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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무나 하나? 감사도 아무나 하나?

감사, 습관

by Joung park

저는 가끔 신문의 어떤 기사를 읽다 보면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착각을 할 경우가 있다. 그 기사의 주인공과 내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신통하게 닮은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에 소개된 앤드류 아르킨이라는 한 평범한 직장인의 삶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그가 어느 날 뉴욕 75번 가에 위치한 곳에서 사업상으로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을 약속하였다. 하필이면 장날이라고 그날따라 예상치 못했던 이런저런 ‘훼방꾼’들이 그가 정해진 약속의 장소로 가는 발걸음을 지연시켰다.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닥치는 대로 옷과 가방을 챙기고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헐레벌떡 택시를 잡아 타고 만남 장소로 향했다. 설상가상으로 뉴욕의 그 악명 높은 교통체증에 결려서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우 약속의 장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급하게 택시비를 주고 허둥지둥 만남의 장소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다행히 만날 상대방도 교통체증에 걸려서 그런지 늦게 도착을 하였기에 중요한 사업상의 첫 만남에서 큰 결례는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첫 번째 예정된 사람과 중요한 사업을 의논한 후, 일을 그런대로 생각보다 훨씬 더 말끔하게 마무리를 하여 가슴이 뿌듯했다.


그런데 그 기쁨의 만끽도 잠깐 또 다른 만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좀 촉박해져서 택시를 불러 탔는데 택시를 타고 보니까 자기가 않는 좌석에 1불짜리 지폐가 하나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의 발에 뭔가가 밟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주워서 보니 어떤 사람의 운전면허증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하 이 사람도 나처럼 얼마나 바빠서 운전면허증을 흘리고 갔구나... ”라면서 운전면허증을 자세히 보다가 그만 까무러치고 말았던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그 면허증의 사진은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침에 자기가 너무 서두르느라고 그만 이렇게 돈도 떨어뜨리고, 운전면허증도 택시 안에 떨어뜨린 채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전후사정을 다 들은 택시 기사가 그에게 오늘은 당신의 삶의 최고의 행운의 날이라고 ‘농’을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thumbs up).


그는 생각에 잠시 잠겼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게 도대체가 가능한 일인가 이 복잡한 뉴욕에서, 하고 많은 택시들 중에서 하필이면 그것도 자신이 아침에 탔던 택시를 또 다시 탈 수 있었다니….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던 것이다. 만약 자기가 운전면허증을 찾지 못했다면 비행기를 탈 때에 신분증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만남을 잘 끝내고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피곤한 몸을 침대에 던지고 누워 천장을 쳐다봤다. 생각만 해도 기적과 같은 일들의 연속이었던 뜻깊은 날들이었다. ‘오늘은 참 재수 좋은 날이고, 오늘은 아주 행복한 날이다... 오늘은 아마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는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재수 좋은 날인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늦기 전에 로토라도 한 장 사둘 것을...’ 이런 회환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가장 소스라치게 놀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앤드류 아르킨 자신이었던 것이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던 기적을 보면서 그렇게 흐뭇하고 행복했던 자신의 조금 전까지의 마음은 다 사라져 버리고 어느새 마음에 로토 티켓을 사지 못한 후회가 가득해진 것이다. 모처럼 가졌던 좋았던 생각들이 그만 싹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앤드류 아르킨이라는 사람의 하루의 해프닝을 읽으면서 불현듯 서양 격언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 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 보는 것”이라는 말이 떠 올려졌다. 정말이지 우리는 평생에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가 깜박깜박 잘 잊어버리는 경우가 잦아진다. 비록 순간적이지만 앤드류 아르킨의 모습에서 마치 거울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는 그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왜일까? 바로 우리도 앤드류 아르킨처럼 소중한 은혜는 물에 새겨 금방 잊어버리고, 마음에서 버려야 할 불평과 불만들은 바위에 꼭꼭 새겨 두고두고 기억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참 마음이 가난하게 살고 있구나’라는 회한이 나를 덮치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날 보고 “사돈 남 말하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이 감히 앤드류 아르킨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역이 있을까요?”라는 따가운 힐책과 질책의 소리가 내 귀를 사정없이 때렸다. 저의 이민 생활 반세기 동안에 가장 마음의 큰 죄책감을 가지게 했던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까 1983년으로 세월을 되돌려야 할 것 같다. 남부의 한 대학에서 학위를 끝내고 이번에는 일가친척 하나 없는 생면부지의 땅이었던 워싱턴 DC 근처에 위치한 대학으로 왔다. 예나 지금이나 늘 고향을 떠날 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했던 훈계의 말씀이 나의 나침반이었다. “아들아! 낯선 땅에서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하니라”. 하늘이 아버지의 말씀을 귀에 담았는지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사람들을 잘 만났다. 삶이 훨씬 수월해지고 있었다. 우연찮게 하루는 식당에서 연세가 지긋하신 한 분과 동석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늘이 맺어준 그런 인연의 시작이었다. 제가 공부하기로 예정되었던 전공과목 Human Resource Development의 교수님이었다. 전공과목의 주임교수이시니 자연적으로 그 교수님이 담당하시는 여러 가지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당신 집 방 하나를 기꺼이 저렴한 값으로 살게 해 주셨다. 낯선 땅에서 살아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이 일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지.


