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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youth)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젊음, 청춘 사용설명서

by Joung park

1848년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 어느 강에서 어느 청년이 우연찮게 강에서 금을 발견하는 운수대통의 날을 맞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라는 말처럼 이 소식이 일파만파 미국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너도 나도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밀물처럼 몰려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바야흐로 그 유명한 ‘골드러시(Gold Rush)’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애리조나 주 툼스톤(Tombstone)의 한 청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 벼락부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재산을 처분하고 골드러시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젊음의 혈기와 패기 그리고 ‘넘사벽’의 열정과 배짱으로 땅을 구입하고 인부를 채용하고 열심히 굴착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래도록 땅을 계속 파 내려가도 오매불망 기대한 금은 나오지 않고 흙더미만 쌓여가는 것이다. 결국 금 캐기를 포기하고 자신이 구입했던 가격보다 훨씬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팔아 겨우 인부들의 밀린 노임을 지급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일확천금이라는 일생일대의 ‘거창한 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일장춘몽이라는 봄 한철의 아지랑이 같은 그런 덧없이 사라져 버린 '한바탕 꿈’에 시달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그는 청천벽력 같고 기막힌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자신의 땅을 구입한 새 주인이 자신이 포기했던 그 땅에서 금광 노다지를 발견해서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하려는 심정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삼킨 그 쓰라린 가슴앓이의 현장을 다시 찾아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문대로 자신이 포기했었던 그 땅에서 새로운 주인이 엄청난 금맥 노다지를 발견한 것이다. 그 청년을 더 경악케 한 것은 그 금맥 노다지는 자신이 파다 만 지점에서 불과 1m를 더 파낸 곳에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머금으면서 고향으로 향하는 그의 입에서는 “딱 1m.. 1m..”라는 하소연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끝까지 금맥을 눈앞에 두고 중도에 포기한 자신에 대한 한 없는 부끄러움과 아쉬움에서 쏟아져 나온 한 젊은이의 심연의 탄식과 후회막심의 절규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극적인 대반전이 있다. 전 재산이라는 너무나 큰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큰 교훈을 얻은이 젊은이는 새로운 각오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각광을 받지 않았던 보험 세일즈를 시작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항상 혹독한 개척자의 남다른 “딱 1m.. 1m..”의 피와 땀을 요구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다. 고객들의 차갑고 냉담한 반응과 외면 속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딱 1m..1m..” 아래에 내가 학수고대하는 금맥이 있다는 생각을 되뇌이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었다. 그리하여 절대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계약을 하나 둘 성사시키게 되었고 마침내 보험업계의 금맥을 찾은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광산에서 캘 수 있는 것보다 더 값진 금은 두뇌와 마음으로부터 캐는 금이다”라는 시대의 걸출한 명언을 남긴 미국의 보험왕 앤드류 달비의 실제 이야기이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일 년에 한두 번은 그러니까 거의 습관적으로 이민 2세, 3세들과 나눈다. 왜일까?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이 땅의 청년들이라면 누구나 다 앤드류 달비처럼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에 천지개벽의 팡파르를 울리고 또 천지개벽하듯이 인생을 확 뒤집어엎을 수 있는 그런 어머어마한 금맥을 가진 주인공임을 알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그렇더라. 인생의 가장 큰 아이러니가 바로 세상이 다 알고 남이 다 알지만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라는 사실이다. 바로 사람들이 보험왕 앤드류 달비의 증후군 즉 자신의 삶에 웅크리고 있는 금맥을 보지 못한다는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칠순의 문턱에 있는 제가 어느 날안경을 깜빡해서 온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난리 법석을 떨다가 그제야 머리에 안경을 얹어두고. 안경 어디 있냐고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바로 청년이라는 금맥을 바로 코앞에 두고 마치 앤드루 달비가 남에게 헐값을 팔아넘기는 그런 모습을 젊은이들이 재현하고 있는 것을 풍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더라. 모든 것은 올바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다. 금맥 이냐 아니면 흙덩어리이냐는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달렸더라. 강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허덕거리는 사람들에게는 지푸라기 하나가 구원의 동아줄이 된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인 그 지푸라기도 새들의 입에 물리면 한 겨울을 이겨내는 구원의 둥지가 된다. 아무짝이 없는 그 지푸라기도 한 때는 마구간에서 이 땅의 구세주의 탄생을 지켜본 역사의 증인이 된다. 어디 그뿐인가. 날카로운 칼이 장군의 손에 들어가면 나라를 구하는 도구가 되지만 또 주인을 잘못 만나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 무기도 된다. 30초반 앤드류 달비의 손에 있는 금맥과 30 후반에 앤드류 달비의 손에 있는 금맥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젊음도 마찬가지이다.


