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후배들을 만났다. 남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강한 캐릭터의 두 친구는 같은 부서에서 같이 어려움을 겪어 내며 친해지게 되었다.
당시 부서장이 관리자로부터 엄청 미움을 받고 있었던 때라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살음판 같을 때가 많았다. 팀장이 관리자로부터 면박을 당하고 있으면 그 밑에서 일하는 우리조차 싸잡아 야단치는 것 같아 숨죽여 지냈다. 그러다 보니 메신저로 서로를 위로하게 되었고, 가끔 술자리를 마련해서 한탄을 쏟아 내곤 했다. 가끔은 가엾은 팀장님도 함께 자리해서 격려를 하기도 했는데 결국은 우리끼리의 잦은 술자리를 갖곤 했다.
당시 자주 가던 술집이 있었는데 오픈할 때 가서 문 닫을 때까지 생맥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골뱅이 안주와 계란말이가 맛있었던 집이었다. 맥주와 안주를 끊임없이 먹고, 화장실에 가서 비우고 또 떠들고 이러다가 주인장이 “이제 문 닫을 시간입니다.” 하면 “어머 벌써요?” 하면서 일어서곤 했다.
당시 어린아이들을 키우던 그녀들은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5시에 술집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문 열자마자 잽싸게 들어가 맥주 두 세잔을 연거푸 비우고 1시간 만에 일어선 적도 있다. 그렇게라고 하지 않으면 힘든 시절이었던 것이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세련된 그녀들과 다니다 보면 옆 테이블에서 합석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취한 김에 합석을 받아들였는데 술값을 다 내주면서 노래방까지 가자고 하는 바람에 도망친 적도 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술집에 가지 못했는데 어디선가 만나서 아는 척하길래 모른 척했다.
휴일에는 요리 잘하는 남편을 둔 O의 집에서 낮에 낮술을 하기도 했다. 남편 하고도 술을 즐기던 O의 집에는 술이 많았는데 그 술을 다 마시고 들고 간 술까지 다 마신 후에야 일서섰다.
이렇듯 소문난 주당들이던 우리는 세월이 흘러도 만나면 술을 마신다. 나의 대부분의 모임이 술자리를 피하고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임은 날짜가 정해지면 당연히 술을 마실 거라 여기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이제는 S와 O의 아이들도 대학에 갈 나이가 되어가니까 그녀들도 나이가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제 모임에서는 S가 술을 못 마시겠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 위장 장애가 생겨서 구토를 반복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S는 콜라를 마시고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 보니 흥이 나지 않았고 결국 2차는 카페에 가서 디저트에 차를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떠들면 12시가 되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9시가 되니까 대화의 밑천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이성적인 대화는 힘이 좀 드나 보다. 결국 9시에 파해서 집에 돌아오면서 나의 마지막 술모임도 이제 변화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부어라 마셔라 먹어대던 시절은 지난 것이다.
이런저런 모임이 많지만 이 모임은 좀 특별하다. S나 O가 나랑 성격이 잘 맞고 나이도 비슷한 건 아닌데 어려울 때 만나서 그런지 가족 같은 느낌이 있다. 싫으나 고우나 내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저절로 달려가게 된다. O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S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수까지 다녀온 적도 있다.
날카롭고 예민하지만 따뜻하고 사람들을 잘 챙기는 O인지라 우리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O에 비해서 잔정이 없고 반듯한 모범생 스타일인 S는 차분하게 O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잘 이끌어가는 능력을 발휘한다. 집에 사람 초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집에 초대했던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녀들은 내 마음속에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다.
첫인상이 날카로운 외모와는 다르게 부지런하고 따뜻한 O는 만날 때마다 무언가를 가져와 나누어 준다. 직접 만든 딸기잼, 사과잼, 구움 과자 등등. 시간이 없어 직접 만들지 못하면 사서라도 가져온다. 어제는 호주산 꿀을 선물 받았다. 이렇게 만날 때마다 선물을 받으면서 S와 나는 넙죽 받기만 하고 선물을 준비해 오지 못한다.
우리 둘은 그런 사람이다. 선물을 가져오기가 어색하기도 하고 선물을 받으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서인 것 같다. 생각만 오지게 하고 실천을 못하는 스타일인 것이다. 나만 그러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전에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 O는 온갖 반찬과 요리를 만들어서 찬합에 싸 왔었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후배에게 그런 정성 어린 선물을 받고 무엇보다도 눈물겹게 감동한 기억도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싶다. 어제 만났는데 갑자기 O가 보고 싶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일 것이다. 그동안 나 자신만 바라보느라 주변에 시선을 두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느낀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먼저 마음을 건네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