뭐니 뭐니 해도 유학생들에게 가장 큰 골치 덩어리는 영어로 제출해야 하는 과제물들이었다. 문장이나 문법에서 턱없이 모자라기만 했었기에 밤잠을 설치게 했던 영어 작문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마감날이 되기 전 반드시 원어를 잘하는 미국인들에게 전문 교정을 받아야 했는데 그 당시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너무나 버겁기만 했던 비용들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로만 하더라도 타이프 라이터로 작성해서 과재를 제출해야 했는데 누구에게 부탁을 하면 그 당시에 한 장에 2달러씩을 요구한 것이다. 15페이지로 생각하면 그 역시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 모든 일들이 거짓말처럼 해결이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갑자기 수업시간에 전무후무한 발표를 하신 것이다. 자신의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은 누구든지 최종 과제를 제출하기 전에 초안을 세 번까지 제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출한 초안의 과제를 꼼꼼히 읽어신 교수님께서 교정까지 해 주신 것이다. 언어의 장벽으로 씨름했던 유학생들에게는 어디에도 없었던 획기적인 발표이었다. 그 당시 25명 학생들 중에 유학생이라고는 딱 나 혼자이었는데 지금도 저는 교수님의 ‘공개적인’ 배려가 저를 위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학위를 끝내고 졸업식 날에 내가 고맙다고 하는데 이런 말을 하셨다. ‘인간의 관계라는 것은 쌍방통행이란다. 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도 똑같은 마음으로 진정성을 보여야지 비로소 오래가는 인연이 가능한 것이란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참 선견지명이 있는 말씀이었고 내 귀를 후며 파는 잠언이었다.


훗날 저 나이 40 끝자락에서 신학교를 들어갈 때이었다. 입학 신청 서류에 저를 잘 아는 교수분의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참 난감하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한 분은 한분 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토록 큰 은혜를 입었고 또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큰 신세를 졌던 그 교수님에게 나는 너무 그동안 무관심 했었다. 늘 배은망덕했다는 죄책감이 늘 나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또 뻔뻔스럽게 찾아가서 추천서를 부탁해야 한다는 생각은 참으로 죽기만도 못할 그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이 관심을 보일걸…이라는 회한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물론 처녀가 애를 낳아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고 하는 말처럼 나에게도 이런저런 변명과 핑계가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내 삶은 내가 고향을 떠날 때의 각오와 생각과는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되돌리기에는 너무 많이 가버렸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나의 삶은 교수님과 헤어지고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내 자신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이나 변해 버렸다. 결혼 후 곧바로 세 아들을 낳았고 또 그동안 대장암 수술 그리고 두 번의 심장마비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었다. 그만큼 나의 삶이 각박하고 척박했었다. 앞만 보고 달려왔었고 내 옆의 사람들을 살필 여유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긴 노심초사 끝에 마침내 간신히 용기백배하여 염치, 부끄러움 또 미안함 무릅쓰고 내 평생에 가장 여러운 전화를 교수님에게 했다. 1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Dr Segal..”이라는 첫말의 엑센트만을 듣고도 금방 나를 알아보셨다. 참 놀라웠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아무리 전화이었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몸을 숨기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기만 했었다. 할 말을 잊고 주춤하고 망설이면서 난처해할 때에 먼저 교수님께서 눈치를 채셨는지 “네가 추천서가 필요하구나”하시는 것이었다. “염려 말아. 나는 아직도 너를 기억한다” “내 사무실 앞에 추선서를 둘 테니 가지고 가거라” “Good Luck! 건투를 비네” 직접 만나서 내가 얼마나 힘들어할까 미리 염려하셔서 추천서를 사무실에 두고 가신 것이었다. 이 제자를 향한 또 하나 그리고 마지막 깊은 배려를 하신 것이었다.


