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탈, 고난, 선택, 한계점
“빨리 CNN Breaking news를 보세요! 아니 메인주에서도 이런 대형총기 사건이 일어나나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 인지 아니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인지 한 젊은이가 뜬금없이 새벽에 전화를 걸어서 황급한 목소리로 뉴스를 보라고 다그친다. 혼미함과 몽롱함 그 자체인 정신을 겨우 가름하고 황급하게 그가 시킨 대로 CNN의 Breaking News 긴급 뉴스를 보았다. 도저히 내 눈과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메인주에서도 대형총기 살인사건이 일어나다니. 그렇지 않은가? 사건이 발생한 메인주는 ‘아카디아 국립공원’, 그 공원의 우뚝 선 ‘캐딜락 산 정상’, 그리고 ‘바 하버’라는 최고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미국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평화롭기만 한 그런 휴양 관광 명소가 아닌가?
그런 주에서 한 40 대 백인 남성이 난데없이 볼링장과 식당에서 총기 무차별 ‘묻지마’ 난사로 최소 22명이 사망하고 부상자 수는 하루가 무섭게 눈덩이처럼 불어만 나고 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곳에서 버젓이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 앞에 모두는 동공지진의 순간을 맞았다. 이 메인주에서 이런 대형총기 사건이 난다면 이제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다는 참으로 전례 없는 참담함과 황당감 그리고 몰려오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마치 미국의 총기 사건과의 전쟁에서 ‘최후의 보루’, ‘마지막 보루’, 또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선’이라고 생각했던 그 ‘마지노선’이 우리 바로 눈앞에서 ‘와르락’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우리를 더욱 경악스럽고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 남성은 3년 전부터 그러니까 코로나-19가 한창기승을 부리던 그 시절에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다고 한다. 육군 예비군 소속 중사 출신으로 복무당시 사격 교관이었던 그가 팬데믹 기간에 들어서는 여자 친구와의 결별, 그리고 경제적인 압박감들의 문제에 시달리다가 급기야는 환청 그리고 편집증(파라노이아: paranoia)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늘 자신이 주변으로부터 피해를 받을 것이라는 병적인 의심병과 싸우고 있었다고 한다. 항상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이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여기에서 나는 그것이 알고 싶어 진다. 어떻게 그런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AR-15이라는 대형살상무기를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가 있었을까? 그것도 한 자루가 아니라 세 자루나 말이다. 경제적인 문제로 시달린 그가 어떻게 그런 다량의 총기를 자유자재로 구입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런 그가 경찰로부터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왜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이상한 행동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뭐니 뭐니 해도 나를 가장 경악스럽게 한 사실은 어떻게 그를 알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이 40대 백인 남성의 범상치 않은 심각한 정신 질환에 경고를 하였는데 왜 그 정신 병원은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병원에서 내 보냈을까? 기상천외한 답변이 돌아온다. 계속 그를 병원에 잡아 둘 수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병원에는 더 심각한 정신 질환 환자로 만원 사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절초풍할 만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한 답이다.
이런 말로 들린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또 다른 제2 그리고 제3의 ‘로버트 카드’라는 사람이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되어서 호시탐탐 또 다른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는 말이다. 바야흐로 미국은 안에서 보느냐 아니면 바깥에서 보느냐에 따라 극명하게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가장 강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안으로는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 같다. 일례로 집계가 가능한 2019년 미국 내 총기 관련 사망자는 3만3599명이었는데, 2022년엔 31% 증가해 4만4290명이 사망했다. 단연코 확실하건데2023년 집계는 가파른 변곡점을 기록할 것이다. 러시아 중국이 주적이라고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범람하는 총기가 주적이 되어야 할 형편이다.
요번에 일어난 메인주의 대형참사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나를 안타깝게 한다. 내가 사는 주는 메인주와 정치적인 그래서 일반 시민들의 총기에 대한 가치관과 시각도 사뭇 닮은 점이 많다. 입소문 그리고 믿을 만한 소식통인 신문 기사들을 보니 내가 사는 주는 특별히 내가 거주하는 지역은 해마다 한국에서 이민을 고려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런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난 곳이다. “첫째도‘location’ 둘째도 ‘location’ 그리고 셋째도 ‘location’이 다이다”라는 한인들에게는 좋은 학군, 치안 문제 그리고 한인들에게 편리한 여러 가지 문화시설과 대형마켓등이 몰려 있는 것이다.
