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유난

by 함주원

가을을 잡아두려 한다거나,

떠나가는 여름을 마음에 담아두려 한다거나,

햇살의 따스함을 누리려 한다거나,

건조하게 따스한 공기를 맛보려 하는 것들.


서늘해진 공기에

반가움과 아쉬움을 같이 느낀다거나,

청명한 하늘에 설레고

떨어지는 낙엽에 서글픔을 느끼는 것들.


지나간 여름을 추억하며

다가올 가을을 기대하면서도

시간의 흐름을 눈에 담으며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경험하는 것.


이러한 조용한 유난을 사랑한다.


-


가까운 베이커리에서

좋아하는 크루아상 하나를 사고

괜찮은 커피를 마시려

굳이 다른 카페에서 커피를 사는 것.


가을바람과 볕을 쬐기 위해

카페 안이 아니라

바람 부는 벤치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


효율과는 거리가 먼

조용한 유난들,


크루아상을 먹을 때는

한 입 크게 베어 물기보다

적당한 크기를 베어 물고

절대 급하게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


바스락거리는 표면과

쉽게 끊어지는 페이스트리를 느끼고

입 안 가득한 고소함과

버터의 풍미로 입 안을 메운 후


한참 뒤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한다.

크루아상은 과하게 달거나 짜지 않으므로,


절대 급하게 먹거나 마시지 않는다.

크게 베어 물거나 과하게 들이켜지 않는다.


가을 빛깔과 볕, 공기와 소리를

입 안에 같이 둘 수 있을 때까지,


지루할 만큼 천천히.


음악은 듣지 않는다.

음악은 언제든 들을 수 있어도

가을의 소리는

지금이 아니고선 들을 수 없으므로.


-


이토록 유난스러운 모든 일들에

작지만 뚜렷한 행복이 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맞이할 이 가을을

명료하게 느낄 수 있는 방식이기에.


시간의 유한성과

삶의 덧없음에 관하여 이야기하기엔

조금은 적절치 않을 수 있으나


모호하지 않은 뚜렷한 행복엔 늘

시간의 유한성과 삶의 덧없음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개념이 가을을 가을답게,

순간을 순간으로,

삶을 삶으로 바라보게 한다.


다시 맞이한 가을을

언제든 맞이하지 못할 만큼

소중한 것으로 여기게 하며

순간을 사랑하게 한다.


짧은 영상이나 과도한 음악이 아닌

순간과 계절을 누리며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


이러한 조용한 유난을 사랑한다.


영원하지 않기에

더욱 소중한 삶을

급하게 먹거나 마시지 않는다.


지루할 만큼 천천히,


삶의 빛깔과 주어진 빛,

공기와 소리를 마음 안에 가득 담아

지금 이 순간을,

나의 삶을 누리며 사랑한다.


어쩌면 이것이 삶의 아름다움인 것은 아닐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함부로 말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