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정화되지 않았던 감정
당신은 살면서 억울해본 적이 있나요?
억울함이란 감정은 무엇일까.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억울함이란 감정을 느낄 일이 자주 있는 사람도 있고 전혀 느끼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주로 억울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감정 이면에는 주로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하는 선택을 하는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거나, 특정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행동이나 의도를 오해받은 경우일 때가 많을 것이다.
나? 나는 주로 전자의 삶을 살았다.
그것이 미덕인 줄 알았고 나를 죽이는 게 상대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는 옷에 만족했고 잘 살아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흔 즈음부터 뭔가 내 속을 쿡쿡 바늘로 찌르는 느낌이 들더니 마그마가 약한 지반을 골라 뚫고 올라오듯 깊은 곳의 분노가 알 수 없는 어떤 포인트에서 나를 뚫고 나오는 상황들을 종종 맞이했던 것.
건강하지 않은 것이었다. 희생하는 삶은. 온전한 나로서 바로 서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아주 이기적인 속내를 착하다는 것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듣기 좋은 허울로 가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속에 숨겨져 있던 감정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으며, 나를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문제점을 발견하기 시작한 그때,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래도 나름 마음의 성장, 의식의 성장에 있어 소정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불쑥불쑥 또 억울했다.
많이 해소되었다고 생각했던 억울함이란 덩어리가 사실은 더 꽁꽁 뭉쳐져서 부피가 줄었을 뿐 더 강력한 상태로 내 안에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나 보다.
나는 어디까지 맞춰야 하는 사람일까.
내가 더 잘 맞춰주었다면 더 나은 결과가 나왔을까.
이런 생각이 건강하지 않음을 이제 머리로는 알면서 가슴은 또 예전처럼 나를 채근하고 비난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단단해지고 싶다.
그동안 흐물흐물하게 쌓아보지도 못한 나의 경계를,
나를 위한 보호막을 만들고 싶다.
빨간 벽돌이 아닌 투명하지만 단단한 나를 위한 경계.
그 누구도 부수거나 흔들 수 없는
내 안의 평화를 위한 곳.
그곳을 다시 만들기 위해
억울함의 근원을 찾아 마주하고
정화시키고자 한다.
이번엔 깊숙이 숨지 못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