유행가 중에 “아무나 사랑하나”라는 노래가 있다. 저는 이 노래를 자주 “행복은 아무나 하나” 그리고 “감사는 아무나 하나”라고 패러디를 해본다. 정말이지 앤드류 아르킨이거나 나 같은 사람이거나 가만히 보면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너무 다르다. 내가 급할 때는 간이라도 빼어줄 듯 굴다가 급한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금세 마음이 변한다. 필요할 때 잘 써먹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익숙한 비정한 사람들이다. 돈 빌려달라고 할 땐, 애걸복걸하다가 돈이 생기면 그 돈부터 갚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생각이 확 달라지는 배은망덕한 인간들이 수두룩 하기만 한 세상이다. 입사 면접에선 온몸을 바쳐 충성할 듯이 호들갑을 떨다가 퇴직할 땐 안면을 몰수하는 속물들이 어디 한둘뿐인가? 구애할 땐 입안에 있는 것도 꺼내줄 것 같다가도 일단 자기 사람이 되면 태도를 180도 확 바꾸는 인간들이 어디 한둘뿐인가?


좋아하는 칼럼니스트 이규태 씨의 글에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마음의 병은 “감사결핍증”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 4대 중증질환이 있는데 바로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희귀성난치병이다. 그런데 어떤 학자는 이 4대 중증질환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는데 바로 불감증이라고 했다. 즉 안전 불감증, 도덕불감증, 감사불감증 등 불감증이 심각하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너무나 정확한 진단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서 이런저런 끊임없는 사고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또 전반적인 도덕 불감증으로 인해서 나라가 좀을 먹어서 서서히 파괴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또 감사불감증으로 사회가 흔들린다는 말이다. 예로서 “어느 가게에서 물건을 사 가지고 돌아설 때 감사하다는 말 대신에 '또 오십시오'라는 이기적인 인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 주면 '고맙습니다'라는 말 대신에 '신난다'라는 말이 앞서고 택시 정류장에서 바빠서 야단하는 젊은이에게 양보를 하면 고맙다는 말을 듣기가 어렵다.”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감사결핍증’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세계적인 암 전문의 김의신 앤더슨 암센터의 종신교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두 번이나 미국 최고의 의사(The Best Doctors in America, 1991 & 1994)로 선정된 적이 있는 그런 분이다. 그분은 특이한 암 치유법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기도 한데 ‘감사는 만병통치약입니다.”이라고 한다. 그분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환자들이 감사 치유법으로 극복한 사례를 많이 직접 보았다고 한다. 그분은 암환자들에게 치료를 시작하기 전 종이에다가 감사할 일들을 적어보라고 권유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황당하게 들렸지만 효과는 놀랍다고 한다. 똑같은 방사능 같은 치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는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서 훨씬 치료의 효과가 다르다고 한다. 저는 저 경험으로 봐서도 확신한다. 무엇을 하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하면 결과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신한다는 말이다. 어떤 일을 할 때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면 좋다. 반대로 불평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모든 것이 다 골치병 그리고 마음의 고질병이 되고 만다.


끝으로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공부나 운동을 잘하는 청년과 그렇지 못하는 청년들 사이에는 ‘종이 한 장’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공부나 운동을 잘하는 청년은 시작이 쉽더라. 반면에 못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시작하는데 참 힘들고 어렵더라. 공부나 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각오를 다지고 뜸을 들이는데 엄청난 시간을 낭비한다. 자신의 다짐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비장하게 결단의 선포를 한다. 그리고 책상에 앉거나 또 운동장으로 향합니다. 어느 순간에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TV를 보거나 아이폰을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내일을 기약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도무지 시작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특징은 시작을 못하게 막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공부나 운동을 잘하는 청년들을 보면 즉시로 해버린다. 오늘도 내일도 똑같더라. 감사도 똑같더라. 그냥 지극히 조그마한 일에 감사를 즉시로 해버리면 된다. 그것이 습관이 되고 운명을 가른다. 저 쓰라린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충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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