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외식을 하다 보니 그중 자주 가는 집이 생겼다. 매번 새로운 곳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느낌이 좋고 맛이 좋으면 주기적으로 가게 된다. 그런 집을 소개해 볼까 한다.
그 첫 번째가 칼국수집이다. 면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히 면발이 굵은 것은 특히나 싫어하는 내가 이 집을 자주 가게 된 것은 팥죽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팥칼국수인데 이건 2인분만 판다. 혼자서 2인분을 먹을 수도 없고 주변인 중에 팥칼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다지 없어서 같이 가줄 사람도 없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새알팥죽이다. 새알은 찹쌀로 만든 것이어서 전에는 동짓날 먹는 특별 음식이었다. 익숙한 맛이 아니어서 내키진 않았지만 이 집의 팥국물을 먹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주문할 때 ‘새알은 조금만 주세요’라고 하지만 이 집 인심은 새알을 20알을 준다. 결국 10알 정도를 남기며 먹는다. 진한 팥국물에 설탕을 넣어 추운 날 먹으면 온몸이 따뜻해진다. 서비스로 주는 보리밥은 팥죽을 다 먹고 난 후 단맛에 느끼해진 입맛을 달래는 용도로 먹는다. 배는 엄청 부르지만 죽이라서 배가 금방 꺼지고 무엇보다 속이 편하다.
두 번째로 자주 가는 집은 브런치 뷔페이다. 사진작가인 부부가 여행을 다니다가 포르투갈의 한 민박집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는 이 집은 골목길에 숨어 있고 간판도 잘 보이지 않지만 갈 때마다 문전성시다.
월~수는 요리를 연구하고 목~일만 문을 연다. 그것도 9시부터 2시까지이다. 애들이 좋아해서 주말에 가족끼리 자주 갔던 곳인데 요즘은 혼자서도 간다.
수요일 밤에 인스타에 그 주의 메뉴가 공지된다. 주마다 바뀌는 메뉴가 기대돼서 인스타를 꼭 확인하고 이름도 생소한 메뉴들이 궁금해서 가보게 된다. 혼자 가면 조금 미안할 정도로 웨이팅이 있지만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사장님 때문에 부담 없이 가게 되는 것 같다.
식당의 분위기는 외국 어느 나라 홈파티에 초대된 느낌이다. 종류가 많지 않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상차림이다.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는 대식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메뉴도 한식보다는 외국 음식이어서 주로 손님들이 여자들이거나, 연인들이다. 남편도 한 번 같이 가봤지만 딱 한 가지 한식 메뉴만 줄기차게 먹고 먹을 게 없다고 하길래 다시는 데려가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엄청 가고 싶을 때 여기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여행 사진을 보면 옛 추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월~수에 브런치 뷔페에 가고 싶을 때 가는 곳도 있다. 여기는 앞서 소개한 곳보다 훨씬 규모가 큰 대형카페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일단 음식이 조금 더 다양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난 주로 창가에 있는 일인석에서 먹는데 창밖을 바라보며 음식을 먹는 게 비 내리는 날이나 눈 내리는 날에 운치 있다. 사람들이 많아서 음식이 꾸준히 새로 공급되는 것도 맘에 들고 여기도 매주 음식이 바뀌는 게 자주 가게 되는 이유인 것 같다.
가족 단위나 모임 손님들이 많아 북적거리고 소란스럽다는 것이 흠이긴 하다.
세 번째는 오마카세이다. 가성비 좋은 오마카세로 소문난 곳이다. 한 달 전에 예약해야 안전할 정도로 인기 오마카세이지만 난 혼자라서 갑자기 검색해도 한 자리 정도는 비어 있을 때가 있다. 오로지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곳이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면 10명이 주방장을 중심으로 둘러앉는다. 낯선 사람들과 한 자리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모두 주방장을 향해 앉아 있어서 말을 많이 하면 수업 시간에 떠드는 학생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혼자 가서 밥만 먹어도 어색하지 않다. 말없는 모범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과묵하고 진지한 30대 주방장이 하나씩 음식을 접시에 올려주며 설명해 준다. 그러면 경건하게 음식을 먹는다.
주방장은 주로 초밥을 만들어 주고, 주방에서는 따뜻한 음식을 준비해서 중간에 제공한다.
이렇게 하나씩 받아먹다 보면 어느새 배가 불러오고 1시간 가까운 식사 시간이 끝나면 뿌듯한 기분으로 식당을 나서게 된다.
다만 이곳이 갈수록 예약이 힘들어지는 게 문제다. 한 달 전에 오픈되면 수강신청하는 느낌으로 예약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입장할 수 있다. 나 같은 사람은 포기각이다. 평일 점심때 가능하다면 도전해 볼 수도.
마지막은 남편과 같이 가는 곳들이다. 주로 보양식이나 탕 종류의 음식을 많이 먹는데 동태탕, 삼계탕, 갈비탕, 김치찌개 등이다. 생존을 위한 음식들이다 보니 밥 하기 싫은 저녁이면 남편의 의사를 존중해서 이런 식당들을 간다. 남편이 선호하는 음식이니까 식당도 남편이 좋아하는 곳으로 간다.
가끔 궁금해지긴 하다. 남편은 정말로 이런 곳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돈을 아끼려고 이런 곳을 가는 걸까. 나중에 돈이 많았지만 진지하게 물어볼까 한다. 지금 물어보면 당연히 맛있어서 간다고 할 테니까.
남편은 한 곳에 맘에 들면 질리도록 가는 스타일이라 같이 가는 게 지겨워서 혼자 다녀오라고 할 때도 많다.
식당도 각자 즐기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서로 마주 보는 식당에서 나는 리조또를 먹고, 남편은 갈비탕을 먹으면 서로 행복하지 않을까.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가까운 식당에서 먹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면 그것도 멋진 데이트가 될 것 같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취향을 감수하면서 견딜 필요는 없다. 같이 집을 나가서 각자 좋아하는 것을 먹고 다시 손잡고 같이 집에 돌아오면 그게 데이트인 거지.
같이, 때로는 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