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은 교수님과 함께 하는 치유의 서재
혹시 ‘내면아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나요?
우리나라에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노란 책을 소개한 오제은 교수님이 멀리 제주의 작은 마을로 오셨다. 둘째 아이가 입원한 상태라 남편이 아이를 돌봐주는 사이, 나는 첫째 아이와 함께 카페 오브시퀀스로 향했다.
얼마나 설레던지.
교수님께 내가 가진 문제를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소중한 질문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며칠 전 늦은 밤, 상담사 선생님과 나의 가계도를 그려가며 내 진짜 질문을 찾았다. 치유의 나무라 불리는 100년 된 나무가 자리한 곳에서, 드디어 그 시간을 맞이한다는 설렘으로 가슴이 가득찼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뭔가 꼬이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아이가 울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아이의 손이 내 옷깃을 잡아 뜯고, 옷감을 주먹으로 감아 휘휘 비트는 순간, 우리 몸은 서로 떨어질 수 없이 밀착됐다. 입장 이벤트로 준비된 이름표도, 친절히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아이에겐 전혀 가닿지 못했다. 아이는 묵묵부답으로 스스로 울음만 점점 키워갔다.
나는 아이를 진정시키며 속삭였다.
“엄마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너랑 꼭 함께하고 싶었어.”
그렇다. 아이에게 낯선 환경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3~4살 무렵, 놀이터에서 잘 놀다가도 다른 아이가 오면 바로 집에 가자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며 아이는 조금씩 적응해왔다. 나는 그 성장의 속도를 지켜보며 응원해왔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많이 힘들어? 어떻게 도와줄까? 저기 고양이 보러 갈래?”
주위의 따뜻한 도움에도 불구하고 울음은 점점 더 거세졌다.
나는 아이의 등을 끝없이 쓸어내리며 말했다.
“엄마는 네가 용기를 내길 응원해. 수영 처음 배우러 갔을 때도 무섭다고 했지만, 결국 즐겁게 해냈잖아. 두려움의 벽을 살짝만 넘으면 생각보다 무섭지 않을 거야.”
그러나 아이는 오열을 하다하다 잔디 위에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 아이가 지금 이토록 힘들어하는구나.
결국 나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 곁에 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든 것을 쏟아낸 아이의 눈꺼풀이 무거워보였다. 감았다 떴다...
“차에서 좀 잘까?”
“응…”
아이가 보이는 지점에 차를 대고 아이를 차에서 재운 뒤, 안전한지를 확인하고 나는 강의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진행되고 있던 순서는 ‘미러링’ 시간이었다. 처음 본 사람과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단순한 시간이었지만, 그 지긋하고 다정한 시선 속에서 내 가슴은 나도 모르게 울컥 무너져내렸다.
“정말 기대했던 오늘이 이렇게 되어 속상하다. 하지만 아이를 탓하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오늘을 마무리하고 싶다. 오늘 내가 얻을 수 있는 만큼만 감사히 얻으면 될 것 같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계속 말했다. 나를 바라봐 주시는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 그리고 꼬옥 안아주시는 부드럽고 안전한 느낌이 참 감사했다.
그리고 교수님의 강의가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내가 질문하려 했던 답들이 차례로 흘러나왔다. 사실 나의 질문권은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교수님이 해주시는 말에 그 답들이 다 나와있었기 때문이다.
남아 있던 강의가 끝나갈 무렵 차로 돌아갔더니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나를 맞았다. 울음을 다 쏟아내고 한숨 푹 자고 난 아이의 얼굴은 세상 평온했다. 미러링을 하며 꺼내었던 나의 소리를 기억하며 나는 다시 마음을 먹었다.
'그래, 모든 걸 누리려 하지 말고 내가 지금 이 이 자리에서 아이와 함께 하더라도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 만이라도 가지자. 아이를 내 곁에 안전하게 두자.'
결국 나는 아이와 한몸이 되어, 그날의 일정을 함께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전함을 느낀 아이는 나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듯이 자신의 범위를 넓혀나갔다. 가지고 온 비행기 책을 보며 비행기를 접었고 그 시간동안 나는 다른 활동들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곤 같이 밖으로 나가 아까 자신을 지켜보던 치유의 나무 옆에서 비행기를 함께 날리기도 했다.
어느덧 마지막 순서로 모두가 치유의 나무를 돌며 인사를 나누던 순간, 교수님이 내 눈동자를 깊게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자신을 믿으세요. 자신의 힘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교수님의 눈동자에서 전해진 진심이 나를 흔들었다. 마치 광선을 타고 진심이란 것이 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날 내가 마음속으로 붙든 것은 단 하나였다.
성숙한 어른으로서 힘들어하는 내 아이에게 안전한 마음을 주는 것.
그리고 오늘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
며칠 뒤, 글쓰기 메이트 제니스의 댓글을 보며 또 하나 깨달았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발악하던 모습은 사실 내 안의 아이였다.
나는 어릴 적,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님께 떼 한 번 쓰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엄마와 꼭 붙어 있고 싶었던 ‘진짜 나’가 있었다.
그걸 입밖으로 내어본 적 없는 아이.
눈 앞에 진짜 갖고 싶은 게 있어도 다음에 돈 생기면 꼭 사달라고 했던 그 아이.
그 귀한 진실을 나는 내 아이를 통해 발견했다.
내 안의 내면아이를.
혹시 당신 안에도 잠자고 있는 아이가 있지 않은가.
오늘은 그 아이에게 살며시 손을 내밀어 보길 바란다.
어쩌면 지금 겪는 많은 어려움들이, 그 아이를 달래주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