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월동준비, 발상의 전
올 한 해도 이제 딱 한 장의 달력만을 남기고 있다. ‘도대체 뭘 했지?’라는 넋두리는 이제 내 삶의 동반자가 되고 말았다. 역시나 올해도 세상에서 가장 빨리 날아가는 새 (bird)는 ‘눈 깜짝할 새’라는 말을 어김없이 또 에누리 없이 만천하에 입증한 한 해였다. 그리고 ‘눈 깜짝 할 새’라는 놈은 늘 그랬던 것처럼 무례하기 짝이 없기에 시간의 주인이라고 자청했던 나에게는 한 번도 묻지 않고 지 마음대로 훌쩍 날아가고 말았다. 유구무언의 주인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아니라 시간이 내 삶의 주인이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딱 한 장 남은 달력은 묘한 괴력과 마력을 가지고 나를 째려보고 있다. 왠지 지난330일 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연례행사’를 하게 한다. 한 해의 끝자락은 우리를 엄숙해지고 아무리 생각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또 철이 없이 살아온 누구에게도 한 해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
겨울의 문턱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케이블 TV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절찬리에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제93편의 반격’(The Flight that Fought Back)을 감상했다. ‘악몽의 날 the day of infamy’인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시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돼 원래의 목적지인 워싱턴 D.C. 에 이르지 못하고 펜실베이니아주의 샹크스 빌 상공에서 추락한 유나이티드 제93편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영화 ‘제93편의 반격’의 압권적인 장면은 자신들이 타고 있는 비행기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자살추락 용으로 사용되리라는 것을 알고 승객들은 반격을 시도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도는 테러리스트들의 거센 저항에 부닥치고 만다. 마침내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승객들은 하이재커들과 함께 차라리 상공에서 모두 죽기로 작정을 하는데 바로 그 순간 총대를 멘 한 젊은이의 너무나 뚜렷한 육성의 소리가 들렸다. “Are you guys ready? Okay. Let's roll! 여러분, 다들 준비되었어요? 좋아. 시작하자!”외치면서 죽으면 죽으리라 테러리스트들에게로 달려갔다. 훗날 우리는 그가 누구인가 알게 되는데 바로 타드 비머(Todd Beamer)라는 젊은 이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숨 막히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길고도 긴 침묵이 흘러갔다. 나중에 알게 된다 그 침묵의 순간은 바로 승객들이 탄 비행기가 이미 추락을 했던 것임을 말이다. 우리는 또 알게 되었다. 만약 이들이 역습을 하지 않았더라면 비행기는 테러리스트들의 당초 목적지인 워싱턴 D.C. 에 추락 했을 것이고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을 것은 뻔한 일이다.
영화에서 가장 가슴을 아프게 했던 순간은 비행기가 추락하기 바로 직전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그들의 지상의 가족과 친지와 나누었던 셀폰 대화 내용들이었다.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공포에 질린 승객들의 두려움과 불안, 초조와 절망감에 소리들로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지상의 아내와 남편,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친구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들은 한결 같이 “아이 러브 유”이었다. 한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해요. 아이들 잘 부탁해요”라고 끝까지 자식들 걱정을 한 엄마의 모습이었고 한 남편은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내 사랑 전해 줘. 정말 미안해”라고 오히려 자기가 미안하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는다. 한 딸은 어머니에게 “굿 바이를 말하려고 전화해요. 엄마와 아빠를 사랑해요”라며 작별한다. 한 아들은 “아버지 미안해요”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였다. 무슨 영문인지 듣는 내 가슴이 답답해진다. 생면부지의 전혀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영화를 보는 젊은이들의 눈에는 한 없는 눈물들이 줄줄 흘렸다.
왜 하필이면 11월과 12월의 사이에 이런 어떻게 보면 모두가 생각하기 조차 싫어하고 불편하기만 한 주제를 담은 영화를 보일까? 비행기가 테러범들에게 납치된 것을 깨닫는 순간 비행기 내에서 주변 몇 사람과 함께 테러범들과 싸울 것을 의논하고 “자 나가자”(Let's Roll)고 외치며 조종실로 뛰어들어 비행기를 추격시킴으로 워싱턴 국회의사당으로의 진격을 막았던 ‘제93편의 반격’의 ‘일등공신’인 타드 비머라는 사람을 젊은이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타드 비머의 아내 리사 비머라는 여성의 메시지를 오늘 우리 이민 2세와 3세들에게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을 특별히 대학의 젊은이들을 향한 그녀의 메시지는 바로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하다.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사십시요. 왜냐하면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아가는 것이 먼저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보답이고 응답입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녀는 말한다. 남편이 죽고 난 뒤에 가장 자신을 마음 아프게 했었던 일들은 바로 남편이 살아 있을 때의 크고 작은 일들에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었던 것들이라고 한다. 남편이 죽고 난 뒤에 그녀는 남편의 빈자리를 보면서 수많은 나날을 피눈물로 침상을 적셨고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었고 또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맹세하고 또 맹세한다고 한다. 자신에게 허락된 남은 생애 동안 매 순간을 ‘낯설게 바로 보고, 낯설게 생각하면서 (defamiliarization)” 살기로 작정을 했다는 것이다.
