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의 질주 위에 완주가 있다

절제, 겸손, 성

by Joung park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다. 언젠가 너무나 뜻밖의 ‘할아버지 전상서’라는 편지를 고향의 생면부지의 조카뻘 손자로부터 받았다.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에 근 45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오늘 나에게 편지를 쓴 아이의 아버지가 내 조카인데 코흘리개였고 한창 어리광을 부리던 나이였는데 이제 그 조카가 의젓하게 성장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어 그 아들이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대충 사연인즉 이렇다. 그 아이가 악몽의 ‘고 3의 입시지옥’ 이라는 긴 터널을 경험하고 있었다. 새벽에 집을 나가면 별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쳇바퀴 같은 답답하고 지루한 스케줄에 메여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친구들과 놀러 가고 싶은 거 다 꾹 참고 몸이 아파도 참아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참아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시험을 앞두고서는 일정 기간 손톱 발톱 심지어 머리카락조차도 못 깎게 하는 거의 수도성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것이다.


간혹 대학은 꼭 가야 하나 대학 말고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천지삐까리'인데 라고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다가 스스로 지치고 만다. 정말이지 ‘가방끈이 길어야 성공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유명한 사업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면서 부모에게 항의를 해본다. 바위로 계란으로 치는 심정으로 말이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는 다 대학 중퇴자들이다. 그래도 각자의 분야에서 세상을 주름잡고 있지 않은가라고 항변을 해보지만 엄마와 아빠는 하나같이 자신의 편이 되질 않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의 18번 훈시가 들려올 뿐이다. “너는 고3이다.” “고 3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야. 지금부터 1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에 올인하면 이루지 못할 건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고3답게 살아야 해. 여행을 가고 싶어도, 고3은 이성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대학 천국 들어가서 하면 되잖아 그러니 참아야 해” 매몰찬 부모님의 불호령만이 허공을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고 하나 보다. 또 이런 경우를 두고 ‘격세지감’이라고 하나 보다. 번갯불에 콩볶듯, 후다닥 세월이 지나고 그 악명 높은 ‘고 3지옥과 대학 입학 지옥’의 길을 걸어갔던 그 아이가 훌쩍 자랐다. 수많은 사춘기의 어렵고 힘겨운 상황들과 유혹 속에서도 용케도 잘 참고 견디며, 또 반항기이고 방황기 시절 자신의 감정을 특별한 절제의 능력으로 이겨내어서 이제는 ‘대학 지옥’ 또 ‘취업 지옥’ 전쟁에서도 승리하고 사회인으로 우뚝 선 것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그 아이가 흘렸던 피, 눈물 그리고 땀의 대가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지금까지 그의 삶을 상징하는 수식어들은 ‘연전연승’, ‘백전 백성’, ‘시종일관’ 그리고 ‘거침없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앞만 보고 질주해 온 노력의 결실이다. 이제 또 다른 매듭을 짓을 것이다. 훗날 돌아보면 마치 대나무가 매듭을 지으면서 자라듯이 그 아이도 또 하나의 매듭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어떤 매듭을 쌓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리라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마도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을 아프리카에서는 사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한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내 나름대로 할 일은 무엇인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 아이에게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인데 <마시멜로 두번째 이야기> 중에서 빌려온 것이다. 아프리카 사막에서는 매일 아침 가젤이 깨어난다. 가젤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는 것을 안다. 매일 아침 밀림의 왕자 사자도 깨어난다. 사자는 가장 느린 가젤보다 더 빨리 달리지 못하면 굶어죽는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사자냐 가젤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해가 뜨면, 당신은 무조건 뛰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사자에게 잡혀먹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리던 가젤은 자신의 빠른 네 다리가 사자쯤은 문제없이 앞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꼭 이렇게 늘 달리지 않아도 설마 사자가 나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내가 왜 이렇게 바보같이 살았지?’라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또 열심히 달리며 가젤을 쫓던 숫사자는 어느 날, 자신이 사냥하지 않아도 다른 암사자들이 사냥해 온 것만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이상한 현상이 사막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갑자기 가젤과 사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을 한 것이다. 알고 보니 자신의 실력을 믿고 방심하던 가젤은, 처음 사냥에 나서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어느 사자에게 잡혀먹히고 만다. 또 암사자가 사냥해 온 것만을 먹으며 나태해졌던 사자는 무리에서 버림을 받아 굶어 죽고 마는 것이다. 아뿔싸! 가젤도 사자도 몰랐던 것이 있었다. 밀림의 세계에서는 해가 떠오르면 무조건 달려야 함을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아프리카 초원에서 생존하려면 모든 것은 겸손해야 한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살기 위해 그토록 뛰던 톰슨가젤과 사자가 어느 날 겸손을 잃을 때 자만과 교만과 오만에 빠져 톰슨가젤은 뛰지 않다가 젊은 사자에게 먹혀죽고 사자는 무리에서 퇴출돼 굶어죽고 말았다.


