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세

by 작은영웅

어릴 때 마을에 큰 바위가 있었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멱감고 놀던 맑고 낮은 냇가 옆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바위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마옥순’이라고. 마 씨와 선 씨의 집성촌이던 우리 마을에 살던 여자 아이의 이름이었다.

하얀 자갈돌이 몽글몽글 깔려 있던 냇가에서 아이들은 옷을 다 입고 물속에 들어가 놀다가 바위 위에 누워서 몸을 말리며 놀다가 다시 물에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여름 내내 놀았는데 옥순이는 바위에 올라가지 않았다.

동네 단골네(무당, 외딴집에서 혼자 살던 여자, 우리는 무서워서 근처에 잘 안 갔다.)가 옥순이가 어린 나이에 바위에서 떨어져 죽을 거라는 예언을 했고, 그래서 옥순이는 15살까지 바위에 올라가지 못했다. 바위 위에 글씨는 옥순이가 행여 잊고 올라갈까 봐 그의 아버지가 새겨놓은 것이었다.

그 후 옥순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마음속에 오래 남은 것은 미래의 예언이 한 사람의 삶을 구속한다는 강렬한 기억이었다.


전에 라디오에서 게스트가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어렸을 때 점쟁이가 자기한테 20살까지 물을 조심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20살이 되도록 수영장이나 바닷가는 절대 가지 않았고, 심지어 물을 마실 때까지도 조심해서 마셨다고 했다. 그래서 20살까지 별일 없이 잘 견뎠는데 막상 20살이 되자 그냥 나이일까 만 나이일까 고민했다는 얘기였다. 혹시 몰라서 만 나이까지 물을 조심해서 아직 살아있긴 한데 지금도 물은 무서워서 싫어한다고 했다.

한 마디 예언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했다.


나의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점을 많이 보러 다니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기본 신앙은 기독교였으나 용하다는 스님도 만나러 가고, 점쟁이들도 많이 찾아다녔다. 그런 장소에 몇 번 따라 간 기억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나의 미래도 예언해 주곤 했다.

미래에 공무원이 될 거다. 공부로 생계를 유지할 거다, 인복이 있다, 자식운이 좋다. 뭐 이런 얘기였던 것 같다. 아이를 앞에 두고 나쁜 말은 할 필요가 없어서 안 한 건지 아니면 기억에서 지워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얘기만 기억에 남았다.

그때도 난 안경을 낀 조그마하고 착하게 생긴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런 예측들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나라가 주는 봉급을 받고 살아가고 있으며 주변에 사람들이 많고 아이들이 탈없이 잘 자랐으니 대충 맞는 점괘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 이후로 기독교 신앙에 깊이 심취한 엄마는 더 이상 점을 보러 다니지 않았다. 당연히 나도 이런 것들과 인연이 없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는 중 몇 번의 예언을 받기도 했다. 사무실에 녹즙을 배달해 주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나를 빤히 보며 “40이 넘으면 서랍에 돈을 쌓아 놓고 쓰게 될 관상이네요” 했다. 믿거나 말거나 어찌 보면 기분 좋은 말이어서 녹즙을 신청했다. 아직도 서랍에 돈이 쌓여 있지는 않다.

주변인들 중에 이런 분야에 심취한 사람들이 많아서 휴게실에 역술인이 와서 점을 봐준 적이 있었는데 난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다들 다녀와서 아들이 대통령이 된다고 했다느니, 재벌이 된다고 했다느니 하면서 설레발이었지만 난 두려웠다.

좋은 이야기들 속에 아주 작게 콩알만큼 감추어진 금지의 말과 부정의 언어가 나를 괴롭힐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아무 말도 안 듣는 길을 택한 것이다.


아이들이 대학 입시를 할 때쯤, 불안하고 초조한 부모들을 유혹하는 입시담당 역술인 소개도 많이 받았고, 친구들 중에는 다녀온 사람들도 많았다. 뉴욕에서 주역을 공부하고 왔다는 역술인이 특히 인기였는데 “서쪽에 있는 국립대학을 가겠어.”라든가 “한 번에 안되고 두 번째는 인서울이야.” 결국 친구들은 역술인의 말을 믿고 지방으로 아이를 보내고, 억지로 재수를 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역술인이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면서 난 절대로 관심도 주지 말자고 다시 결심하게 되었다.


가끔 이상한 꿈을 꾸게 되면 인터넷을 검색해서 꿈 해몽을 볼 때도 있는데 이것도 그만두었다.

전에 한 번 ‘앞 이가 몽땅 빠지는 꿈’을 꾸었는데 검색해 보니 부모님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라는 해석을 보고 며칠을 부모님 걱정을 하면서 보낸 일이 있었다.

어찌나 속을 끓였던지 모르는 게 약이다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나처럼 걱정이 많고 없는 일도 미리 당겨서 온갖 상상을 해대는 사람은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고문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근 운에 관한 책들을 제목에 낚여서 보게 되었다.

운은 움직이는 것이고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한다. 불행을 잘 다스려 행운을 만들기도 하고 행운을 두려움 속에서 몰아내 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세상사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주어진 하루하루를

난 행운아라고 생각하면서 보내면

저절로 좋은 운이 나에게 다가온다는 말이다.

나의 무한한 상상력을

다가올 행운을 떠올리는 것으로 채워가자.

그러다 보면 내가 바라는 것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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