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사용설명서 #2
나는 ‘보람’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가끔 만약에 세종대왕께서 이 낱말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내 삶이 얼마나 가난하고 삭막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억만금 아니 임금의 자리와도 바꿀 수 없는 참으로 귀한 내 삶의 여정의 동반자 같다. 자연히 뭔가에 ‘보람’을 느끼는 것은 내 삶의 최고의 로망이다. 오늘은 나에게 가장 ‘보람’ 있는 날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이민 2세 그리고 3세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꿈같고’ 또 ‘역사적인’ 날이다. 당연히 ‘역사적인’ 날은 ‘역사적인’ 권면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날에 내가 꼭 보여주고 싶은 사진들이 있다.
청년들이 마주하는 스크린 왼쪽에는 “빙산의 일부 혹은 빙산의 일각 Tip of the iceberg"이라는 사진을 소개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빙산의 꼭대기라는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이지만 사실은 그 아래 거대한 아주 큰 빙하 덩어리가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제 보니 눈에 보인 더 작은 덩어리는 새발의 피에 불과했었다. 저게 그동안 허세를 부리면서 자기가 최고이었던 것처럼 바다 위에서 행세를 부렸는데 오늘 그 실체를 보니 혼자 잘나서 허허벌판의 바닷가에 떠 있었던 것이 아니었었다.
또 스크린 오른쪽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인데 사실은 유명한 중국 액션 영화로 주윤발, 양자경, 장쯔이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 ‘와호장룡’의 유명한 대나무 숲 사진이다. 중국에 ‘모소대나무’라는 희귀종 대나무에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대나무 중에 최고로 치는 모소대나무는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고 나면 4년 동안 아무리 물을 주고 가꾸어도 3cm밖에 자라지 않기에 농부의 가슴앓이 그리고 애간장을 태우게 하는 나무이다. 그래도 어떡하나 지금까지 수고한 것이 아까워서도 속는 셈 치고 한해만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5년이 되는 해에 손가락만 하던 죽순이 갑자기 하루에 30cm 가까이 쑥쑥 자라며 폭발적으로 성장을 하는 것이다. 비약적인 발전(quantum leap)을 이룬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땅을 파보았더니 그동안 전혀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대나무는 사실은 땅 밑에서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며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5년이 되는 해에 그 뿌리들로부터 엄청난 자양분을 흡수하여 순식간에 자라나 세상에그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역시 최고의 교육은 백문이불여일견이다. 빙산과 대나무의 사진은 세상에 참으로 귀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워 지지 않는다 (Rome was not built in a day)’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모든 위대한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래서 일찍이 조지프 애디슨은 "인생에서 성공하려거든 끈기를 죽마고우로, 경험을 현명한 조언자로, 신중을 형님으로, 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으라."라고 말했고, JM. 메스트로는"무엇인가를 하다가 막혔다면 그것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성공의 제1비결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젊은이들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든 힘들고 고된 바닥을 다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어두운 터널을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용기와 그리하여 그 어두움을 견디고 다시 걸어 나올 수 있는 인내와 노고가 필요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링컨의 명언처럼, 성공의 DNA 를 해부하면 준비하는 시간이 8할이고 나머지 2할은 보상을 받는 시간임을 기억하라는 권면이다. 나무를 베는데 6시간이 걸린다면 적어도 4시간은 도끼날을 가는데 쓰겠다는 링컨의 명언을 벗 삼아라는 충언이다. 나무를 베는 그런 하찮고 작은 일조차도 도끼를 가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면 하물며 우리들의 위대한 앞날의 매 순간도 그렇지 않을까?라는 우회적인 항변이기도 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라고 생각에 잠긴 청년들에게 한 선배의 이야기를 했다. 동병상련이라고 그 역시 이민 2세의 애환과 고난의 길을 걸었다. 새벽에 일나가 야밤에 피골이 상접한 채로 돌아오는 부모님 밑에서 일찍이 ‘홀로서기’를 터득했다. 부모님이 딱 한번 가계의 문을 닫았는데 아들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혹시나 아들의 이름에 누를 끼칠까 봐 아침부터 목욕탕에서 나오지를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아들이 눈치를 챈 것이다. 매일같이 냄새나는 생선을 다듬다 보니 몸에 생선 냄새가 밴 것이다. 그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아버지는 아침부터 목욕탕에서 진땀을 빼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오늘 모인 청년들처럼 마치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로 비상과 기상을 꿈꾸듯이 청운의 꿈을 가슴에 안고 뉴욕에 있는 한 상상도 못 했던 그런 장래성 있는 금융회사에 취직을 했었다. 처절한 삶을 살다 보니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성실하게 일하니 다들 인정해 주었고 이제 성공은 따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승승장구가 눈에 보이기 시작을 한 것이다. 그런데 ‘헉’ 이게 웬일인가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그가 승진을 앞둔 어느 날 독일의 한 부자가 미국 진출의 교두보로 그가 다니는 회사를 인수 합병하고 말았던 것이다.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었던 그날 날 새로운 회장이 이렇게 발표했다. “우리 회사는 이제 새로운 오너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관해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새로운 오너가 마음대로 직원을 해고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의 독일어 실력이 너무 형편없어서 새로운 다른 직원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면 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도 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달 후에 간단한 독일어 시험이 있을 겁니다. 합격하는 사람은 회사에 남고 불합격자는 회사를 떠나 주십시오.”