그런 곳에 언젠가부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코로나 시대부터 생긴 사업체들이 있다. 한인들의 대형 마켓이 2마일 내에 5개나 몰입된 그런 곳에 가면 오른편으로 맥도널드가 있고 왼편으로는 의료용 마리화나 약국이 마주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리화나를 소유하면 중범죄라는 평생 쉽게 씻을 수 없는 낙인이 찍히고 전과범이라는 오점을 남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마리화나가 곧바로 의료용 마리화나로 합법화된 것이다.
어느 날부터 맥도널드가 없이는 살 수는 있지만 마리화나가 없이는 살 수없 을만큼이나 문전성시가 되었고 입추의 여지없이 그 마리화나 약국의 자동차 파킹장은 인산인해이다. 마치 마약 둑이 터져버린 것 같다. 얼마 전까지 중독성 강한 불법 마약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술 담배 사는 것보다 구하기 쉬워졌다. 아이러니의 극치라고 해야 할까 술과 담배를 사려고 해도 철저하게 신분증 검사를 하는데 대마초와 의료용 마리화나는 이제말 한마디에 합법적으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만병통치로 약방의 감초정도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경악스러운 장면은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맥도널드로 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한인들 특별히 이민 2세와 3세들의 얼굴이 종종 보인다. 젊은이들도 마리화나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줄으들면서 골치가 아픈 일 또 몸다리가 쑤시면 쫓아가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맥도널드 아치보다 더 매력을 끌고 있는 이런 요지경 같은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지만 우리를 버티게 하였던 한 마지노선이 휘청거림을 느낀다.
나는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든다. 그날 메인주에서 로버트 카드가 볼링장으로 또 레스토랑으로 살상무기를 들고 들어 갔을 바로 그 순간에 날벼락을 당한 보통의 시민들은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었을까? 분명히 우리들과 비슷한 ‘코로나 불루’의 후폭풍을 헤쳐 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각자의 무거운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만나 서로 힘든 일들 들어주고 토닥토닥 위로하기도 했고, 여럿이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하며 왁자지껄 회포를 풀고 있었을 것이다. 볼링장에서 이 40대 백인의 묻지마 무차별 총격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중에는 4명의 귀 먼 사람들도 포함이 되었다고 한다. 총소리가 나도 듣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날벼락을 당했던 그 사람들은 늘 그렇게 항상 삶의 경쟁에서 후발자가 되었고 뒤쳐지고 있었다. 삶의 불공평 썩인 넋두리를 해야 했다면 그들이 아닐까?
내 이웃에서 오늘도 굶주린 허기를 채우려고 낮이나 저녁 시간에 맥도널드를 찾는 사람이나 마리화나 처방을 받으러 가는 사람이나 다 엄격하게 또 객관적으로 보면 별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한 사람은 총기를 들고 무차별 살상이라는 길로 가고 왜 어떤 사람은 마리화나 길로 가고 또 혹자는 맥도널드로 향할까? '코로나 블루'는 공평하게 무차별로 우리 모두에게 들어닥친 불청객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다 3중고 5중고의 악재와 싸우면서 어떻게 해서든 두려움과 절망감을 떨쳐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 않나? 너무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왜 어떤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더 단단하게 살아갈까? 왜 어떤 사람에게는 ‘자살’이라는 단어가 ‘살자’로 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위기’가 ‘기회’로 둔갑을 할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즉 한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감정적인 한계점 (Breaking point 혹은boiling point)이 알고 싶은 것이다. 나는 지금 ‘유리멘탈’과 ‘강철멘탈’의 차이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우리는 절대로 정신줄을 놓지 말아야 한다. 물론 사람이 살다 보면 문틈에 끼여서 꼼짝도 못 하는 것처럼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사면초과의 딱한 처지, 말할 수도 말안 할 수도 없는 처지, 옴치고 뛸 수 없는 곤란한 처지를 당해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여 막막한 처지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이제는 꼼짝없이 망했다 혹은 다 틀렸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가 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을 찾고 만드는 것이 인생의 묘수이다.
