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의 기술, 웃음에서 찾다.
“마음이 어두운가? 그것은 너무 애쓰기 때문이라네.
가볍게 가게, 친구여, 가볍게.
모든 걸 가볍게 하는 법을 배우게.
설령 무엇인가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가볍게 느껴 보게.
그저 일들이 일어나도록 가볍게 내버려 두고
그 일들에 가볍게 대처하는 것이지.
짊어진 짐들은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게.
너의 주위에는 온통 너의 발을 잡아당기는 모래 늪이 널려 있지.
두려움과 자기 연민과 절망감으로 너를 끌어내리는.
그러니 너는 매우 가볍게 걸어야만 하네.
가볍게 가게, 친구여.”
– 올더스 헉슬리, 섬
깔깔 웃었던 마지막 순간이 언제였던가?
눈물을 쏟아내고 배꼽을 쥐어잡으며 고개를 젖히고 웃던 시절이 나에게도 분명 있었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아니면 내 얼굴에서 미소조차 쉽사리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마다 웃음의 방식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너무 웃길 때 웃음소리가 끊겨 무음처리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데시벨이 치솟아 특유의 웃음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무 내용을 몰라도 웃음소리가 웃겨서 상대방을 웃게 하는 웃음.
또 어떤 이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음이 연결되어 멈추지 않고 웃는다.
나는 웃을 때 눈물이 줄줄 흐르는 타입이다.
웃음이 극에 달하면 웃음으로 가득 부푼 눈물샘이 한 번에 팡 터지고 만다.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웃길 땐 반드시 내 옆엔 휴지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중학교 1학년, 쉬는 시간마다 친구 둘과 함께 교실 뒤편에 모였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음악 시간에 배운 밀양아리랑을 부르면서 이상한 동작을 하거나, HOT의 오빠들의 춤을 따라 하거나, 선생님의 기억에 남는 한마디를 똑같이 따라 하다 웃음이 터졌다. 무슨 내용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웃는 게 좋았고 웃는 게 웃겼다.
매일, 매 쉬는 시간마다 웃음으로 물들었던 그 순간들은 떠올릴 때마다 내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감돈다.
여유가 있는 삶 속에서 웃음이란 그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타고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생겨나 흘러나왔던 것 같다. 토요일 저녁 무한도전을 챙겨 볼 때까지만 해도 나에겐 공식적으로 깔깔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확보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커져버린 일상의 무게 속에서 겨우 피식, 또는 희미한 미소가 힘겹게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가벼워지자. 세상의 무게를 내가 다 짊어지지 말자. 내가 나 스스로 내 어깨 위에 짐들을 쌓아놓고 힘들어하며 쓰러지지 말자. 깃털 같은 가벼움이 아니라 스스로 날아갈 수 있는 새가 되자는 시인의 말처럼 내 날개와 몸 사이로 무거운 것들을 흘려보내고, 그 무거운 공기를 눌러 타고 하늘로 비상하자.
훨훨 자유롭게 날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