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잘한다면 나의 세상이 달라질 것 같다. 일단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 경기도 일대에 퍼져 있는 예쁜 카페들, 꽃이 피는 멋진 장소들을 나 혼자서 다녀올 수도 있고 딸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운전이라는 도구를 갖추면 나의 여행은 날개를 달 텐데. 운전을 못하니 걸어 다니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다.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틀어 놓고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는 나의 멋진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온갖 상상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과거의 접촉사고, 당황했던 기억들이 물밀 듯 밀려오면서 의욕을 꺾어 놓는다.
자전거와 같은 단순한 탈 것부터 바퀴 달린 것들이 모두 두렵다. 속도감이 무서운 것 같다.
자전거 타기는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배우기 시작했다. 베르사유 궁전에 갔을 때 자전거를 대여하면 쉽게 다닐 수 있는 곳을 종일 걸어 다니면서 자전거 타기가 절실해졌다. 게다가 유럽 거리에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풍경도 흔했으니 그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남편을 끌고 공원에 나가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리가 짧아서 작은 자전거를 활용했다. 열심히 연습하니 어느 정도 탈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거리를 한 번 달려봐야 몸이 기억한다고 실전을 해보기 위해 강화도 해변 자전거도로를 달려보자고 했다. 차도와는 시멘트벽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안심이 되기도 해서 일요일 아침 강화도로 출발했다.
자전거를 대여해서 10킬로 장정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탄했다. 하지만 내리막길이 문제였다. 내리막길에서 속도가 나자 두려운 마음에 손을 뻗쳐 브레이크 잡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자 내 자전거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앞에 사람들을 모두 제치면서. 나는 비키라고 소리를 내지르며 달렸다.
내 소리에 다들 비켜났으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유유자적 달리는 사람은 내 소리를 듣지 못했고 나는 그 사람의 뒤꽁무니와 충돌했다.
몸이 둥 뜨면서 날아서 곤두박질쳤다. 자전거는 망가졌고 나는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넘어졌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온통 멍투성이가 될 정도였다. 날벼락을 맞은 운전자는 거의 다치지 않고 나만 다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뼈가 다치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다.
망가진 자전거를 보상해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속에서 남편에게 다시는 자전거를 타지 않겠다고 했다. 그걸로 자전거에 대한 야망을 접었다.
자동차 운전은 다르다. 자전거는 위험하지만 자동차는 껍데기가 있어 안전하다. 이런 설득에 힘입어 자동차 운전을 시작했다.
운전만 하면 아이들도 데리러 가고 출퇴근도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걸어서 출근하던 직장이 신도시로 이사를 하면서 멀어진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전에 따 놓은 장롱면허는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간의 운전 연수를 하고 운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출퇴근 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연수받은 대로 정해진 길을 따라 출근하고 퇴근만 반복했다.
그마저도 비가 오면, 밤이 되면, 눈이 내리면 겁이 나서 할 수 없었다. 차를 타고 다닌다기보다는 차를 모시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준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고 조금은 날씨가 안 좋아도 차를 두고 택시를 탔다. 새로운 장소는 주차 걱정 때문에 차를 가져갈 수 없었다. 아이들을 태워본 적도 없었으니 아이들은 내가 차을 운전한다는 사실을 거의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계속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생각했으나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쉽게 하는 운전을 왜 나만 이렇게 무서워하고 어려워할까 고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가변운 접촉사고를 몇 번 겪고 나니 그나마 있던 용기도 사라졌다. 남편은 출퇴근 시간에 걸려오는 내 전화가 무섭다고 했다.
이렇게 꾸역꾸역 4년 정도 운전을 했다. 퇴근 후에 볼 일이 있으면 집에다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정도였으니 내게 자동차는 편리한 도구가 이니라 짐이었다.
같이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모두 적으로 보였고 운전을 하면서 나의 정신세계는 피폐해졌다. 거리를 달리며 차 안에서 나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멋진 상상은 내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세계였다.
이렇게 근근이 운전을 이어오던 나는 직장의 위치가 멀어지면서 운전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가는 길에 끼어들기를 해야 하는 상시 정체 구간이 있었는데 여기를 통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전을 그만두고 당시 운전면허를 딴 큰 딸아이에게 차를 줬다. 다행히 큰애는 운전을 무서워하지 않고 곧잘 하는 것이다. 기특했다. 그래서 바로 넘겨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나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운전은 나의 길이 아니었다.
튼튼한 두 다리와 교통카드만 있으면 어지간한 곳은 다 갈 수 있으니까. 운전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이제 넘보지 않을 생각이다. 4년을 버텨냈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스트레스 지수만 올라갔으니 미련을 갖지 말자.
이런 마음으로 운전을 접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아이들이 나를 데리고 다녀줄 것이고, 또 남편이 있어서 필요하면 운전을 해줄 것이니까.
돌아보면 운전 잘하는 친구들도 많다.
차가 없어서가 아니라 차가 무서워서 운전을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으면 만나보고 싶다.
아직 그런 사람을 못 봤다.
아쉽다. 나만 특이한 사람인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