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면 그리고 중재자
아래의 내용은 ‘엄마성장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원더라이팅 소그룹 상담 과정을 준비하고 성장하며 작성한 글입니다.
억울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분수처럼 샘솟는다.
왜 나는 여전히 나만 힘든가…
어릴 적 우리 집은 안정된 분위기의 집이 아니었다. 항상 불안했다.
돈 때문에 그랬고, 그로 인한 갈등으로 인해 항상 불안했다. 분명 좋고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았는데 어린 시절, 아니 성인이 되어서도 저 밑바닥 한쪽 구석이 항상 불안했다. 결국은 돈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이 행복을 앗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나의 핵심 역할은 착한 딸 그리고 중재자였다. 언제나 자신의 할 일을 스스로 하는 딸, 그리고 동생을 챙기고 엄마를 챙기고 가족 모두를 챙기는 사람. 좀 더 커서 부모님과 깊은 대화가 가능해졌을 땐 가족 구성원의 갈등의 해결엔 언제나 내가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전달해 주는 메신저. 그게 나의 소중한 역할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엄청난 존재의 이유를 부여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전히 나는 착한 사람이었고 갈등의 중재자였다. 이걸 선택해도 저걸 선택해도 사실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내 취향을 죽이고 죽이다 어느새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잊어버리게 되었다.
이 사람 마음도 저 사람 마음도 너무 잘 알겠어서 중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연결시켜 주려다 어느덧 내 마음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시작한 결혼 생활. 나는 여전히 착한 가면을 벗지 못했고, 여전히 내 취향을 주장하기가 어려웠다. 상대에게 나를 맞추는 게 미덕이라고 온몸으로 배운 내가 고르고 고른 배우자 역시 맞춰주고 맞춰주는 나 같은 사람을 고르고 골랐던 지라 상대보다는 자신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십 년을 지나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이 억울함이 숨어있다 갑자기 솟구칠 때가 있다. 이는 분명 남편에 의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내 안에 깊숙이 눌러두었던 ‘진짜 내’가 ’ 가짜 나‘를 뚫고 나오려다 보니 제일 먼저 이 ’ 억울함‘이란 감정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좀 더 내 말을, 내 마음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그다지도 나를 죽여가며 살았을까.
꼭 착해야,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으로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겼던 걸까.
이런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안아주고 치유하고 싶다. 그래서 이 억울함에서 벗어나 진짜 나 다운 삶, 가면을 벗은 나의 모습으로 살아도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