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by 작은영웅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뭘 써야 할지 몰라서 사과만 먹고 있다. 나의 글쓰기 루틴은 아침에 요가를 하고 나서 사과 하나를 깎아 책상 앞에 앉는다.

미리 주제를 생각하지만 명확하게 떠오른 적은 별로 없고, 결국 자리에 앉아서 결정한다.

전체적인 구조나 흐름을 계획하고 쓰는 게 아니라서 중구난방 하는 글이 대부분이지만 일단 쓰는 데 만족하고 쓰고 있다.

그날 정한 주제로 한 페이지 이상 쓰는 게 목표이다. 어떤 주제는 새록새록 생각이 나서 쉽게 한 페이지를 메꾸지만 어떤 주제는 정말이지 머리를 짜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 될까 약간 두렵다. 이 주제 자체가 주제마저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쓰게 된 것이라서 말이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너무 약해서 며칠 전 허리를 다친 후에 달리기를 못하게 되자, 일상의 루틴이 모두 흔들린다. 달리기를 못하고 걷기로 바뀐 것뿐인데, 늦잠을 자고, 요가도 짧게 하고 영양 보충이라는 이유로 음식도 대중 없이 먹고, 그러다 보니 몸이 무겁고 배가 더부룩하고 몸무게는 다시 늘어나고, 그러니 화가 나서 더 먹어버리고.

이렇게 견고해 보이던 성도 조금씩 무너지는구나 싶다. 그래도 그 와중에 소중히 지키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글쓰기다.


오늘부터는 6시에 일어나서 평소의 루틴을 잘 이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8시 20분이다. 일단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일어나서 요가는 하는 척만 하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은 대충 쓰다 말 수도 없고, 빼먹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뭐라도 쓰면서 앉아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글쓰기의 효용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하지만 나는 ‘고독에 빠지지 않는 길’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글쓰기를 하면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그 의미를 찾게 되고, 나의 미래를 떠올리며 나아갈 길도 생각해 보게 되고, 나의 현재의 위치, 사람들과의 관계, 나에게 진정 소중한 존재의 의미 등에서도 성찰할 시간을 갖게 된다.

늘 혼자일까 봐 두려웠던 나에게 혼자 있는 것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기도 하다.

더불어 글쓰기를 통해서 차분히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떠올리게도 해준다.

머릿속을 부유하다가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는 생각들을 붙잡아 두는 역할도 한다.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하루 종일 사람들한테 시달리면서 집에 와서 혼자 있는 시간에도 외롭다는 생각에 수시로 빠져 있던 나,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자 매일 크고 작은 모임을 만들어서 피곤할 정도로 사람들과 어울리던 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늦게 귀가하는 남편에게 샘이 나서 분노하던 나,

이런 내가 글쓰기를 통해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에 나를 만나 대화하고 위로하고 성장하는 도구가 나에겐 글쓰기가 아닌가 싶다.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들, 여행, 식도락, 회식, 이런 것들이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깨달음.

심지어 퇴근한 저녁이면 스트레스 푼다고 마셨던 맥주마저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한 도구였던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일회성이라서 늘 나에게 더한 것을 요구했다. 여행은 이제 조금은 피곤하고 지치는 것이 되었고, 음식은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회식은 피곤한 시간이 되었다.

혼자서 지내는 시간들이 편하게 느껴지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 이 변화를 나 자신도 놀랍게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는 주로 드라마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다가 취해 자곤 했던 나는 사실 혼자 있으면 나 스스로 폐인 같은 삶을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매일 낮부터 술에 취해서 드라마나 영화만 보다가 병들어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은퇴도 두려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올해 혼자서 여행도 여러 번 다녀 보고, 낮술도 마셔 보고, 맛있는 집도 수도 없이 다녀보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그것들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을. 나의 외로움과 억울함과 답답함을 해소할 수단으로 그것들을 추구했다는 것을. 잘 풀리지 않은 세상사와 해결하기 요원한 여러 주변 상황들이 힘들 때마다 그것들에서 일시적인 위로를 찾았음을 알게 된 것이다.


운동을 하면서 내 몸을 돌보고, 감사일기를 쓰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찾고, 독서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글쓰기를 통해 나를 만나면서 조금씩 내가 진짜로 좋아하고 매일 해도 싫증 나지 않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행이나 식도락이나 회식에 연연하지 않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글쓰기도 그중에 하나이다. 머리를 쥐어 짜든, 술술 글을 쓰든 매일매일 글쓰기를 통해서 성장하는 나를 느낀다. 그리고 잃어버린 나를 만나게 된다.

이렇게 스스로 철이 든 나 자신에게 감사하며 오늘도 나는 행복한 하루를 보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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