 칭찬을 내가 들었으니까.


동생이 넷이었던 나는 부모님이 안 계신 주말에 만둣국이나 카레, 짜장 등 일품요리를 만들었다. 아주 맛있게 먹어주는 동생들이 있어서 요리 자신감은 점점 강해졌다. 지금도 동생들은 그때 먹었던 음식 얘기를 한다. 너무 맛있었다고. 뭘 해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간편한 음식들을 이것저것 많이 만들었고 그때마다 동생들은 무조건 좋아해 주었으니 요리의 보람이 있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빠와는 다르게 무조건 맛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 살게 되었다. 맛이 없으면 안 먹을지언정 맛없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남편이었다. 그러니 또 요리 자신감은 상승할 수밖에. 나 스스로 입맛이 까다로우니 간이나 맛이 기본은 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다양한 어린이 음식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한 가지 요리로 한 끼를 해결하는 일품요리를 주로 했다. 밑반찬을 절대 먹지 않고,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음식은 냉장고 냄새가 난다고 먹지 않는 큰 애 때문이기도 했다.

매 끼니 새로운 요리를 하다 보니 반복되는 레퍼토리였지만 잘하는 음식이 몇 가지로 압축되었다. 입맛 까다로운 큰애가 좋아하는 음식만 하게 되기도 했다. 주로 닭요리를 많이 했다. 큰애가 뭐든 잘 먹는 아이였다면 내 요리 솜씨도 크게 향상되었을 것이다.

까다로운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도 탄생하는 법, 나의 요리 스승은 어린아이였고 그래서 내 요리는 어린이 수준에서 머물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손님 초대 요리를 잘 못한다. 일단 그런 기회를 만들지 않는다.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음식 먹이는 것을 즐기는 대갓집 큰 머리 같은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그런 일은 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생각만 해도 머리가 무겁다. 동시에 많은 음식을 하는 건 두렵기까지 하다. 그래서 남들이 다하는 집들이도 음식은 밖에서 먹고 집에서는 다과를 먹는 정도로 해결했다.

남편도 친구들을 끌고 오는 사람은 아니어서 그럭저럭 그런 경험 없이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요리에 대한 로망은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소소한 파티 음식을 맛깔스럽게 만들어서 대접하고 싶다.

어느 낯선 나라에 가서 뚝딱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외국 사람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다. 특별한 노력이 없어도 조금만 마음을 쓰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이들도 분가하고 남편도 대부분의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는 환경에서는 요리할 일이 거의 없다. 나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하기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혼자 뭘 먹어보겠다고 이것저것 만든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미역국이나 떡국 같은 것을 잔뜩 끓여서 냉동실에 넣어 놓고 하나씩 꺼내 먹는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가 텅 비어서 어쩌다 남편을 위해 뭔가 할라치면 사야 할 게 너무 많아 외식을 하는 길을 택하곤 한다.


힘들긴 했지만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같이 맛있게 나누어 먹었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쓸쓸하게 혼자 맛없는 밥을 먹고 있다 보면 인생의 길목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은 그 순간 누려야 할 행복도 함께 지니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을 위해 요리하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과 남편을 지켜보던 나의 따스한 눈길이 있던 오래전 그 식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온다.

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워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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