오늘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아이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려면 아프리카 초원처럼 경쟁 속에 살아가게 된다. 이 할아비의 간절한 부탁이다. 그 아이가 살아가면서 가젤과 사자의 이야기를 떠올리곤 했으면 좋겠다. 운전을 하다가 한 번씩 습관처럼 자동차 백미러를 보듯이 한 번쯤은 가젤과 사자의 운명을 상상하면 좋겠다. 왜나하면 물은 고이면 본래의 깨끗함을 상실하며 썩어 버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태만은 우리 마음의 활기를 빼앗아가고 만다.


제가 45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장 잘나가던 휴대폰 그리고 전자 제품들의 브랜드 이름들이 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의 삼성과 현대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던 시절이다. '휴대폰 왕국' 노키아, 소니와 파나소닉 전자 제품 그리고 우리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사진에 담아 영원히 간직한다"라는 뜻의 '코닥 모멘트’란 신조어를 선물한 코닥 필름 브랜드들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들 '성공 기업'의 대명사 브랜드 제품들이 사라지기 시작을 한 것이다. '챔피언의 저주'에 빠져 버렸던 것이다. 가젤처럼 사자처럼 어느 순간에 안주와 교만의 병이 찾아온 것이다. 마치 한때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고, 한때 실력을 갖춘 유망한 축구 선수였고, 한때 세계 최고로 인정받던 기업이었는데, 왜 문제아가 되고 무명 선수가 되고 망하는 기업이 되었을까요?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를 너무 믿고 과신하여 자만심과 무기력에 빠져 버렸던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제가 가장 존경하는 마라톤 선수로 ‘맨발의 선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아베베라는 선수를 꼽는다. 이 선수는 1960년 로마올림픽 그리고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사람들은 그 선수의 커리어에 끝이라고 간주했다. 이제 더 이상 아베베 선수가 달리는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4년 후에 런던에서 장애인 올림픽이 열렸는데, 휠체어를 타고 달려서 또다시 우승했습니다. 전 세계 언론들이 대서특필해서 기사를 썼습니다. 올림픽에서 마라톤으로 세 번을 우승한 후에 어느 기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놀라운 기적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까?” “예, 저는 그저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특별히 교통사고가 난 후에도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비록 휠체어를 타고 있었지만 날마다 달리는 생각을 했고 또한 열심히 달렸습니다.” 가젤이 사자가 들었더라면 그들의 운명이 달라졌을 턴데 아쉽기만 하다.


여러분 위인전을 읽어봐도 그렇고 이민생활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이뤘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열심히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 인생에서 질주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완주이다. 그 아름다운 끝을 향하여 끝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다. 그렇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이다. 인생에서 가장 완숙한 사람들의 입에서는 늘 항상 나는 ‘노 브레이크 맨이다’ 또 ‘최선을 다하여 여기까지 왔지만 … 지금부터는 더 … ‘라는 사람이였다. 긴가민가하다면 주위를 한 번 돌아봐라. 인생에는 한 구간을 반짝 질주한 사람은 수두룩하다. 그런데 완주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끝으로 제가 중학교 시절인지 고등학교 시절인지 국어책에서 배웠던 ‘고지가 바로 저긴데’라는 제목의 이은상 씨가 지은 시가 있습니다. 모든 악조건과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면서 부단히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의 백미는 뭐너뭐니해도 가장 강력하게 가슴에 와닿았던 ‘고지가 바로 저기에 보이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는 구절일 것이다. 추구하고 있는 어떤 목표가 이제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거기서 중도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이라는 권면이다. 그것은 그때까지의 온갖 노력과 고생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실로 어리석은 생각이며 최악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카나리아 새를 애완용으로 한 번 키워보시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