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앞에 고민은 없다
우리 네 식구의 온전한 첫 집 찾기 여정이 시작되었다.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마음. 떠나는 길에 챙긴 건 미니 캐리어 하나와 무거운 노트북 두 대뿐. 아이들이 같이 가질 않으니 짐은 적지만,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새로운 삶은 무한했다.
아이들 없이 남편과 둘만 제주도를 가는 기분도 참 묘하다. 10여 년 전 처음 신라호텔에 가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었던 기억이 훅하고 들어온다. 그때 했던 약속처럼 매년 제주도에 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참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그리고 돌고 돌아 십 년 만에 우리는 제주도로 터를 잡기 위해 가고 있는 중이다.
새벽 6시 30분.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공항은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주차타워에는 차들이 거친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줄지어 들어오고, 공항 로비는 서둘러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주차장에서 바쁘지 않은 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다행히 딱 한 자리를 찾아 주차를 마치고, 후다닥 수속을 끝냈다.
아침 7시 30분. 제주행 비행기가 출발했다. 탑승 직전 단 10분 만에 후룩후룩 마신 진한 아메리카노 덕분에 비행기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덕분에 책을 읽고, 짧은 글을 쓰며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알찬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창밖을 보니, 예상치 못한 한라산이 마치 액자 안 작품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고요한 산. 담담한 기울기. 마치 어머니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간 긴장으로 여몄던 나의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듯했다. 그리고 느꼈다.
'아! 나는 이곳에 올 운명이었구나.'
내 인생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었다. 남들이 예상하는 그런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도전하고 싶었고 모험하고 싶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진즉에 알았다는 듯이 산은 나를 엄마처럼 포근히 감싸주었다.
8시 30분. 제주 도착. 미니멀한 짐을 챙겨 택시를 타러 나갔다. 백발의 택시 기사님은 인사만 하고 묵묵히 운전하는 스타일이셨다. 그러다 남편이 영화 ‘나 홀로 집에’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표정이 환해지며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 알고 보니, 그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다.
"은행에서 오래 일했어요. 근데 이젠 돈 냄새 안 맡아도 돼서 너무 좋아요."
차를 한쪽에 세우고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이 그렇게 꿀맛이라며, 환하게 웃으시는 기사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작이 참 좋다.
11시. 부동산에 도착했지만, 소장님은 우리가 대수롭지 않은 듯 보였는지 쪽지에 주소만 툭 적어주고 가보라고 하셨다. 비슷한 물건이 더 있냐고 묻자, 귀찮다는 듯 또 하나 툭 적어주셨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첫 번째 후보지로 향했다.
후보 1: 볕이 잘 드는 넓은 집
주차하기도 편하고, 뒤뜰이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아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옵션이 전혀 없다는 것. 남편은 꽤 마음에 들어 했지만, 나는 한 60점 정도. 뒷마당의 유리창 하나만 깨면 쉽게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아 불안했다.
장점: 집이 넓다. 햇빛이 잘 든다. 단점: 가전을 다 사야 한다. 보안이 취약함.
후보 2: 실속 있는 집
첫 번째 집보다 훨씬 저렴하고, 옵션도 완비되어 있었다. 주변에 이웃들도 꽤 있어 안심이 되었다. 남편도 여기가 훨씬 낫다고 했다. 나도 한 80점 정도. 하지만 찬찬히 다시 살펴보니, 주거용이 아니라 단기 숙박용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청소 상태가 깔끔하지 않고 관리도 소홀한 흔적이 보였다. 창문에 곰팡이도 보이고,,,
“여기서 정말 아이들과 살 수 있을까?”
장점: 가격 대비 굿, 주변에 이웃들이 있음 단점: 관리 부실
두 집을 후다닥 보고 나니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탁 걸리는 느낌이었다. '다 이런 비슷한 집이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이 스윽 깔리기 시작한다.
과연 우리 맘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긴... 할까? 운명의 집은 있는 걸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