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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오른쪽 창문으로도 봐야지

절망, 진주, 인내

by Joung park

1968년 어느 가을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호화 나들이’라고 할 그런 기차 여행을 엄마와 함께 할 때가 있었다. 얼마만의 외출인가? 정말로 오랜만에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힘들었던 시부모님과 남편의 허가를 받아서 드디어 엄마가 막내아들을 데리고 친정 나들이를 가는 날이었다. 중학교 시절의 아들은 처음에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날뛰면서 엄마의 혼을 빼곤 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잠이 들었다가 깨곤 하였다. 혼자서 물끄러미 창문 밖의 시골 풍경들을 쳐다보다 왠지 너무 지루했던지 엄마에게 “이게 다야!” 투정을 부리기 시작을 한다. 성가심에 시달리다 마침내 엄마가 안타깝고 속상한 모습으로 아들을 보며 한 말을 툭 던진다. “아들아! 기차에는 창문이 두 개가 있지 않니? 꼭 그렇게 한쪽으로만 바깥을 보지 말고 이번에는 자리를 바꾸어서 엄마가 바라보는 오른쪽 창문 밖으로 한번 보면 어떨까?”


그 자리바꿈의 효과는 즉석으로 나타났다. ‘기상천외’ 한 일이 눈앞에 일어난 것이다. 기차는 똑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데 왼쪽 창문을 통하여 바깥을 보는냐 아니면 오른쪽 창문으로 바깥을 보느냐에 따라 엄마의 친정 가는 길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 것이다. 자리를 옮기자 말자 갑자기 상쾌한 시골의 바깥 바람이 콧냄새로 들어오고, 형형색색의 가을의 색상인 단풍색은 짙푸른 녹음을 만산홍엽으로 물들여 가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 가졌던 시무룩하고 울적한 모습 그리고 기분이 울적할 때면 십중팔구 아래로 삐쭉 내려간 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금 엄마도 없고 그 시골의 외갓집도 이제는 나에게는 추억 속에나 볼까 말까 하다. 그러나 그때에 엄마가 말했던 “아들아! 왼쪽만이 아니라 오른쪽 창문으로도 봐야 진실로 사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라는 말은 내 가슴에 자리매김을 하면서 내 인생의 일생일대의 귀한 반면교사가 되었다.


엄마가 떠난 후 내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 길을 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러쿵저러쿵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올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내 삶의 반면교사인 엄마의 가리킴을 기억한다. 한쪽으로만 보지 말고 두쪽으로 보고 있는지 나에게 질문을 하곤 한다. 더 정확하고 더 균형된 관점과 시각을 위해서 내가 기억해야 할 엄마의 앞치마 교육이었고 밥상 교육의 덕택이다. 왜 사람에게는 눈이 두 개이고 귀도 두 개인지 그러나 입은 하나뿐인지 어렴풋이 나마 깨닫게 되었다. 항상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하기 전 ‘양쪽’ 상황을 두루두루 다 살핀 뒤 또 ‘양쪽’ 말을 다 들은 뒤 판단을 함이 참 지혜임을 깨달았다. 살다가 왼쪽 창문 하나가 닫히고 말았다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맞이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닫혀진 왼쪽 창문을 가지고 절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반드시 오른쪽 창문은 열렸음을 기억하곤 한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내 삶의 위로를 찾았고 평정심도 찾을 때가 많았다. 너무나 평범한 시골 아낙네의 이야기였지만 두고두고 내 삶의 나침반과 등대가 되었던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교육은 엄마의 앞치마 교육이었고 밥상 교육이었다.


나의 대학시절은 70/80 시대이다. 격동의 시절이었고 암울하고 절망감이 꽉 차던 시절이었다. 당시 70년대 유신체제가 들어서면서 젊음을 불태울 캠퍼스의 낭만과 상아탑의 자취는 사라지고 그 자리는 최루탄 가루와 가스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뭔가 가치 있고 건전한 생각을 하기에는 턱부족하기만 했었다. 지금이라면 아이폰이라도 있으니 무심코 돌아가는 시간을 보낼 여유와 사치품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젊음의 배고픔을 달래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절망감과 내일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불확실함만이 우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우리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갈구가 그저 꿈이 아니라 언젠가는 내일의 태양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는 노래가 있었다.


