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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9회말 2아웃 부터이다. 인생도 그렇더라

인생 뒤집기, 반전 그리고 역전

by Joung park

정확히 꼭 일 년 전의 일이다. 단연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날이었다. 뭔가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우리 집의 행사들은 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가능하면 최고의 생색을 내자는 가훈의 울타리 안에서 행해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특별했기에 왜 그날의 생일 행사가 이토록 아직까지 마음에 쏘옥 와닿았을까? 내가 병원에서 생일날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그날 내 인생에서 가장 별난 곳에서 별난 생일을 맞고 있었다. 어저께 환갑과 진갑이라고 야외에서 가족들과 함께 핫도그와 햄버거 파티를 한 것 같은데 벌써 내 인생의 다음 정거장인 ‘고희(古稀)’을 향하여 쏜살같이 67마일 (107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병원에서 말이다. 지금 식구들 앞에서 나는 팔에 링거 바늘을 꽂고 수액을 맞고 원인 모를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찌그러지고, 우그러지고, 또 쭈그러져 있는 표정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생일 케이커 촛불을 부는 것이다. 나는 그날 병원에서 깨달았던 것이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배 (double) 가 되는 것이 있더라. 나의 뱃살이 배가 되고, 몸무게가 배가 되고 또 인생 넋두리와 신세타령이 배가 된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병원이라는 곳에 사람이 있다보면 그 모든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간다.


미국에서 병원 신세를 져본 사람들은 삼척동자도 알리라 믿는다. 환자들은 아픔으로 인한 고통뿐만 아니라 높은 치료비 그리고 늦장부리기에 주눅이 들고 만다. 그날 나는 의료진들과의 끊임없는 숨바꼭질과 줄다리기에 나의 모든 기력을 소진한 건지 가만히 앉아있어도 힘이 들었다. 체력이 거의 바닥났었고 또 진이 다 빠져서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들었다. 그 와중에서 코빼기도 안비치는 함흥차사가 된 담당 의사들과의 신경전으로 내 심신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아이들이 내 방으로 생일 케이크를 들고 올 때쯤 나는 정신적으로 몹시 황량하고 피폐해져 있었다. 나중에는 어떻게 나 자신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센티멘털(sentimental) 또 멜랑꼴리 (Melancholy) 해져 있었다.


뭔가 모르게 울적하고 우울한 기분, 세월은 가고 나이는 들면서 전 해에 다하지 못한 것의 허무랄까 허망함이 감당치 못할 힘으로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럴 땐 입단속을 잘해야 했었는데 아뿔싸! 그만 순간의 감정이 나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신세타령이 결과물이다. 뜬금없이 스티브 잡스 (Steve Jobs), 빌 게이츠 (Bill Gates),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 그리고 월드와이드웹(WWW)을 만들어 인터넷의 기초를 제공한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라는 이름들을 들먹이기 시작하였다. 다들 한마디로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IT혁명가’들이다.


빌 게이츠는 ‘Window’라는 걸작품으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문Gate’가 되었다. 아마도 당신은 지금 게이츠 (Gates) 가 만든 문(Gate)을 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또 그 문 (Gates)을 닫으면서 피곤한 하루 일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올 확률이 높다. 아이폰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 (Jobs)는 아이폰이라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직업(Job)을 창출 한 인물이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는 모든 사람을 구글 ‘Google search’ 그리고 ‘Google Map’이라는 걸작품을 통하여 누구나 다 만물박사로 만들었고 또 지금 당신이 낯선 길 선상에서 미아가 되지 않고 당신의 목적지로 무사히 도착했다면 에릭 슈미터의 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팀 버너스 리는 (WWW)로 ‘새로운 지구’를 우리들 안방에 만들어 주었다. 손가락 놀림 하나로 세계는 하나가 되고 만 것이다.


이런 질문이 나올법하다. 아니 왜 하필이면 생일날 아이들 앞에서 케이크를 먹는 마당에 위인들 이야기는 왜 들먹일까? 잔칫집에 재 뿌리는 모양새인데… 내가 한 시대의 흐름을 주름잡았던 불세출의 이름들을 거들먹거리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들 당대 최고의 창시자 4인방과 내가 다 55년 생으로 양 떼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온순하고 순진한 양과는 거리가 먼 ‘양답지 않은 양’의 위풍당당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나는 여태껏 ‘양의 침묵’을 지키며 어정쩡하고 또 어영부영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자괴감과 후회를 아이들에게 털어놓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병마 앞에 장사가 없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나는 절대로 가지 말아야 했을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절대로 이토록 연약하고 고개 숙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했는데 나는 지금 아이들에게 생일 케이크를 먹으면서 신세타령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학수고대했던 그날이 왔다. 아이들이 병원으로 가지고 온 생일 카드와 함께 자신들의 PC에 담겨 있는 영화 한 편을 꼭 보라는 신신당부를 헀다. 이 마당에 웬 영화인가? 영화의 원제는 ‘트러블 위드 더 커브(Trouble With the Curve)'인데 명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했으며 한국에서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로 알려진 영화이다. 왜 아이들은 하고많은 영화 중에서 하필이면 이 영화를 생일을 맞이한 아버지에게 꼭 보라고 할까? 알고 보니 아이들이 ‘침묵 중’인 55년 양띠 아버지의 병상에서 터져 나온 신세타령을 듣고 위로차 보라고 선택한 영화이었다.


아이들이 간청한 영화 ‘트러블 위드 더 커브(Trouble With the Curve)' 속에 등장하는 노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을 보고 나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배우에게는 그 사람만이 가지는 트레이드 마크라는 것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당대 최고의 서부극의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존재감을 뽐내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시가를 질겅대며 먼지투성이 망토를 걸치고 나타나 나쁜 놈들을 향하여 눈 하나 깜짝 않고 방아쇠를 거침없이 당기던 그 아우라와 카리스마의 배우였고 서부극의 영원한 터프가이 아이콘으로 60-70 년대 서부극을 섭렵했던 마초 냄새가 물컹물컹 사나이 중 사나이이다.


