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by 작은영웅

어릴 때 별명이 책벌레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책 읽기의 즐거움을 일찍 깨달은 것 같다. 동화책을 어떻게 읽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는 신데렐라류의 이야기책을 즐겨 읽었다.

이렇게 이야기책을 읽고 나면 책을 전혀 읽지 않은 동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친구들은 나에게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다.

고무줄 놀이나 달리기 같은 동적인 놀이에 잼병인 나를 아이들이 곧잘 데리고 놀았던 것은 이런 이야기꾼 실력이 영향을 끼쳤으니라 여긴다.


초등학교에 가면서 부터는 학교 도서관에 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계몽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같은 책이나 셜록 홈즈 같은 책들에 빠졌다. 정말로 재미있었다. 눈이 나빠서 전교생 중에 유일하게 안경을 끼게 된 나에게 ‘책벌레’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때쯤이었다.

동화책 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방대한 내용의 세계문학전집도 곧잘 요약해서 친구들에게 들려주곤 했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시로 유학을 떠나 친척집에 살게 되었는데 그 집에는 서재가 있었다. 백과사전부터 온갖 책들이 가득한 그곳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장소였다. 집이 그리울 때는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붙들고 있었다. 당시에 공부를 곧잘 했던 것이 이런 독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방학이 되면 시골집에 내려갔는데 이 때는 집에 있는 책을 읽었다. 부모님이 책을 읽고 있던 모습은 기억나지 않지만 집에는 전집류의 책이 많았다.

이광수 문학 전집을 독파한 적도 있었다. ‘유정’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나중에 꼭 바이칼 호수에 가봐야지 생각했었다.

청소를 하다가 모르는 책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읽었다. 쓰레기 더미 옆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지던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사랑스럽다. 가끔 야한 내용의 책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그런 책은 숨겨 놓고 읽었다.


고등학교 때에서 자율학습 시간에 아이들이 힘들어 햐면 앞에 나가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게 들었다.

내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실제로 읽어보니 별로였다고 얘기하는 애들이 많았다. 아마도 약간의 각색, 요약, 정리 등을 했던 것 같다.

호흡이 긴 장편보다는 단편을 부풀려서 얘기하는 것이 편했다. 기본 줄기에다 약간의 양념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단편 중에는 끝이 애매하게 끝나는 게 많았는데 그런 것들은 내가 직접 창작해서 내 맘대로 깔끔한 마무리를 해서 전달했다. 그러니 진짜 책과 다를 수 밖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문학을 전공했다. 막상 가보니 배우는 내용은 창작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마음의 끈은 늘 있었다. 내 나이 50이 되면 박완서선생님처럼 문단에 등단할거라고 늘 떠벌렸으니까.

그러다가 50이 넘었다. 문단 등단은커녕 사는 게 바빠서 독서도 이미 멀리하고 있었다. 소설가가 되기는 고사하고 소설 읽기 조차 잘 안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문학에 대한 꿈은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었다. 넷플릭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에 빠져 지냈다. 스토리에 강한 유전자를 지닌 대한민국이 만들어 내는 영상매체들은 기가 막히게 재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 년에 한 권의 책도 거의 읽지 않았고, 읽으려고 사 놓은 책도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이런 내가 일 년의 유급 휴가를 누리면서 변했다. 일단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읽기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읽는 재미에 빠지게 된 것이다.

특히, 산책을 하거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때 듣는 오디오북이 나의 책사랑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산책을 할 때는 주로 음악을 들었는데 오디오북으로 바꾸니 산책이 즐거워졌다.

헬스장에서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기도 했는데

화면은 작고 몸은 흔들리고 시력이 별로 좋지 않아 마뜩치 않았다. 그런데 오디오북은 정답이었다. 눈을 감도 들어도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디오북에 빠지다 보니 전자책도 읽고 싶어졌고, 그러다 보니 1일 1권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책일 읽을 기대감에 벌떡 일어나게 되다니. 드라마는 아예 보고 싶지도 않게 되다니. 정말 놀라운 변화였다.


이 즈음에 방대한 독서를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너무 많은 책을 읽다보니 읽은 책을 또 펴드는 현상까지 생긴 것이었다. 인픗만 있고 아웃픗이 없는 결과였다.

그래서 서평을 써 봤는데 쉽지 않았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서평을 쓸까 생각하느라 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세 줄로 내가 읽은 책의 단편적인 느낌을 기록하기로 했다. 1분이면 가능하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었다. 이 세 줄 독서일기는 차곡차곡 나의 독서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천 권이 될 때까지 해볼 생각이다.


독서는 나의 관심 분야를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다음 책이 저절로 떠오른다. 작가가 추천하는 경우도 있고 같은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강제로 추천을 당하게 하지만 독서는 내가 찾는 재미가 있다. 책제목을 보고, 목차를 살펴보며 서재에 담을 때 너무 즐겁다. 넓은 서점에서 좋아하는 책을 찾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읽어야할 책이 가득 담긴 서재를 보면 부담스러움보다 기대감에 마음이 흡족하다.

매일 매일 책들은 쏟아져 나오고

읽어야할 책은 쌓여 가고

당분간 나는 독서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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