들국화의 ‘사노라면’이라는 노래이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이 노래가 우리들을 살린 동아줄이 된 것이다.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흐린 날이 다 인 것처럼 보였지만 오른쪽 눈으로 보니 날이 새면 해가 뜨는 것도 보인 것이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래도 이젠 나이가 든 나도 아직까지 무척이나 이 노래를 좋아한다. 가끔 유튜브를 통해 듣곤 하는데 특별히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하는 대목이 압권이다.


‘사노라면’이 암울하고, 잔인하고 또 가혹하기만 했었던 젊음이들이 목놓아 부를 노래이었다면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은 이 땅의 청년들이 읋을 시가 되었고 답답하고 우울하기만 했던 가슴을 달랠 친구들이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마지막 연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구절은, 불가항력의 괴력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시인은 1967년에 소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심한 고문을 당해 심신에 큰 손상을 입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었다. 만약에 세상을 불평하고 불만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그는 단연코 순위 0번 일 것이다. 그런 그가 이 세상을 ‘너무나 고생스러웠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당찬 힘이 생겼을까? 그랬던 것이다. 시인도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본 것이 아니라 결연코 일어나 오른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일차원의 시각으로 보았다면 시인의 시야는 범상치 않은 3차원 아니면 4차 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 것이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다.


온전한 바라봄은 왼쪽의 시각과 오른쪽 시각의 합해질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리인 것 같다. 강철왕 카네기에게는 평생토록 간직하고 있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그 그림이 강철왕 성공의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그림인데 그림이 한 사람의 성공의 열쇠가 된다는 말인가?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 하나가 있는데 해변가 모래 위에 고깃배가 박혀 외롭게 있는 그런 단순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림이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중얼거리기 일쑤라고 한다. "배가 자리를 이탈했구나! 배는 물 위에 있어야 아름답지." 그림 솜씨도 별로 신통치 않고 별로 큰 의미도 없어 그냥 지나치는데, 왜 카네기는 이토록 그림을 좋아할까? 그림 밑에 있는 글귀 "밀물 때가 오리라”를 읽으면서 비로소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살다 보면 현실은 우리들의 왼쪽 눈으로 보면 절망이다. 지금 모래 위에 걸쳐진 외로운 고깃배의 모습이다. 그러나 오른쪽 눈으로 보면 곧 다가올 밀물 때가 보인다. 밀물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밀어도 고깃배는 움직이지 않음을 통찰한다. 그러나 아직 밀물이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으니 내 삶의 뒤집을 절호의 기회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참고 견디면 반드시 때가 오는 것이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또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이런 편견과 차별을 숨 쉬듯 겪었던 엄마는 가방끈이 유난히 짧았다. 그래도 그 엄마 덕택에 자라면서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혜의 왕' 솔로몬의 가리킴에 또래 나이의 그 누구보다 더 일찍이 눈을 떴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던 것이다. 우리의 삶은 늘 항상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이 두 가지가 마치 백년지기 어깨동무의 친구처럼 늘 병행함을 기억하게 되었다. 동전의 양면같이 말이다. ‘태어날 때가 있다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또 거둘 때가 있고, 허물 때가 있다면 또 세울 때가 있는 것고, 울 때가 있다면 또 웃을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다면 또 춤출 때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엄마의 두 눈의 법칙이었고 또 고사성어 ‘새옹지마’의 삶을 말한다. 즉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말. 옛날에 새옹(塞翁)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서 노인이 낙심하였는데, 그 후에 달아났던 말이 준마를 한 필 끌고 와서 그 덕분에 훌륭한 말을 얻게 되었으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으므로 노인이 다시 낙심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아들이 전쟁에 끌려 나가지 아니하고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즉 너무 사건의 한 단면을 보고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마치 아랍 격언을 기억하라고 한다. '비가 오지 않고 햇빛만 계속 비추면 좋은 땅도 사막이 된다'라는 격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역시나 시대의 걸출한 인물들은 다 뭔가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다름 아니라 단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두 눈을 잘 활용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균형 잡힌 관점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 그들의 성공의 비결이었다. 위트가 넘치는 것으로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억수같이 비가 쏟아질 때 한 사람이 시커먼 하늘을 보면서 불평과 투정을 부리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크 트웨인이 이렇게 응답을 한 것이다. “아, 걱정 마세요! 제가 평생 살면서 그치지 않는 비는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내가 자신합니다. 언젠가 이비 또한 그칠 겁니다.”