연이은 총기 사건으로 두려움에 허우적거리는 젊은이들과 만나면 요즘 따라 부쩍 총기 구입을 하고 싶다는 또 이미 총기구입을 했다는 젊은이들을 많이 만난다. 자신들의 총기 구입이 이 어려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마지노선이라고 생각을 하는 모양새이다. 그들의 말이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님을 직감하는 것이 왠지 더가슴을 아프게 한다. 젊은이들에게 반면교사로 소개하는 이야기이다.
넥슨이란 게임회사를 창업한 김정주 회장이 우울증을 앓아오다가 미국에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들려준다. 그의 재산은 16조 원 정도라고 한다. 그는 많은 젊은이들의 로망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까지 잘하는 ‘엄친아’이었다.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많다. ‘금수저 집안’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 등등이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집안이다. 그의 첫째 이모부는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 둘째 이모부는 한승주 전 주미대사, 친형은 명지대학교 교수, 큰 이모는 이순자 숙명여대 명예교수, 막내 외삼촌은 이성규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그런 그가 왜 어느 순간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의 전설적인 승승장구의 삶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이야기가 있다. 그는 학생 시절 일본에서 ‘닌텐도’를 사려고 새벽부터 줄 선 사람들을 보고 ‘넥슨’을 창업하면 된다는 시대를 꿰뚫는 탁월한 혜안의 소유자이다. 그런 순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빛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그 빛나는 감각의 소유자인 그가 비트 코인 투자에서 실패를 당한 것이다. 그가 잃어버린 손실액이 243만 달러(약 30억 원)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 같은 소시민들에게는 이 정도 금액이 자살의 원인일 수 있겠지만, 16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그에게는 그냥 넘어가도 될 듯하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음을 고백한다. 돈을 잃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왜 ‘영혼의 감기’라는 우울증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을까? 우리 소시민들도 자주 걸리는 그 흔한 병에서 왜 이 시대의 ‘위인’은 다시 일어날 수가 없었을까? 그가 무덤에서 귀 있는 사람은 제발 들어라 확성기를 들고 외친다. 돈도, 명예도, 가문도, 믿을 구석이 되지 못하는 사실을 말이다. 좀 더 확실하고 전천후적이고 영원한 것에 믿을 구석을 찾으라는 권면의 소리가 들린다. 모래 위에 성이 아니라 바위 위에 성을 세우라고 한다.
끝으로 젊은이들과 나눈 카포치아라는 당대에 유명한 조각가 이야기가 있다. 부러울 것이 없이 행복한 삶을 보내던 어느 날 카포치아에게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조각을 위한 대리석을 구하기 위해 채석장에 갔는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인부가 부족하여 카포치아 자신이 직접 채석장에 나가 작업을 지휘하고 인부들과 함께 돌을 나르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돌이 카포치아의 오른손 위로 떨어진 것이다. 겨우 인부들이 돌을 들어내고 그를 꺼냈지만 이미 그의 오른손은 쓸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망가져 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유명한 의사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도록 망가져 버린 것이다. 조각가로서의 그의 인생을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카포치아 자신뿐 아니라 그를 아끼는 모든 사람들의 실망은 말할 수 없도록 컸었다.
그는 오랫동안 두문 불출하며 자신의 현실을 원망하고 괴로워했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망가진 오른팔을 포기하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그의 왼손으로 조각하는 것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참아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이었지만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꾸준히 땀 흘리며 피나는 노력을 기울었다. 그 절망과 비통의 긴 터널의 끝에는 마침내 빛이 보이기 시작을 한 것이다.
피나는 재활의 시간 후에 다시 작품 활동에 들어가게 되었고 오른 팔로 조각한 것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를 처음부터 지켜본 시민들은 그 작품을 마을 한가운데 세우고 그 작품의 이름을 붙였는데 그 작품의 이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고 한다. 카포치아가 믿는 그 구석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나도 그가 믿는 그 구석을 가지고 싶어 진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망가진 오른손으로 당대 최고의 조각가가 된 카포치아가 믿는 그 구석에 한걸음 다가가고 있다는 최고의 증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