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옷장은 노노
나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중고등학생 때도 꽤 관심이 있긴 했었지만, 대학교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도 꽤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그 시절 사진을 보면 웃음이 먼저 나온다. 반짝이는 분홍빛 아이섀도를 손가락으로 대충 눈두덩이 위에 슥슥 바르고 유행이라는 이유로 통 넓은 바지를 차고 다녔던 그때. 지금 보면 촌스러움으로 가득하지만, 그땐 나를 꾸미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 내 얼굴에 어울리는 색깔을 찾고,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는 게 내겐 놀이와도 같은 일이었다.
사회인이 된 이후에도 옷에 대한 관심은 이어졌다. 품위 유지라는 명분 아래 옷을 구경하고, 입어보고,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찾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학원 시절엔 옷 취향이 딱 맞는 친구와 함께 팩토리 아웃렛을 돌며 쌓인 옷수레에서 보물을 찾아내듯 쇼핑을 했다. 그렇게 산 옷들 중 일부는 지금도 옷장에 남아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많이 사는 것은 명백히 다른 차원이다. 주머니 사정이 늘 빠듯했으니 내가 원하는 모든 옷을 다 살 수 없었다. 대신 내게 꼭 어울리고 기존 옷들과도 잘 어울리는 옷,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옷을 찾는 데 정성을 쏟았다. 그 모든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재미였다.
그랬던 내가, 5년간의 육아휴직 후 직장에 복직하면서 옷 때문에 매우 난감해졌다. 한때 니트를 사랑했던 나는 사라졌다. 옷장 속엔 맨투맨, 트레이닝복, 늘어난 면 티셔츠가 가득했다. 맞춰 입을 것도 없었고 새로 사려면 완전히 0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
문제는 옷뿐만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더 충격이었다. 누, 누구신지... 깜짝깜짝 나에게 놀랐다.
하지만 퀭한 눈, 스트레스가 가로 세로로 새겨진 피부, 이미 생긴 무시무시한 잡티를 정성껏 감출 시간조차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아침이면 머리를 급하게 감고 말리고, 쿠션을 두드리며 겨우 아이라인만 진하게 그려 출근했다. 한번 그리면 끝! 수정할 여유 따윈 부릴 수 없었다. 나에게 화장은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갑옷 같았다.
지난해는 그야말로 생존만을 위한 해였다. 화장품도, 옷도 모두 생존을 위한 도구였다. 같이 살고 있는 친정엄마의 옷을 빌려 입으며 나는 살기 위해 내 취향을 철저히 죽여놓았다. 출근하기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면 그만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제는 혼자 옷을 보러 갔다. 아이들의 옷도, 남편의 옷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옷. 천천히 거울을 보며 내 얼굴에 어울리는 색을 찾아보고, 바지가 내 체형에 촥 잘 들어맞는지 살폈다. 정말 오랜만에 여러 개의 옷을 골라 골라 사는데 전혀 돈이 아깝지 않았다. 결혼 후 처음으로 진자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산 날이었으니까.
나는 결심한다. 이젠 생존을 위한 옷이 아니라 나의 취향을 담은 옷을 입겠다고. 많지 않아도 좋다. 딱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옷장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는 취향을 입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