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누군가가 내게 맘에 드는 집을 하나 준다고 하면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을까?
혹시 마법사가 나타나서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으니 이참에 제대로 내가 원하는 집이 어떤 집인지 생각해 두어야겠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저런 집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참 행복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드는 집을 만난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마당에는 잔디가 있고 현관에는 빨간 자전거가 하나 놓여 있다. 현관 입구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이 화사함을 더해 준다.
그런 집을 부러워하다가 '저렇게 화초를 가꾸려면 얼마나 품이 많이 들겠어. 나한테는 맞지 않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한테 맞는 집은 어떤 집일까?
집의 구조는 아파트가 좋을 것 같다. 청소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1인으로서 너무 넓지 않은 집에 남편과 같이 쓰는 침실과 거실, 나눠 쓰는 방이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
거실과 주방은 조명이나 장식을 감상카페 분위기로 꾸며서 누구든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침실은 아늑하고 무드 있게 꾸며야지.
각자의 방은 각자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하는 공간으로 취지에 맞게 만들고.
그리고 드레스룸이 하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나이 들면 옷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 테니 이건 좀 생각을 해봐야지.
다음은 집 바깥으로 나가 보자.
가까운 곳에 공원과 카페 밥집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한 바퀴 도는 데 최소 1킬로가 넘는 예쁜 공원이 있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고, 아늑하고 조용한 카페가 집 근처에 있어서 아지트가 되면 좋겠지.
노트북을 들고나가 글도 쓸 수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게 통창이 있어서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통장으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그런 카페가 있었으면 좋겠다.
밥집은 혼자서 맛있게 식사가 가능한 한상 요리를 하는 집이면 좋을 것 같다. 일식이든 한식이든 정갈한 한 상을 차려주는 그런 집이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쓰다 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도 얼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둘이 살기에 넉넉한 크기의 아파트이고 정원에서 보이는 풍경도 그럴듯하고,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든지 감성카페로 꾸밀 수 있는 곳이다. 조금 멀긴 하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넓은 공원이 있고 밥집이나 카페도 널려 있는 곳에 살고 있으니까. 운동 삼아 걸어가면 일석이조까지 되는 좋은 곳에 있는 좋은 집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래서 사람은 주변을 돌아봐야 하나 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잠시 잊고 새로운 것을 꿈꾸고 있으니.
그럼 조금 나아가서 앞으로 나의 삶의 패턴과 연관해서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남편이랑 나랑 은퇴를 하고 좀 더 자유로운 몸이 되면 한 달씩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남해 일주, 동해 일주, 서해 일주 이런 식으로 한 달씩 떠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출퇴근하는 일은 하면 안 될 것이고 프리랜서 같은 일을 해야겠지. 남편이 은퇴하고도 일을 계속한다면 쉽진 않겠지만. 어쨌든 시간을 내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요즘 한 달 살기가 유행인데 나는 한 달까지 살고 싶지 않다. 지루할 것 같아서이다.
몇 가지 명승고적과 자연환경을 빼면 거기가 다 거기이지 않을까 싶다. 짧은 기간에 현지 사람들을 사귀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친구들을 놀러 오라고 할 만큼 안정적이기도 않을 테니 일주일 정도만 머물러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 도시의 번화가에 자리 잡은 숙소를 정하고, 가급적이면 걸어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그 도시의 삶을 즐겨보는 것이다. 주변 관광 명소도 둘러보겠지만 그 동네 맛집과 카페들을 찾아다니면서 천천히 즐겨보는 것도 좋겠지.
이렇게 국내 여행을 어느 정도 하면 해외로 나가볼까 한다. 해외는 대도시 위주로 한 달 살기를 해볼 생각이다. 파리, 런던, 바르셀로나, 프라하 이런 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 한 달이 길면 일주일 살기라도. 이렇게 주거지를 옮기며 살다 보면 같이 사는 남편도 조금은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런 삶이 내게 허용되려면 생계 걱정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동으로 돈을 버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그런 생활 중에도 돈벌이가 가능한 직업을 갖고 있어야겠지.
아침에 일어나서 아름다운 길을 달리고, 마을 빵집에서 갓 나온 베이커리와 채소와 과일로 아침 식사를 하고, 거리를 산책하고 점심은 맛집을 찾아 먹고 오후에는 노천카페에 앉아 햇빛바라기를 하다가 저녁은 와인이나 맥주를 곁들여서 간단하게 먹고 집에 와서 쉬는 하루.
생각만 해도 즐거워진다. 이런 삶도 지속되면 싫증 나겠지만 일단은 해보고 싶다.
혼자서 말고 남편과 같이.
혼자서 이런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맘 맞은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욱더 좋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다가올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지금은 건강을 관리해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가끔씩 주말에 실전 연습을 좀 해둬야지.
집 근처에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