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여행친구

by 작은영웅

떠나기 전에는 온갖 생각이 교차하다가도 막상 여행 기간 중에는 마냥 즐거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가치관도 다르고 사는 환경도 다르지만 여행을 ‘여기서 행복할 것’으로 여기는 여행에 대한 생각이 같기 때문이다. 중간에 언뜻 비치는 갈등 상황이나 말로 상처 주는 일 따위도 웃어넘긴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가는 여행을 망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 중에 각자의 역할을 맡아 서로를 돕고 배려하고 말조심을 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다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장 많은 여행을 하게 된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럼 나의 베스트 여행 친구들이 여행에서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얘기해 볼까.


먼저 류언니는 제일 연장자답게 찬조를 잘한다. 사위나 며느리가 준 여행비라면서 밥을 사거나 현금을 내어 놓으신다. 아무것도 안 해도 이거 하나면 장땡이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존경을 받는다.

다른 멤버들도 신상에 좋은 일이 있으면 한턱씩 쏘기도 하지만 류언니는 항상 물질적으로 베푼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소한 일로 서운해하거나 가끔 격해지실 때도 있지만 이것 하나로 존재감은 뚜렷하다.


다음은 장언니, 이 언니는 정말로 소중한 일꾼이다. 채식주의자에 44 사이즈 몸매를 지녔지만 온갖 궂은일을 맡아서 척척 해낸다. 무엇보다도 운전을 도맡아 하면서 생색을 내는 일이 없다. 이번 제주여행에서도 4일간 혼자서 6인승 자동차를 몰고 원하는 곳은 어디든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무엇보다도 이 언니의 대단한 점이 그렇게 운전하면서도 힘들다는 말을 하거나,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말 그 내공이 존경스럽다. 인정욕구가 많아 칭찬에 약한 나로서는 한 수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종일 운전을 하고서도 숙소에 돌아오면 늘 부엌에 들어가서 뭔가를 하고 있다. 말리지 않으면 상도 차리고 설거지도 하면서 쉴 새 없이 몸을 놀린다. 그러면서 말을 별로 하지 않고, 이 언니가 하는 대화는 맞장구쳐주는 것이다. 정말로 따를 수 없는 대단한 인격의 소유자다.


셋째 홍언니, 이 언니는 적절한 툴툴거림으로 활력을 준다. 우리가 술 마시는 것, 늦게까지 안 자고 노는 것, 사진 많이 찍는 것 등에 대해서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늘 무시당한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 언니의 귀여운 잔소리가 너무 좋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한 사람이라 그런지 고민이 있을 때 이 언니에게 털어놓으면 좋은 에너지를 얻고 마음이 편해지는 선물을 받는다.


넷째 서언니. 제일 럭셔리하다. 적당한 몸매와 나이에 비해 풍성한 모발로 인해 이 언니는 젊어 보인다. 게다가 명품족에 베스트 드레셔다. 이 언니가 입고 온 옷은 허름해 보여도 대충 백만 원 이상의 가격일 때가 많다. 평범한 우리는 꼬리를 내리고 만다. 이 언니의 소싯적 별명이 ‘걸어 다니는 백화점’이었다. 가끔 럭셔리 언니가 집에 있는 안 입는 옷들을 가져와 바자회를 열면 서로 입겠다고 덤벼든다. 엄청 고가의 옷들일 터이므로 고쳐서라도 입겠다는 마음인 것이다. 이 언니는 돈 쓰는 데 잔소리하지 않기 때문에 총무로 딱이다. 나는 자고로 총무는 돈 아끼지 않고 써야 여행이 즐겁다고 생각한다.


다섯째는 내 또래인데 김언니로 하겠다. 이 언니는 가장 직설적인 여자이다. 가만히 앉아서 수다만 떠는 나에 비해 일어나 언니들도 잘 도와주고 부엌에도 자주 가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언니는 타박을 한다. 다른 언니들은 놀고 있는 나를 귀여워해주는데 이 언니는 꼭 한 마디씩을 한다. 난 그러려니 하고 계속 논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약간 상처받는다. 그래도 내 또래인지라 정이 가고 말이 통한다. 그냥 그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가끔 여행에 동참하는 미국에 사는 동생이다. 한국에 가족을 만나러 올 때면 꼭 우리랑 함께 여행을 가고 싶어 해서 그녀가 한국에 오는 일정에 맞춰 여행 계획을 짠다. 귀여운 목소리로 깔깔거리는 그녀는 나랑 죽이 잘 맞는다. 귀엽고 예쁜 여자다. 언니들도 다들 좋아해서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가 여행에 끼면 여행의 분위기가 조금 더 업된다. 텐션이 좋은 그녀가 우리를 즐겁게 해 주기 때문이다. 눈치도 빠르고 경우도 있으면서 오랜만에 만나도 친근하게 잘 어울리는 그녀, 속사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그녀 때문에 그녀가 오면 우리도 속사정을 털어놓게 된다. 어쨌든 솔직하고 예쁜 그녀는 여행의 최고의 동반자다.


이 사람들이 모두 모인 완전체가 12월 여행을 앞두고 있다. 어디에 가느냐보다 누구랑 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여행이다. 많은 여행을 다니다 보니, 나 자신을 위해서도 조금은 선별된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기회만 되면 이것저것 무조건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사람들을 잃지 않고 가까이 두면서 지내는 것이 외롭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지만 너무 방만한 인간관계는 나이가 들수록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앞에 나열한 사람들은 평생 같이 갈 것 같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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