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과 자기관리
최근에 들어서 저의 마음을 홀딱 빼앗아 가버린 한 다큐멘터리 쇼가 있다. 바로 스포츠 방송국사 ESPN에서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는 "Undrafted"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미국의 야구, 풋볼 또 농구 프로팀들이 대학 졸업 예정이거나 해외에서 초청된 우수한 선수들을 상대로 실험팀에서 미래의 선수들을 선발하는 (draft) 연례 행사가 있다. 선수들이 자신이 꿈에도 그리던 세계 최고의 프로 리그의 프로팀에서 엄청난 돈을 받으면서 대망의 프로 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디게 되는 첫 관문에 서게 되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이다.
오늘 실업팀에서 선발된 선수들의 이름과 그들의 유니폼에 새겨진 번호들은 그들을 사랑하는 수많은 펜들에게 각인되고 불러질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양과 음 또 절망과 환희가 공존하는 것인가 보다. 오늘부터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한 명의 환희를 맛보는 선수들 뒤에는 수백 명의 아니 수천, 수만 명의 선발에서 탈락함으로 처절한 비탄, 탄식 그리고 뼈아픈 실패의 쓰라림을 맛보는 선수들도 있다. 첫 도전에서 실패한 그들은 고향으로 눈물을 머금고 그들만큼이나 큰 슬픔과 좌절에 빠진 가족들과 함께 외롭고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흔히들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의, 즉 1%의 차이라고 하지만 그 1%의 차이가 참으로 잔인한 것임을 알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첫 번째 도전에서 실패한 수많은 젊은 선수들을 기다리는 것은 다름 아니라 사방에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숨 막히고 빽빽하기만 한 험산준령들이다. 선발에 탈락된 선수들은 이제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올해의 실패의 아픔을 이겨내고 내년을 기약하면서 뼈를 깎는 맹훈련에 몰입하여 또 한 번의 도전장을 내던질 것인가. 아니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쩔 수 없이 먹고사는 당장의 현실을 피할 방법이 없어서 꿈을 접고 직업 경쟁 혹은 생존의 경쟁에 뛰어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Undrafted"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주된 메시지는 이것이다. 탈락된 선수들에게 꿈을 꾸는 것은 엄청난 대가와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의 도전을 한다는 것은 바로 다른 모든 것의 포기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키 위하여 2개 또 3개의 임시 직업을 가진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을 하게 된다. 일단 실업팀에 들어가면 먹고 자고 철저한 선수 관리를 팀의 전문가들로부터 받게 되지만 홀로 남은 “Undrafted” 즉 뽑히지 않은 선수들에게는 모든 것이 내 머리와 어깨에 달렸다.
그 쇼의 하이라이트는 2개 3개의 일터에서 몸이 극도로 지쳐서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새벽과 한밤중에 홀로 처절하게 몸만들기에 혼혈의 힘을 쏟는 그들의 모습이다. 자기와 싸우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가를 처음으로 뼛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성공을 위하여 뼈를 깎는 외로운 홀로서기의 사투였고 혈투였다. 한순간이라도 마음과 몸을 느슨하게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각박하고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Undrafted” 된 선수들은 항상 전화를 체크하는 습관이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전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왜냐고요? 혹시라도 잠을 자는 동안에 화장실을 간 동안에 프로팀에서 자신들을 눈도장 찍고서는 “Drafted” 즉 뽑혔다는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희망고문 때문이다.
사실 때로는 팀에 기존의 선수가 시즌을 끝내야 하는 큰 불상사의 큰 부상을 당한다. 그러면 갑자기 예고 없이 탈락된 선수들을 부르게 된다. 하늘에서 내려준 기회를 위하여 곧바로 달려가 운동장에서 있는 것을 다 그대로 즉시로 보여주어야 한다. 어떤 핑계와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죽느냐 사느냐의 일생일대의 중대사이다. 최고의 선수들 속에서 또 최고의 시설과 최고의 코치 밑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느냐 아니면 또다시 배고프고 외롭고 처절한 홀로서기의 훈련을 할 것인가의 갈림길이다.