내일모레면 70세가 다 되어 가는 저에게 오늘따라 생뚱맞게도 그 옛날 고등학교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민태원의 ‘청춘 예찬’이 기억이 난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 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이상! 우리의 청춘이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이상! 사람은 크고 작고 간에 이상이 있음으로써 용감하고 굳세게 살 수 있는 것이다…이상! 이것은 실로 인간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라 할지니…”


나는 이 시의 영어 번역본을 읽은 후 곧바로 젊은이들에게 루카스 크라나흐 ‘청춘의 샘’이란 그림의 영상을 소개한다. ‘청춘의 샘’ 화면 왼쪽에는 거동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그런 늙은이들이 있다. 수레에 실려 오거나 들 것에 들려오거나 또 누구의 등에 업혀 화폭의 가장 중심부에 놓여 있는 ‘청춘의 샘’이라는 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 샘이 범상한 샘은 아닌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늙은이들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잠시 후 팽팽하고 장밋빛을 띠며 젊은 처녀들도 바뀌는 것이다.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천지개벽을 한 사람들의 행동이 우리를 경악스럽고 황당하게 한다. 졸지에 그토록 원했던 젊음을 되찾은 늙은 여인들의 다음 행보는 가관이다. 젊어진 여인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며 풍성한 음식과 함께 연회를 즐긴다. 누구 하나 즐기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을 보면 되찾은 젊음을 한시라도 더 누리고 싶은 모양이다.


화가 크라나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젊음을 욕망한 이유가 고작 이런 환락 때문이었다니!라는 젊음을 어영부영 낭비하는 시대의 젊은이들을 향한 날카롭고, 예리하고 신랄한 고발이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 그림을 바라본 이민2세와 3세들의 얼굴에 불편함과 어색함이 그리고 곤혹스러움이 두드려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난처한 표정에서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묘한 오버랩을 하고 있음도 느껴졌다.


지금 와서 고백한다. 참 뒤늦은 고백이다. 가슴을 치는 처절한 고백이다. 저의 고교 시절 교과서에 실린 민태원의 “청춘예찬”을 선생님께서 눈을 감고 읽고 읽을 때 가슴이 그다지 설레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냉랭하였고 내 몸의 피는 전혀 끓지도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 그 선생님께서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까? 마치 내가 지금 젊은이들에게 느끼는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불현듯 영국 극작자 버나드 쇼가 남긴 많은 명언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라는 말이 멍을 때린다. 이 명언을 보는 순간 '아 ~~ 그렇지. 나도 청년의 시절에 젊음의 가치를 몰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마 모르긴 해도 십중팔구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보며 혀를 차는 누군가 역시 한 때 분명히 충분히 가졌던 그런 회한의 소리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젊음이 발산하는 혈기 방장했던 그때가 좋았을텐데…라는 회한이 앞선다. 왜 그때에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 “딱 1m.. 1m..”라는 열정으로 더 관찰, 고찰, 통찰 그리고 성찰했더라면 그 어마어마한 금맥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지금 와서 다른 사람의 손에서 비로소 그 찬란한 빛을 내는 청춘의 금맥을 멀치감치 쳐다보면서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눈물을 머금는다.