또 어머니 교육으로 유명한 링컨 대통령이 어느 한가한 날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한 농부가 말을 몰아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게 보였다. 링컨은 농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였다. 그 때 링컨은 말 엉덩이에 파리가 붙어 있는 걸 보았다. 파리가 말을 귀찮게 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링컨이 파리를 쫓아버리려고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농부가 링컨을 말리며 말했다. “그냥 두세요, 그 파리 때문에 이 늙은 말이 그나마 저만큼이라도 움직이고 있답니다..!” 한 사람의 눈에 파리는 말을 귀찮게 하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농부의 눈에는 그 파리 덕택에 말이 긴장하고 걸음 거리를 빨리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링컨이 훗날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마도 그날 그가 한 농부에게서 배운 진리 때문은 아닐까?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으니 두 눈으로 보아야 진리를 보게 된다는 그 역대급 진리 말이다.


엄마가 아들의 결혼식 날 아버지 그리고 형과 함께 미국으로 오셨다. 엄마가 혼례 후 며느리에게 주라고 한국에서 가지고 온 진주 반지를 내놓았다. 난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더라면 살아생전 엄마에게 미리 물어볼걸이라는 후회가 막심하기만 하다. 엄마는 알고 계셨을까 아니면 무심코 진주를 선물로 하셨을까. 지금 와서 그 이유는 중요치 않다. 저는 지금 결혼 38년 차이다. 가끔 아내와 함께 엄마의 사진과 함께 진주 반지를 본다. 녹록지 않았던 38년이었다. 아하! 엄마의 선견지명이 돋보인다. 서양에서는 결혼할 때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주는 풍습이라고 하던데 며느리에게 주었다. 훗날 나는 살면서 진주를 가리켜서 영어로는 Frozen Tears(얼어붙은 눈물)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지도 알게 되었다. 참 다행인 것은 며느리는 그 뜻을 잘 몰랐다는 사실이다. 가끔 만약에 하나라도 그때에 아내가 알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진주는 땅에서 캐내는 보석이 아니다. 바다속의 조개 안에서 만들어진다.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아주 치열하고 처절하기까지 하다. 어쩌다 잘못해서 모래알이 조개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깔깔한 모래알이 보드라운 조갯살 속에 박히게 된다. 그때 조개는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고통 속에서 조개의 눈물인 ‘나카’라는 분비물이 모래알을 감싸게 된다. 그 나카가 커지고 커지면서 보석의 왕 진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조개에게는 고통 속에서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모래알이 들어왔을 때 고통스럽다고 거부하고 감싸지 않으면 몇 달은 살지만 마침내 조개 전체가 썩어 죽고 만다. 참고 견디면 진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참 신기하기만 하다. 진주는 고난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진주에게서 배우는 삶의 성찰이다. 인생의 고난은 변장된 축복인 것이다. 궁금해진다. 그 진주가 눈물의 고통 속에서 또 한 눈으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름다운 진주를 보고 있었을까? 그래서 참고 견디고 하면서 오늘 나의 서랍에 오게 되었을까? 두 눈이 합하여져야 비로소 진정한 것이 보인다는 사실을 진주도 알았을까?


오늘 혹시나 하늘에 계신 엄마가 오늘도 천방지축 갈팡질팡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이런저런 삶의 고비마다 두리번두리번하는 사방을 살피는 모습을 보면서 방황하고 있지는 않고 있나 고민하실지 모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철이 든 아들이 그동안 감았던 오른쪽 눈까지 합하여 두 눈 부릅뜨고 더 관찰하고, 고심하고, 성찰하고 또 통찰하는 모습에 엄마의 뿌린 씨가 열매를 맺고 있음에 조금이나마 ‘역시 내 아들이구나’라는 뿌듯함을 잠시나마 느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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