그런 그가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에서는 한 마디로 피골이 상접하고 검버섯이 푸릿푸릿 돋았다. 변한 그를 보며 세월의 무상함이라는 말을 새삼 느꼈다. 갈팡질팡하는 노배우의 모습은 나를 당혹스럽고, 혼란스럽고 또 참담케 했었다. 그만의 위풍당당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영화 시작부터 나는 나의 로망 배우가 화장실에서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볼일을 보면서도 ‘젖 먹던 힘까지 다 한다'라는 말처럼 온몸의 기력을 다 쏟아부어야 할 만큼이나 끙끙 되는 팍 늙어버린 클린트 이스우드를 만난다. 그리고 피자를 배달 받고 50불짜리 지폐를 20불로 착각해서 건네야 할 만큼이나 나빠진 시력 또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수십 년을 살았던 자신의 집 거실에서까지 자꾸만 뭔가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 또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서도 음식이 새까맣게 타들어가 짙은 연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거나 화염에 휩싸이는 순간에도 전혀 느끼지 못하다 마침내 딸이 와서 다행히 큰 화를 면하는 모습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차라리 고문에 가까운 시간들이었다. 마침내 영화의 반전이 있을 때까지는…


영화의 감동적인 반전은 제목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Trouble With the Curve’에 함축돼 있었다. 간추린 영화의 스토리이다.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한 시대의 야구계를 주름잡았던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스카우트였다. 그의 그동안의 위업이 말하듯 그는 아무나 따라잡을 수 있거나 대적할 만한 상대가 아닌 스카우트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야구장에 앉아 미래의 선수들을 관찰하려 든 그는 자신의 눈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을 한다. 스카우트는 눈으로 선수들을 봐야 하는 직업인데 눈에 이상이 온다는 것은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이고 날벼락의 소리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를 둘러싼 ‘뒷담화’와 ‘험담’이 생기기 시작을 하면서 회사의 분위기도 계약을 3개월 앞둔 그에게 ‘반강제’ 은퇴를 모색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침내 노장 스카우트는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이 될 줄 모르는 스카우트 여행을 하게 된다. 마지막의 변수 (Curve) 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박진감과 긴장감 그리고 초조함과 흥분함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노장이 마지막 여행을 할 바로 그 찰나에 또 하나의 장면과 절묘한 오버랩을 하였다. 바로 노장의 딸이 등장한다. 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절친 친구의 간절한 부탁으로 아버지와의 불편한 동행을 결정한다. 딸에게도 어느 순간에 찾아온 절체절명의 변화구 (Curve)와의 대면의 순간이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서 딸을 양육시키는 것이 힘들었기에 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6살 난 딸을 남에게 맡긴다. 그런데 그 딸은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을 하였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딸은 이제 의젓하게 성장해서 큰 로펌 회사에서 여성 최초의 파트너라는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꿈을 실현하는 순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앞만 보고 쉴 틈 없이 일만 했던 딸이다. 그러나 이 딸에게도 남모르는 삶의 어두운 그림자가 늘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아버지와의 서먹서먹, 껄끄럽고 또 소원하기만 했었던 관계이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마다하고 더 중요한 것은 찾기 위하여 과감하게 포기하고 아버지를 동행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변화구 Curve’를 피하지 않고 정면 숭부를 한다. 아픈 상처 때문에 서로를 외면했던 아버지와 딸의 감동적인 화해가 나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영화의 끝에서 모든 인생의 에피소드가 합해지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를 한다. 딸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자신이 진정으로 가슴 뛰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도 얻게 된다. 야구로 치면 ‘만루 홈런’을 치는 것이다. 아버지 역시 아무리 디지털 시대지만 결국은 오랜 경험과 직감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아날로그 삶의 승리를 만천하에 선언하게 된다. 그 직감으로 아버지와 딸은 아직까지 흙 속에서 감추어져 있지만 훗날 당대 최고의 투수가 될 선수를 발굴하는 위대한 역사를 만들게 된다.


하마터면 두고두고 훗날 대재앙적인 스카우트가 될 뻔한 순간에 직면할 뻔했던 회사를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구하게 되는 횡재를 경험한다. 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9회말 2 아웃에서 ‘만루 홈런’을 치는 것이다. 결국 딸도 얻고 또 회사의 (공수표와 무조건 다 들어주겠다)라는 재 계약도 얻게 된다. 한마디로 제목에 걸맞게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변화구에서 공포증을 느꼈지만 함께 동행을 하면서 그 마지막 인생의 변화구를 보기 좋게 담장 밖으로 넘기고 있었다.


비로소 아이들이 영화를 통하여 이 55년 양띠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구와 인생은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이 귀에 쩡쩡 울리는 날이다. 나이 타령, 신세타령하는 이 아버지에게 아들들이 인생의 ‘마지막 역전 찬스는 언제나 돌아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사람은 나이만큼 늙는 것이 아니라 생각만큼 늙는다.’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우거나 새로운 꿈을 꾸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라는 말로도 들린다.


오늘처럼 이렇게 기지개를 힘차게 펼친 적이 언제였던가? 20대 아니면 30대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왠지 벌써부터 내년 생일날이 기다려지는 것은 왜일까? 아들들에게 55 년생 양띠 아버지의 침묵에서 깨어난 그리하여 ‘양답지 않은 양띠’의 반전과 돌풍을 보이고 싶다. 자랑스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 9회말 2 아웃에서 만루 훔런을 친 아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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