한 선수에게 “어떻게 힘들지 않는냐?” 질문하니 너무나 뜻밖의 응답이 돌아온다. 신기할 정도로 사람의 몸, 마음 그리고 정신은 꿈을 가지면 어떤 현실에 '길들여진다'라는 것이다. 가끔은 어떻게 해서든 먹고살아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와 또 어떻게 해서든 프로 선수가 되고자 하는 이상의 사이에서 번아웃 증후군에 걸리고 또 빽빽한 스케줄에 몸이 너무 지쳤어 퇴근할 때는 녹초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하늘의 도움인가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몸, 마음, 그리고 정신이 처절한 자신의 현실에 '길들여 진다'라고 한다. 녹초가 된 그러나 스파르타 식의 스케줄에 '길들여진' 몸을 이끌고 어두컴컴한 새벽에 운동장에서 달음박질로 비지땀을 흘린다. 나에게 처음으로 우리의 몸, 마음과 정신이 '길들여진다'라는 말은 참으로 충격적이었고 또 반대로 참으로 신선함을 느낀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길들여짐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결코 생소하지 말아야 할 일상의 단어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우리는 새 차를 구입해도 그 차를 주인의 운전 취향에 따라 잘 길들여야 한다. 그 길들임으로 그 자동차는 마침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우리는 항상 알게 모르게 누구와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또 길들이면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저와 저의 아내는 세상에서 금성에서 온 남자였고 화성에서 온 여자라고 할 만큼이나 환경이 다르다. 언젠가 한국에서 아버지가 아들 부부의 신혼집으로 방문을 하셨다. 저는 집에서 공부를 했고 아내는 직장을 가는 날이 많았다. 자연히 시장 가는 일은 남편인 저의 몫이었다. 한번은 계란을 사는데 먼저 계란 박스의 뚜껑을 열고 부서진 것이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실컷 심부름을 해놓고서 나중에 아내에게 확인하지 않고 상하고 부서진 계란을 샀다고 '혼'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옆에서 가만히 아들을 지켜본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를 하시겠나요? 한국에서는 자라면서 귀가 닮도록 들었던 가문의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 있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그리고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가 떨어진다"라는 말에 세뇌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그 아들이 지금 시장 가서 계란을 열고 확인을 하는 ‘꼴’을 지켜보는 것이다. 아버지가 한국으로 가시면서 공항에서 하신 말씀이다 잘 길들여져서 미국놈이 다 되었다고 말이다. 칭찬인지 욕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그런데 거기가 이 아들의 길들여짐의 끝이 아니다. 결혼하기 전의 저는 부전자전이라고 철저하게 채식주의자였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면서 저는 철저하게 육식주의자가 되었다. 이제는 아예 시장을 가면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정육점으로 가고 있다. 잘 훈련되고 길들여진 조교처럼 습관적으로 나는 시장바구니에 갈비를 먼저 집어 든다. 이제는 알아서 기는 수준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만약에 하늘에 가신 내 아버지 엄마가 내려다보시고 이렇게 잘 길들여진 아들한테 얼마나 가무라 치실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무엇에 길들여지는가 또 우리는 무엇으로 누구를 길들이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SNS 등의 발전으로 인하여 너무 얄팍하고 건성의 방법에 길들여 저서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이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그 관계는 너무나 일시적이고, 가볍고, 또한 진지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봅니다. 그 결과 소중한 관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존재로서 가장 아름답게 길들여질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어린 왕자의 명언이 내 가슴을 촉촉이 감동시킨다.
저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의 사랑과 행복의 정의가 바로 서로에게 '길들여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로 돌아가서 '길들여짐'을 묵상합니다.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을 거야...... 의례가 필요해." "의례가 뭐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것도 모두들 너무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