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길들이는 가장 작은 방법
새벽 5시, 알람이 울린다. 온 집안이 고요하다. 창밖은 아직 어둡고, 저 멀리 하늘도 아직은 어둠에 더 가깝다. 손가락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아주 조용히, 마치 달팽이가 소리 없이 스르륵 지나가듯 허물만 남기고 살짝 빠져나온다. 또 한 번 아주 조용히 이불을 개어놓고 몰래 집에 들어온 밤손님 마냥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거실로 나간다.
먼저 뜨거움과 차가움이 조화롭게 섞인 음양탕을 한 컵 마시고 소파에 앉아 싱잉볼 음악을 튼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불안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불안을 마주하면 그 불안이 금세 사라지진 않지만, 적어도 더 이상 나를 휩싸진 못한다. 그저 내 앞에 있는 감정으로써의 불안만이 남는다.
그리곤 노트를 펼친다. 감사한 일을 딱 세 개만 적는다. 어젯밤 자기 전 아이가 “엄마, 나도 엄마 좋아”라는 말을 해 준 것. 저녁 외식을 하고 소화시키러 바닷가에 가서 함께 웃으며 걸을 수 있었던 것. 바쁜 와중에 짧게라도 혼자 운동할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 딱 세 줄. 길지 않다. 그러나 그 몇 줄이 나의 어제와 오늘을 단단히 붙잡아준다.
월수에는 새벽수영을 가기 시작했다. 바닷가의 일출을 보며 수영장에 도착하는 삶. 그 영화 속에 내가 주인공인 것이 나의 행복지수를 한껏 끌어올려준다. 수영을 가지 않는 날 낮에는 요가를 하거나 홈트를 하거나 달리기를 한다. 하루에 최소 이십 분이라도. 숨이 차오를수록 꿈틀대던 불안은 갈 곳을 잃고, 대신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감각이 선명해진다. 운동은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니라, 내 마음의 정리이자 불안을 흘려보내는 통로이다.
책은 하루에 한쪽이라도 읽으려 노력한다. 물론 못 읽는 날도 있지만 책을 통해 나는 세상과 만나고 좁디좁은 나의 세상을 넓혀간다. 중요한 건 분량이 아니라, 그 작은 페이지가 정체된 내 삶을 계속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조금씩 발전하고 성숙해지고 있다는 확신. 그게 참 좋다.
그리고 마지막은 글쓰기. 스레드에는 매일, 짧게라도 글을 쓴다. 브런치에는 조금 더 긴 글을, 글쓰기 모임 카페에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남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나의 불안도 오히려 소재가 된다. 흔들림조차 글이 되면, 불안은 더 이상 나를 위협하지 못한다. 글은 나를 지켜내는 울타리이자, 나다움을 회복하는 가장 확실한 루틴이다.
루틴은 하루를 복사하듯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루틴은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다시 세우는 의식이다. 불안이 고개를 들면 나는 다시 새벽을 열고, 몸을 움직이고, 책장을 넘기고, 글을 쓴다. 그렇게 매일 반복하다 보니 불안은 내 안에서 서서히 길들여졌다.
제주살이에 적응하며, 주말부부를 청산하고 새로운 가정 형태에 적응하며, 나의 두 번째 인생을 고민하고 준비해 가며 불안이 증폭되어 올라올 때 나를 지켜준 것은 바로 루틴이었다.
누군가 삶이 흔들리고 불안하다면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다.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작은 루틴들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