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편향, 편견과 고정관념
어느 날 한국에 있는 60년 지기 내 친구에게서 한 감동 덩어리의 지하철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선물로 받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가 보낸 이야기들은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멩이 하나의 '퐁당'이 만든 물결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나중에는 커다란 파동이 되듯이 내 가슴에서 좀처럼 가시지 않은 큰 여운의 물결을 치게 하곤 했었다. 그 친구가 직장을 가기 위해 그날도 지하철을 탔다. 예외 없이 지하철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지하철의 무시무시한 인산인해였다. 숨 막히고 현기증 날 만큼의 바쁘게 돌아가는 친구의 하루가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 비좁고 숨 막히는 전철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모두가 모두에게 성가시고, 짜증 나고 그리고 귀찮은 존재가 되는 시간과 공간의 접촉점이었다. 철렁이는 전철 안에서 어쩔 수 없이 한 두 번쯤은 눈 마주침도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불편하고 성가실 뿐이다. 그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방법은 눈 딱 감고 귀 막고 고개 숙이고 죽으면 죽으리라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어디에선가 한 남자가 비좁은 공간을 밀치고 헤쳐서 어디로 갈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전광석처럼 모든 사람들의 뇌리를 스쳐가는 "이런 무례한 인간!"이라는 생각과 함께 살짝 훔쳐본 그는 50대 중반의 남자였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숨 막히는 공간을 뚫고 그 낯선 남자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을 했다. 고개를 숙인 모두들의 속에서 그가 유일하게 고개를 들었기에 이제 모든 사납고 날카로운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째려보게 되었다. “차내에 계신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지금 너무 급해서 그럽니다. 저희 딸이....백혈병에 걸려서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그래서.....헉헉”
화들짝! 순식간에 지하철은 그 남자의 소리에 놀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갑자기 출렁이는 전철이 사람들의 노골적인 불평과 원성의 소리로 출렁이기 시작을 했다 “저런 인간이 딸을 팔아먹냐, 돈이 그렇게 궁하냐”등등...그러나 모든 원성과 핀잔의 돌팔매질이 그를 향하여도 한동안...그 남자는 창백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가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각자의 마음속에 그다음에 그 '몹쓸' 사람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뻔하게 기대하고 있었다. "돈을 좀 부탁합니다"라는 그런 동냥을 구하는 말을 예상하고 숙인 고개를 더 숙이고 있었다, 바로 그 찰나에 그 남자의 입에 터져 나온 말이다. “오늘 제 딸이 수술을 받는데 제발 단 1초만이라도 지금 기도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저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입니다. 제가 지금 너무 급해서 어디에서 누구에게 부탁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오늘 여러분께서 기도를 좀 해주세요 ” 순간 열차 안은 방금 전까지의 격한 분노와 원성의 소리는 마치 아침 안개처럼 온데간데없어졌고 단지 숨 막히는 적막함과 고요함만이 가득해진 것이다.
여기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거울을 바라보면서 답을 하셔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날 그 순간에 전철을 탔던 사람들 중 한 분이라면 여러분은 그 남자가 딸 이야기를 할 때에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혹시나 여러분과 저 자신도 그 화난 군중들처럼 순간적으로 그를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파렴치하고, 비열하고, 도저히 인간으로 볼 수가 없는 또 한 톨의 양심도 안 가진 딸을 팔아먹는 그런 기생충 같은 인간이라고 확정하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도 그 속에서 그 사람을 향하여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돌을 던지지는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다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도 어디에선가부터 알게 모르게 한 영혼을 향한 스스럼없는 돌팔매질 저격의 현장에 동조범이 되고 또 공범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요? 왜냐하면 우리도 다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날 전철에서 고개를 든 사람은 유일하게 그 남자였고 당연히 그만이 고개를 들고 전철에서 내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진짜 남자'였던 것이다.
여러분 혹시나 심리학 용어 중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답정너' 라는 단어이다. 즉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되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확증편향’은' (Confirmation bias)이란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 판단 등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즉 우리는 다 '내 생각' '내 습관' 또 '내 상식'의 굴레, 감옥, 울타리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다 '우물안에 개구리'처럼 보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것만, 또 믿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보고 듣고 믿는 사람으로 좁고 편협한 마음으로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 같은 인격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빙산의 일부만을 보고 세상을 다 알고 본 것처럼 '객기'를 부리는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라는”이라는 말은 바로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은 아닐까요?