후회막심은 나 혼자만으로 충분하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나의 가슴 아픈 전철을 절대로 밟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시작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젊음을 젊은이에게 구할 수 있을까? 그 시작을 우리보다 훨씬 더 깊이 ‘청년’의 금맥을 파고 들어간 지혜의 왕 솔로몬의 잠언에서 파보기로 한다. 솔로몬 왕은 청년의 나이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한다. 무엇을 기억하라는 말인가?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던 팔이 떨리고, 정정하던 두 다리가 약해지고, 이는 빠져서 씹지도 못하고, 눈은 침침해져서 보는 것마저 힘겹고, 귀는 먹어 바깥에서 나는 소리도 못 듣고,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도 하나도 들리지 않고 높은 곳에는 무서워서 높이 올라가지도 못하고, 넘어질세라 걷는 것마저도 무서워지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비록 지혜의 왕 솔로몬의 유머감각이 돋보이지만 왕성한 혈기와 열정의 젊은이들이 듣기에는 그렇게 꼭 달갑지만은 않은 소리들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청년의 때를 잘 사용하라고 권면을 하는 마당에 왜 하필이면 청년의 삶을 잘 살아가는 비법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으련만 느닷없이 노년의 때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듣는 이들을 황당하고 난처하고 또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을까? 왜 꼭 젊은이들에게 아직도 멀기만 한 신체의 노화현상을 미리부터 당겨서 괜스레 걱정하고 기억하라고 권면을 하고 있을까? 도대체 노화현상이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내가 꼭 알고 싶었던 그 답을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로망이자 애플 창업자, 또 아이폰의 창시자인 스티브 잡스에게서 찾았다. 이 시대 최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에게는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순간이 있었다. 바로 자신에게 있었던 금맥을 찾았던 순간이기도 한 찰나이었다. 그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그가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만일 당신이 매일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전무후무 했던 강한 인상을 주었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그 자신에게 걸었던 체면술이었고 주문처럼 말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고 나온다면, 저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그의 거침없고 에누리 없는 삶과 두려움에 대한 직관을 보라.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고 오늘의 시대의 아이콘의 상징인 아이폰의 시작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존재였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었습니다. 죽음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힘을 가졌습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아이폰을 손에 가지고 있다. 세상에 나 자신을 드러내는 계급장이고 훈장 같다. 그러나 그가 남긴 젊음이라는 세월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문외한들이 많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우리에게 ‘이 젊음이라는 금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숙제를 남겼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 세상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입 밖으로 나간 말, 둘째는 시위를 떠난 화살, 그리고 세 번째는 세월이라고 한다. 버나드 쇼가 남긴 많은 명언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라는 말도 결국에는 젊은이들은 시간의 가치를 모른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저는 지금 69마일 즉 한국 기준으로는 대략 111 km로 달리는 초급행 열차이다. 작금의 젊은이들을 보면 어영부영, 허둥지둥, 또 갈팡질팡하는 모습에도 그렇게 걱정하지 않는다. 아직도 충분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이들도 기억했으면 하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시간은 기어갔다. 청년으로 꿈꾸고 있을 때 시간은 걸어갔다. 장년으로 성장할 때 시간은 달음질쳐 갔다. 늙어서는 시간이 날아갔다. 내가 먼 나라의 그 길에 들어섰을 때 시간은 영원히 가버렸다. 내가 시간을 버렸더니 이제는 시간이 나를 버렸다.”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연습이 없습니다. 인생에 리허설은 없다. 인생은 일방통행으로 이어진 길이다 뒤로 가거나 옆으로 가는 길은 없다. 그래서 일생(一生)이라고 합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간은 절대로 결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것이 금맥을 찾을 수 있는 젊은이의 가장 큰 지도이고 나침반이다.


끝으로 민태원의 ‘청춘 예찬’의 후반부이다.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뼈 끝에 스며들어 가는 열락의 소리다. 이것은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 가는 노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오직 우리 청춘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대다. 우리는 이 황금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자!”


아무쪼록 여러분에게 젊음이라는 금맥을 주신 그분께서 훗날 ‘젊음을 그대에게 준 것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을 사시기를 바랄 뿐이다. 적어도 이 선배보다는 더 적은 후회의 삶을 사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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