청천벽력 같은 발표가 끝나자마자 거의 모든 직원이 일과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기 위해서 못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시험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독일어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한국 2세는 전혀 회사의 ‘최후 통첩’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동요치 않고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본 동료들은 그가 시험을 포기했거나 이미 다른 직장으로 옮기려고 마음을 작정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험 결과 발표 날, 모든 직원이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그가 최고 점수를 맞은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는 다른 동료들과는 아주 딴판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에도 틈 날 때마다 계속 외국어 학원을 다녔고 차곡차곡 남이 보지 않았지만 자신의 실력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퇴근후면 늘 독일어 책을 읽거나 녹음기를 틀어놓고 독일어를 자습하곤 했던 것이다. 많은 또래의 동료들은 휴식시간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또 점심시간이 되면 트럼프를 치거나 하면서 자기네의 모임에 끼이지 않는 그를 조소하였다. 그까짓 쓸데없는 독일말을 배워서 대체 무슨 쓸모가 있냐고, 하지만 그는 이에 조금도 아랑곳 않고 의연히 짬나는 대로 독일어 공부에 매진했던 것이다. ‘공부해서 남주나’에서 ‘공부해서 남주자’로 자신의 삶을 견인하고 있었던 참 유별난 젊은이었다.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보다 당연히 그의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필규정이었고 또 평소의 노력이 성공밑천이 됨을 만 세상에 입증한 것이다.
비틀스를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 아니라면 다 삼척동자도 알아보는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늘의 비틀즈의 영광이 있기까지 비틀스가 겪었던 힘들었던 과정을 모른다. 지금은 신화가 된 비틀스이지만, 그들에게도 무명시절은 있었다. 무명밴드인 비틀스는 돈을 벌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로 가게 된다. 리버풀에서 하루 한두 시간의 공연이 전부였던 이들은 이곳 함부르크에서는 밤새 공연을 해야 했다. 매일이 강행군이었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그들을 고용한 함부르크 공연장 고용주는 그들에게 “쇼를 만들어라.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라.”라고 하면서 음악뿐만 아니라 쇼를 하도록 요구했다. 10대의 명랑한 비틀스가 함부르크 성인클럽에서 밤새 노래를 하고 쇼를 하면서 청중들을 매료시키기 위한 피와 땀을 흘려야만 했던 것이다. 이 각고의 노력은 만 시간의 법칙을 생각나게 하는 초기 비틀스의 서사이다. 훗날 존 레논은 그의 함부르크 시절을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남겼습니다. “나를 성장시켜 준 곳은 리버풀이 아니라 함부르크였다. 물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혹독한 경험이었겠지만, 함부르크의 생활은 이후 우리가 음악적인 청사진을 완성하는데 가장 소중한 시기였다.” 비틀스가 세계최고의 밴드로 거듭나게 되는 밑거름을 마련한 것은 다름 아니라 '함부르크 시절'의 연습량이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질문한다. 당신의 '함부르크 시절'을 만들어라.
