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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링반데룽을 벗어나기 위해서~~

정체성, 신분의식, 목적, 빛

by Joung park

누구나 살다 보면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올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죽을 뻔'했던 그날의 그 시간으로 거슬러 가본다. 그러니까 1987년 11월 중순쯤 유학 중이었다. 추수감사절 휴일을 맞아 본토박이 미국인 학생들은 고향으로 다 가버리고 올 데 갈 데 없었던 외국인 학생들만이 그 광대한 캠퍼스에 남아 있었다. 그때만큼이나 생전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황량함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젊음과 쓸쓸함은 절대로 섞여지면 안 되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무엇인가 훗날 감당 못 할 객기를 부릴 나이였었다.

다른 외국인 유학생들 5 명을 '충동' 하여 함께 워싱턴 D.C.에서 불과 120km 떨어진 셰난도우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에 겨울 등산을 갔다. 되돌아보면 젊음의 6대 라는 용기, 패기, 혈기, 호기, 끈기 그리고 객기는 '하늘길', 스카이 드라이브(Skyline Drive) 안에서 끝을 내야만 했었는데…. 그날 나는 또 친구들과 의기투합하고 용기백배하여 겨울철 셰난도우 공원 등산을 감행한 것이다. 모르면 약이라고 했던가 아니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우리 일행은 눈 덮힌 산길을 올라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점점 엄습하는 두려움은 무엇일까? 자동차 안에서 볼 때와 직접 숲속으로 들어와 볼 때는 딴판이었다.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우리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은 손가락 안에 있는 내비게이션, GPS 그리고 Google map 등은 아직 생소할 때였다. 그냥 젊음의 패기, 혈기 그리고 객기만으로 무장하고 올라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미국 산을 얕잡아 볼 수가 있었을까?


한마디로 팔뚝과 어깨 하나를 믿고 겨울 산행을 오르기로 한 것은 무모함 그 자체였다. 얼마나 혈기가 넘쳤는지 어느 누구 하나 공원의 일기예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산 아래에서 벌써 감지 했어야 할 이상기류 즉 짙은 구름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이다. 등산화 그리고 비와 눈에 대비할 두꺼운 겨울 잠바조차 준비하지 않았고 단지 다들 테니스 신발과 평지에서 입을 정도의 잠바로 무장했을 뿐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은 아마도 우리 같은 사람을 보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그냥 미국에 오기 전에 자신들의 나라에서 동네 언덕이나 마을의 산 정도를 탄 것이 유일한 산행의 경험은 험한 겨울 산 앞에서는 '유명무실' 그 자체였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셰난도우 공원의 산길들은 평상시 보다 훨씬 더 빨리 어두움이 찾아왔었고 피부로 느끼는 온도는 훨씬 더 차갑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잃고 말았다. 두세 시간 정도를 갈 길을 찾아 헤매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두세 시간을 걸었는데도 같은 길을 계속 걷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일행들 모두에게 서서히 정체 모를 꺼림칙한 공포감과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공포감인지 정신을 차리려고 하면 할수록 그 자리에서 점점 지쳐가는 서로들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를 더 공포감으로 몰아갔다. 겨울 산행은 그렇게 막무가내로 뛰어드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난 훗날 이런 현상을 ‘링반데룽(Ringwnaderung : 환상방황(環狀彷徨))’이라고 한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주어 들었다. 원을 의미하는 독일어 ‘Ring’과 걷는다는 뜻의 ‘Wanderung’ 이 합쳐진 등산 용어로 등산 도중에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길을 찾아간다는 것이 같은 지역만을 맴돌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언젠가 겨울 한라산에서 만난 한 휴게소 관리인이 눈보라 치는 밤에 화장실에 갔다가 코앞에 있는 숙소를 찾지 못해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히말라야 8천m 고봉을 오르내린 전문 산악인이었는데도 그러했다. 그래서 소설가 황순원은 소설 ‘링반데룽’에서 “그때 보통 등산 자는 자기가 목표한 곳을 향해 곧장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자신도 모르는 착각에 의해 어떤 지점을 중심 한 둘레를 빙빙 돌기가 일쑤인 것이다... “라고 했나 보다.


역시 미국은 미국인가 보다.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그것도 이억 만리 타향에서 죽으라는 법은 없었나 보다. 감사하게 우리가 공원에 도착하기 처음부터 내내 우리들을 보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 허술하게 차려입고 산길을 오르는 외국인 학생들이 놀다가 가겠지 생각을 하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그런데 해질 무릅에 아직도 파킹장에 있는 자동차를 확인하면서 아직도 하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구조대가 달려온 것이다. 허둥지둥 한참을 내려오다가 어둠과 안개를 뚫고 저 멀리서 비추어진 안내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손에 든 전짓불의 빛이 보였다. "살았구나!" 합창으로 터져 나왔다.


그날 이후 35 년이 훌쩍 흘러갔다. 하지만 그때의 생생한 '악몽' 기억은 아직도 어저께 일처럼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겨울 산행이든 여름 산행이든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길을 잃으면 제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그리고 또 중요한 사실은 길을 잃으면 빛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우리가 어두움을 뚫고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을까요? 바로 불빛을 발견한 것이다. 별빛과 달빛 아니면 전등불이라도 아니면 촛불이라도 좋으니 불빛을 찾아야 살 수 있는 것이다. 빛을 찾고 따라가는 것이 삶의 으뜸임을 깨달았다.


살아보니 셰난도우 산행길이나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에는 닮은 점이 너무 많다. 우리네 인생길도 산행길 같이 잘못된 길을 걷다가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알지 못해서 아니면 갈 수밖에 없어서 택한 길을 평생을 헤매며 살 수 있다. 돌아갈 수 없이 멀리 왔어도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망설이고 체념하며 산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주저앉아 울기도 하는 나 자신을 지켜볼 때가 많다. 마치 수십 년 전 셰난도우 산행길에서처럼 말이다. 문제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링반데룽(Ringwnaderung' 과 '환상방황(環狀彷徨)' 이라는 고질병에 시름하고 시달리고 있다.


솔로몬의 지혜는 역시 경이롭기만 하다.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몸을 씻고도 다시 진탕에 뒹군다.'라는 속담이 (벧후 2:22)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또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분쟁, 사기 등의 육신의 일과, 온갖 우상숭배, 술수, 원수를 맺는 것, 투기, 방탕함' 등의 짙은 안개에 눈이 멀어져 갈 길을 잃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사람이 우리가 아닌가? 1987년 11월경 셰난도우 산행길에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를 살린 그 빛이 간절히 그리워진다.


언젠가 나와 같은 심정으로 인생의 '링반데룽(Ringwnaderung' 과 '환상방황(環狀彷徨)'을 터널을 걸어가던 한 사람을 만났다. 내가 참 존경하는 한국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 불러졌던 고 <이어령> 스승이다. 그의 생애 첫 시집인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에 이런 글이 있다.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중략...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모래알만 한 한 별이라도 좋으니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깜깜한 가슴속 밤하늘에 떠다닐 반딧불 만한 한 빛 한 점이면 족합니다...." 당대 한국 최고의 지성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그분이 사실은 얼마나 간절히 처절하게 자신의 영혼을 비춰줄 빛을 갈망하고 있었는지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젊을 때에 '링반데룽'의 선상에서 좋아한 노래인데 김세환의 '길 잃은 사슴'입니다.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갈까 길을 잃고 헤매던 사슴 한 마리 네온사인 반짝이는 갈림길에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잃었던 그리운 님 찾아서 가네..." 언제 나는 길 잃은 사슴이 아니라 길을 찾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 고민이 깊어가는 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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