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듣지 않고 믿지 않기를,
함부로 말하지 않기를,
함부로 듣지 않기를,
함부로 믿지 않기를.
어떤 의사는 달리기가
무릎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하고
어떤 의사는 달리기가
무릎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어떤 의사는 달리기를 하다
심하게 무릎 부상을 얻었고
어떤 의사는 달리기를 하다
무릎이 건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는 달리는 자세의 문제일 수도 있고
강도 설정의 문제일 수도 있고
선생을 잘못 만난 탓일 수도 있고
타고나기를 무릎이 약한 탓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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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언은 나의 경험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조언하기를 내가 이해한 만큼만,
그리고 내기 경험한 만큼만 조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만큼만 나의 삶의 저변이 넓어지기도 한다.
어떤 경험은 좋은 경험이고
어떤 경험은 나쁜 경험이 된다.
여기서 좋고 나쁨의 문제는
감정적 문제가 결코 아님을 우리는 안다.
누군가 나를 욕했다면,
그건 나쁜 경험일까?
누군가 나를 칭찬했다면
그건 좋은 경험일까?
누군가 나를 욕해서
내가 더 열심히 함으로
어떠한 결과를 제대로 낼 수 있었다면
그건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칭찬해서
내가 안주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
그건 나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좋고 나쁨의 판단은 늘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게 된다.
지금 당장의 현상을 가지고,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감정이 과하게 섞이므로
판단이 아닌 기분에 가깝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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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내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후배들이 내게 조언을 구하고
나의 생각이 어떠한 지를 묻곤 한다.
어떤 것이 좋은 선택인지,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내게 묻고 답을 기다리곤 한다.
그럴 때면 왠지
기가 막힌 답을 줘야 할 것 같은 부담과
여기서 같은 말만 반복하는 건
멋없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생겨나면서
최대한 나의 경험을 부풀리고 포장해서
그럴듯한 조언들을 해주기가 쉽다.
하지만 아무리 부풀리고 포장해도
내 경험 밖의 조언을 해줄 수는 없고,
내 경험이라 해봤자 아주 짧고 아주 작은,
아주 좁은 수준의 경험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한 사업가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성공한 방법이 존재한다면
앞으로는 그 누구도 그 방법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함부로 조언하거나
함부로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업들에게 있어서 공통적인 것은 거의 없고
태도나 자세 같은 것들만 유사한 경우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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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원한다.
그리고 빠르게 성공하기를 바란다.
손해를 최대한 적게 보고 싶고,
시간을 최대한 적게 사용하고 싶어 한다.
나 역시 그랬고,
그래서 많은 조언을 듣곤 했다.
그 조언들을 귀담아 들었고
그들을 믿기도 했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사기를 친 적도 없었다.
다만, 그들의 조언은
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음을
나는 전혀 몰랐었고
말하는 그들도 아마 몰랐던 것 같다.
물론 아주 작은 수준의 성취 같은 것들은
특정한 방법이 존재하기도 하다.
일반인의 경우
살을 빼는 법, 혹은 근육을 키우는 법 같은 것들은
방법이 정해져 있고 그 방법을 꾸준히 따라만 해도
효과를 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거대한 것들,
이를테면 성공적인 삶을 사는 법이나
성공적인 회사를 만드는 방법,
혹은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법 같은 것들은
한 사람에게 오로지 하나의 방법만 존재하며,
타인의 방법이 나의 것이 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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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함부로 조언할 수가 없다.
나는 그럴듯한 답은 해줄 수 있을지언정
그에게 적절한 답을 해줄 수는 없기에 그렇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힌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정답처럼 받아들이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나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내게 조심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의 삶의 방향성이 진정으로
그 자신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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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만으로 살아간다.
결국 우리는 내 일을 내가 해야만 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띠어야 한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나답게, 자신스럽게 살아가는 것.
이것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나를 대신 찾아줄 누군가를 찾는다면
그는 아마 사기꾼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제 함부로 듣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들을 함부로 믿지도 않는다.
과하게 포장되고 닦여진 이야기들,
그 이면에 감춰진 다양한 추악함들을
이제는 인정하고 그조차 포용하며
적당히 듣고 적당히 믿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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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정말 많이 속았다.
진심은 진심이 아니었고,
진실은 진실이 아니었으며
대부분이 감추어지고 포장된 이야기였다.
그 모든 순간을
나쁜 경험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로 보았을 때는 좋은 경험이었다.
속은 만큼 분별력이 생겼고,
거짓을 많이 경험한 만큼 진실에 가까운 것을
판단하고 소거할 수 있는 나름의 기준과
눈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서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고,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두 눈과 경험으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해야만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내게 좋은 행동을 해야만 사랑하는 것도 아니며
그저 인간이기에 그들의 나쁜 면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나 역시 그런 면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속으며 지내온 시간들 속에서
나는 그런 것들을 조금이나마 배우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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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누군가 내게 조언을 구할 때
정답인 양 말하지 않는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때때로 구역질 나는 위선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해봤는데’로 시작하는 말들 대부분은
아주 얕고 볼품없는 작은 경험으로 시작해
시간의 숙성이라는 포장지로 그럴듯하게 싸인
쓰레기와 같을 때가 너무나 많기에 그렇다.
내가 해본 것은 내가 해본 것이기에,
그가 할 일과는 사실상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나의 아주 옅은 그 경험으로
그 누군가의 경험을 막거나 재단할 권리 같은 것이
우리에게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시간을 많이 경험했다고,
정답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은 정답이 아니고,
그저 나의 경험에 불과하기에,
그냥 필요로 하는 이에게
그 정도만 이야기해 주면 될 일이다.
따라서 조언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이야기가 하나의 사례이며,
나의 경우가 어떠했는지를 이야기해 줄 뿐이다.
여기에 설득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람이기에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기에 더 건조하게 경험을 경험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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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과도한 조언을 구하는 일 역시
이제는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믿음으로 그가 나를 돕고
그로 인해 나아질 것이라 믿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자신 하나만으로 벅찬 사람이기에.
그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건사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하는
각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것으로 힘내고,
그것으로 다시 발을 뻗고
그것으로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그것으로 살아갈 뿐임을,
우리는 그저 그렇게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전부임을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함부로 말하지 않고
함부로 듣지 않으며
함부로 믿지 않는다.
그저 서로를 응원하고,
정답인 양 굴지 않으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 뒹굴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죽기 직전까지 그렇게 살아가다
좋은 경험이었다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우리 참 힘들지만 좋은 경험 했다
서로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런 하루, 그런 일주일, 그런 한 달.
그런 매일이 되기를, 그런 삶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