할리우드의 상남자 브래드 피트를 요즘의 청년들은 잘 알고 있다. 오늘의 브래도 피트가 있게 한 일등공신의 영화가 있다. 바로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이다. 이 영화의 압권은 브래드 피트의 플라이낚시를 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 후에 많은 사람들이 낚시 삼매경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나돌 만큼이나 짜릿하고 황홀한 브래트 피터의 플라이낚시 장면이었다. 아무리 배우지만 어떻게 저렇게 그 힘들다는 플라이낚시를 할 수가 있었을까? 나중에 알게 되었다. 브래드 피터는 오디션을 앞두고 그 영화 감독으로 부터 영화의 둘도 없는 장면이 될 플라이낚시를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를 찾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남몰래 차가운 겨울 강에서 오랫동안 플라이낚시 전문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고 하는데 소문에 의하면 일천번 이상 연습을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대미이었고 압권이었던 브래드 피터의 환상적인 플라이낚시의 장면을 보면서 그가 그동안 남몰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들의 위대함을 보면서 피땀, 피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절대로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가 없다는 사실도 보게 되었다.
혹자들은 비틀스가, 브래드 피터가 또 한국 젊은이를 보고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억세게 준비를 많이 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데 인생은 이상하다. 이상하게 억세게 준비를 많이 한 사람에게는 이상하리 만큼이나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비틀스, 브래드 피터가 또 한국 젊은이는 말한다. 중요한 과정을 무시하면 요행주의 한탕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기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더 이상 사람들은 내 이웃이 저지르고 있는 온갖 편법과 요행 앞에서 나만의 근검절약, 성실한 삶의 이정표를 망각하고 만다. 열심히 개미처럼 쌓아 가리라는 생각은 어느새 빛바랜 슬로건이 되었고 뭐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고질병에 걸린 사람들로 꽉 차고 만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단 한번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위정자들의 꽁무니를 도박장에서 대박을 꿈꾸는 민초들이 따르고 있다. 열심히 해봤자 미래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괴감과 무력감만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서글프고 일그러진 이 시대의 청년들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세상의 모든 위대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한 순간의 영광은 지난 적게는 4년 그리고 길게는 수십 년 동안의 절치부심(切齒腐心), 과 와신상담(臥薪嘗膽) 즉 자신이 마음먹은 일을 이루기 위해서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것이었음을 세상에 여실히 증거 한 것이다. 무조건'운' 탓으로 돌리지 말고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노력의 결과만큼이나 과정에서 흘린 피눈물 앞에서 떳떳하고 결코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손자인 저에게 조밥을 먹으면서도 농부의 수고와 피땀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도망간 입맛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진리였다. 일맥상통하게 옷 한 벌을 입으면서도 누에고치의 발버둥을 상상하면 세상에 더 이상의 금상첨화도 없다.
비틀스, 브래드 피트 그리고 한인 젊은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청년들의 귀에 아주 익숙한 유행어 중 하나인 '마일리지 서비스(Mileage Service)'를 생각케 한다. 비행기 여행을 자주 하다 보면 거리에 따라 마일리지를 적립하게 된다. 이 마일리지의 특징은 처음 몇 번으로는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자주 사용하여 점수가 누적되면 특별한 선물이나 보상을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주위의 모든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라. 분명히 오늘이 오기까지 어느 한구석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구슬땀을 흘리고 또 흘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회와 준비가 부닥친 현장에는 위대한 열매가 ‘lucky breaks’ 맺어지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일반적인 관점에서 기적처럼 보이는 일들도, 모두 무언가 차곡차곡 쌓아온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대들의 삶의 현장에서 지금 당장은 감각으로 느껴지는 결과가 없더라도 일상에서 다져놓은 "누적"은 언젠가 감각적인 현실에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누구나가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갭이나, 또 훨씬 앞서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남과의 비교, 그로 인해 요동치는 마음을 수시로 만나 남몰래 피눈물 흘릴 때도 있더라. 그래도 어떡하겠나 철석같이 믿어야 한다. 무엇을 말인가? 내가 흘린 피눈물과 땀방울에 내 스스로 감동할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그 정직한 희생에 나를 기꺼이 떠 맡길 수 있어야 하며 때로는 결과에 승복하고 또 초연해질 수 있어야 한다. 눈속임과 꼼수가 아니라 오직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나의 정수인 피와 땀방울 밖에 없음을 뿌듯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흘린 땅방울과 피눈물 썩인 노력 앞에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어야 한다. 비록 가끔은 노력에 의한 대가보다는 부모후광과 빽을 등에 업은 낙하산들, 금수저 '프리패스' 같은 ‘그들만의 은밀한 거래’가 우리를 울릴지라도 우리에게는 비틀스, 브래드 피트 그리고 한인 젊은이 이야기가 우리의 후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