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역학을 두루 공부했다는 전문가가 쓴 책을 최근에 읽었다. 그 책에서 기억나는 내용이 운을 가로막는 세 가지 감정이었다.
약간은 뜻밖이었던 세 가지 감정은 질투, 죄책감, 후회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유롭지 않을 감정들이지만 그 조합이 조금은 의외였다.
먼저 질투의 감정이다. ‘사돈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주변 사람의 성공에 오묘한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다.
잘됐다고 축하해 주는 마음 이면에는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질투를 느낀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주변 사람의 성공에 기뻐해야 한다고 한다. 주변에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운이 나에게도 전해질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축하해 줌으로써 나의 운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맞는 생각이다. 잘된 사람의 조언과 안내로 우리 또한 그 사람이 이룬 것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이제는 주변에 친구나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온 마음을 다하여 축하해 주어야겠다. 그 사람이 운이 곧 나에게도 올 좋은 징조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죄책감이다. 사전적 정의는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마음'이다. 이 부분은 그나마 약한 것 같다. 살아오면서 잘못이야 많이 했겠지만 마음에 두고 곱씹을만한 것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나름 착한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는 후회의 감정이다.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후회할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먼저 경제적인 것들, 좀 더 일찍 부동산이나 재테크에 관심을 갖지 못한 후회, 주변 사람들 부러워할 줄만 알았지 배워서 뭔가를 해볼 생각을 못했다.
귀찮다는 이유로 모두 남편에게만 일임하고 모른 척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다. 내가 조금만 더 영특하고 돈 버는 데 관심 있었다면 공부를 했어야 했다. 놀러 다니는 데만 급급해하지 않고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 도전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라고 늦지 않았으니 공부를 다시 열심히 해서 우리 집 경제를 다시 일으키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 특히 큰 애에 대해서는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린 시절 더 많이 안아주지 않고 보듬어 주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프다.
자기 아픔에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 엄마였던 나는 예민하고 여린 딸을 잘 보듬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 어릴 때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하던 아이를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아이들이 커가면서도 엄마로서의 의무에는 충실했지만 가슴으로 안아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아이들은 자녀로서의 의무는 다하지만 이제 내 품에 안기지 않는다. 뒤늦게 엄마는 딸들을 안아주고 싶은데 어색할 따름이다.
그게 나로 인한 것이라 가슴 아프다.
다시 내가 젊은 엄마로 돌아간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 해주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꼭 품에 안고 ‘괜찮다. 온 우주가 너를 돕고 있으니 힘을 내. “라고 말해주고 싶다.
운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 세 가지 감정은 나의 힘으로 떠올리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질투의 감정은 진정한 축하로 바꾸면 되는 것이고,
죄책감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살면 되는 것이고,
후회는 열심히 경제 공부하고 아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 나가면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평화가 깃든다.
좋은 감정과 행복한 생각들로 나의 행복을 끌어당기고 싶다. 걱정과 우울을 떨쳐버리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 속에서 행복이 나를 찾아오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