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보다 깊이를 택한 제주 이야기
우리는 결국,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품을지로 인생을 만든다.
돈은 늘 삶의 선택의 기로에서 기준이 되어왔다. 안정적인 직장, 보장된 월급, 예상 가능한 미래. 나 역시 그 길을 따라 걸어왔고, 그 길 위에서 오랫동안 안정을 바랐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안정이 나를 단단하게 지켜주는 울타리이자 동시에 세상을 좁히는 울타리가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 안에 있으면 편하지만, 그 바깥을 꿈꾸기 어려웠다. 더 넓은 세상, 진짜 나를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날 수가 없었다.
제주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건 단순한 이사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가족이 살아갈 ‘방식’을 바꾸는 일이었다. 당장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내려놓는 대신, 매일 아침 아이들이 숲을 보고,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는 삶을 택했다.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액수가 줄어드는 대신, 아이들이 흙을 밟으며 자라나는 속도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오랜만의 늦은 외식 이후,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킬 겸, 여름밤 바닷가를 걸었다. 바람이 습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시원했고, 파도는 잔잔하게 발목을 적셨다. 아이에게 물었다.
“제주도가 좋아?”
모래를 밟으며 뛰어놀던 아이가 대답했다.
“응. 난 제주도가 너무 좋아. 바다에 이렇게 와서 놀 수 있잖아. 하고 싶을 때 모래놀이를 할 수 있잖아.”
그 대답 속에, 내가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제주도 가니까 좋아?
그 말속에는 두 가지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정말 말 그대로 제주도 가서 바다 가까이에 살면서 좋은 풍경 자주 보니 좋지 않냐는 의미, 다른 하나는 그래서, 풍경 하나 보고 가서 정말 잘 사는 거 맞는지 궁금하다는 의미.
맞다. 돈은 필요하다. 풍경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 돈을 ‘목표’가 아니라 ‘수단’으로 본다. 돈이 있어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돈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예전처럼 월급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나의 돈그릇을 키운다는 것이 이전과 달라진 시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돈을 버는 속도에 휩싸여 삶을 느끼는 속도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곳에 와서 나는 매일 가치를 다시 묻는다.
오늘 내가 한 일은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들었는가? 아이들에게 남기는 하루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
마음을 나누는 대화,
글을 쓰는 고요한 새벽.
그 모든 순간이 내 선택의 이유를 증명한다.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일은 때로는 불편하다. 불안도, 두려움도 함께 따라온다. 그러나 그 불안의 무게는 결국 내가 지킬 것을 선택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선택한다. 눈앞의 이익보다 오래 남는 울림을, 빠른 속도보다 깊은 시간을.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 삶을 천천히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