친구가 소개한 지하철 남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확증편향의 끝판왕이 될 것 같고 우리의 삶에 참으로 귀한 반면교사가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노부부가 보스턴 역에 내렸습니다. 낡고 허름한 옷차림의 노부부는 곧장 하버드대학교로 향했고 총장실을 찾았습니다. 총장 비서는 노부부의 옷차림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총장님은 종일 바빠서 외근 중이고 만날 수가 없노라.”라고 거짓말을 했고, 그 말에 노부부는 “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대답하고는 네 시간 동안이나 앉아 기다리는데 비서는 ‘보나 마나 귀찮은 청탁이나 하러 왔겠지’ 하는 생각으로 차 한 잔도 대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떠나지 않자 그제야 총장실에 들어가 보고를 했습니다. 총장 역시 몹시 귀찮아하며 응대합니다.
이야기인즉은 노부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하버드를 다니던 중에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래서 노부부가 그 아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하버드대 캠퍼스에 기념물을 세우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총장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하버드를 다니다가 죽은 사람을 위해서 동상을 세운다면 이 학교는 공동묘지가 될 것입니다.”라며 비아냥거리듯이 대답합니다. 그러자 “동상을 세우려는 게 아니라 건물 하나를 기증하고 싶습니다.” 총장은 후줄근하고 낡은 옷차림을 훑어보고는 “건물 하나를 짓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기나 하세요? 하버드 건물을 짓는데 750만 달러가 넘게 들었습니다. 알기나 합니까?” 이 말에 노부부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로 마주 보며 “여보, 그 정도면 학교를 세울 수 있나 봅니다. 그냥 우리가 대학교를 하나 만드는 게 어떨까요?” 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몇 년 후 이들 부부는 하버드가 더 이상 존중해 주지 않는 아들을 위해서 캘리포니아로 가서 거기에서 자기 성을 딴 대학을 하나 세웠습니다. 여러분, 이 노부부가 바로 세계적인 명문 스탠포드 대학의 설립자 리랜드 스탠포드 부부였습니다. 옷차림과는 달리 그는 금광과 철도 업을 하는 엄청난 재벌이었으며,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상원 의원을 지낸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훗날 하버드 대학은 그날의 잘못을 깨닫고는 아쉬워하며 하버드 대학 정문에 이런 문구를 써 붙였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여러분 혹시나 그런 생각을 한 번 해보셨나요? 2천 년 전 이 땅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도 사람들은 고정관념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러분 혹시나 지금 같은 외모지상주의가 대세인 세상에서 만약에 우리 주님께서 계셨다면 과연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2) 라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겠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동방박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식이 풍부하고 인생의 경험도 많은 이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기 위해 먼저 찾아간 곳은 헤롯왕의 궁전이었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라면 지위가 높고 권력도 강한 가문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왕궁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으리으리한 왕궁에서 금 보자기에 싸여 태어나시지 않고 가장 허름한 마구간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사람들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언젠가 사업체에서 가스 사용 부주의로 화상을 입고 응급실로 간 성도님이 계셨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이지선 자매의 책 '지선아 사랑해'를 구해서 가지고 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나 자신의 얼굴을 붉게하는 그런 부끄러운 선택이었다. 왜 하필이면 그 책이었을까? 물론 기도 중에 한 선택은 맞다. 내가 방문할 자매가 지금 화상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역지사지라는 말처럼 지금 수술을 앞두고 있는 그 성도님을 가장 잘 이해하고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은 10여 년 전 음주 운전자에 의한 6중 추돌 사고로 인하여 수많은 수술의 고통과 화상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지선 자매밖에 없다는 참으로 단순한 의도였다. 나중에 기도를 마치고 병원을 떠나는데 그녀를 돌보는 친구분 얼굴 표정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야릇한 미소를 보면서 불편한 마음을 금칠 수가 없었다. 나중에 퇴원하는 날 그 야릇한 미소의 근원을 알게 되었다. 퇴원하는 날 병원으로 가서 자매님과 친구 그리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짐 보따리를 보니 책들로 가득했었다 무슨 책들이 이렇게 환자에게 많은가 해서 보니 병원으로 온 사람들이 가져다준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하나같이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자매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그런 책들 특별히 세계 일주 여행에 관한 책들을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내가 생각이 났다 가끔은 어떤 행사나 절기 때에 주위에 있는 친척이나 성도님들께서 나에게 하나같이 성경과 성경에 관한 장식물들을 선물하는 날이 있다. 당연히 그분들의 생각에는 목사이니 성경이 최고의 맞춤형 선물이다. 그러나 나는 그 선물들이 '지긋지긋'하다. 내 사무실에 있는 책꽂이를 보라. 평생을 두고 보아도 다 읽을 수도 없을 만큼이나 수두룩한다. 나는 외치고 싶다. 나도 가끔은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라고 말이다. 나는 등산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한다. 그날 그 자매님의 짐 보따리를 보면서 사람들은 다 너무 큰 고질병인 '확증편향'을 앓고 있구나 생각을 한다. 오늘따라 사도 바울의 "형제들아 항상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 항상 늘 고민하고 성찰하라' 그리고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의 외침을 귀에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