타드 비머의 아내 리사 비머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일상의 모든 것은 시쿤등의 대상이 아니라 놀라움과 감탄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외친다. 모든 사물을 망원경으로만 보지 말고 가끔은 현미경을 가지고도 바라보라고 한다. 때로는 우리 주위에 가장 가까운 것들과 사람들을 너무 당연하게 하찮게 보지 말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관점,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그런 시각에서 각도, 또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나 시각으로 바라보라고 한다. 과감하게 ‘거리두기’, ‘탈친숙화’, ‘다르게 하기’ 등의 일생일대의 ‘발상의 전환’를 시도하라고 한다. 매 순간을 너무 ‘대충’, ‘대강’, ‘적당히’ 너무 익숙함과 당연함에 길들여지지 말라고 애원을 한다. 무엇이든 정형화되고 말았던 무언가에 낯섦을 더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우리의 삶도 재밌는 영화처럼 특별함으로 가득해진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리사 비머의 말은 그렇게 엉뚱하고, 터무니없고 또 얼토당토않은 소리만은 아니었다. 우리 주위에 모든 위대한 것들을 한 번 유심히 보라.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그런 시쿤둥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그 친숙하고 익숙한 관점을 거부하고 낯설게 보기를 시작을 한 것이다. 한 젊은이가 사과 하나가 떨어지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평범한 사실을 거부하고 ‘낯설게 보기’를 시도했었던 것이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냈던 것이다. 주전자에서 수증기가 나오는 너무나 평범한 일에서 제임스 와트라는 젊은이는 ‘낯설게 보기’를 시작한 것이다. 기차의 발명이 그 결과물이다. 익숙함에서 감춰진 보물들이 마침내 낯섦에서 발견되고 인간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세상이 이만큼이나 살만한 세상이 된 것은 수많은 문학가들 특별히 시인들이 눈에 익숙하기만 했던 사물들의 ‘낯익음’의 껍질을 벗고 사물을 ‘낯설게 보고 느끼게 함’에서 시작이 된 것이다. 가치가 전혀 없었던 익숙하기만 했었던 천덕꾸러기 국화꽃 한 송이가 시인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새롭게 탄생을 한 것이다. 그 흔해 빠진 대추 한 알이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로 다시 태워 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감히 함부로 목에 힘주고 대추 한 알을 똑바로 바라볼 엄두도 생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다들 누군가의‘낯설기 바라보기’가 위대한 순간을 탄생시킨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낯설게 바라보기’의 압권적인 시는 바로 심순덕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이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중략 …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가장 하찮게 당연하게 취급을 받았던 준재가 바로 내 바로 눈앞에 또 코 앞에 계셨던 우리 엄마였다. 살아 계실 때는 당연히 천년만년 장수하면서 내 한풀이 하소연을 기꺼이 항상 받아줄 동네북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떡하지요? 엄마를 낯설게 바라보기 시작을 하자 엄마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말았네요. 너무나 당연히 내 옆에 오래오래 내 뒷바라지하면서 계실 줄 알았는데..그러고 보니 행복과 불행은 다 내 마음먹기와 눈에 달려있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패러디를 해본다. ‘엄마’라는 단어 대신에 ‘남편’ ‘자식’ ‘형제’ ‘친구’ ‘직장 상사’ 그리고 ‘직장 동료’들을 삽입해 보라. 참으로 다 귀하고 귀한 삶의 안식처였고 휴식처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그동안 그들을 너무나 당연시하면서 너무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대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불평불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왜 나는 한 번도 좀 더 일찍이 다른 각도와 관점에서 ‘낯설게’ 바라보지 못했을까? 뒤늦은 회한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낯설게 바라보는’ 삶을 살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이다. 타드 비머의 아내 리사 비머의 외침처럼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이맘때면 늘 그랬던 것처럼 11월 끝자락에는 젊은이들에게 ‘당신은 월동준비를 잘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한다. 함께 감상한 다큐멘터리 ‘제93편의 반격’의 줄거리와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제가 지금 ‘월동준비’라고 하니 혹시라도 김장 준비나, 겨울을 잘 나기 위해 자동차 부동액 채우기, 또 겨울철 방한 재킷 챙기기나 하라는 뜻이 아님을 알 것이다. 구전에 의하면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너 월동 준비했니?”라는 유행어가 돌고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은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데 너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애인을 준비했느냐”라는 기상천외한 해석도 있다고 한다.
제가 월동준비를 하라는 권면과 함께 전매특허처럼 등장하는 한 젊은 필라델피아 의과대학 학생의 이야기가 있다. 이 학생이 어느 날 “겨울이 오기 전에”라는 재목 설교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기숙사로 달려가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제가 공부한다고 여태 편지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어머니가 제 공부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날마다 저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저만을 소망으로 살고 계신 것을 잘 압니다.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의사가 되어서 어머니 슬하에 돌아가 효도하며 살겠습니다.’ 하고 편지를 썼다. 편지를 보낸 지 한 달 후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보를 받고 허급지급 기차를 타고 며칠을 걸려 고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신 후였던 것이다. 후회막심과 회한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루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어머니 누워 계신 베개 밑에 얼마 전 자신이 보낸 편지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보낸 편지를 끝까지 읽으며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돌아올 날만을 학수고대하시면서 기다렸을 것입니다. 아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습니다. 왜 너무 어머니의 존재를 그렇게 쉽게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을까? 왜 한 번도 마지막이 올 수도 있으니 낯설게 바라볼 수는 없었을까?
불현듯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 가운데 있었던 이런 말을 기억하게 된다. '모두들 죽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하루의 삶 속에서도 많은 죽음을 목격합니다. 그러면서도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지나칩니다.’ 또 톨스토이의 명언도 기억이 난다. ‘죽음을 망각한 생활과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의식한 생활은 두 개가 서로 완전히 다른 상태이다. 전자는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후자는 신의 상태에 가깝다.’
나는 이민 2세와 3세들에게 한국의 박노해 시인을 종종 소개한다. 왜일까? 그는 언젠가 나로 하여금 ‘월동준비’라는 낱말을 가슴으로 듣게 했던 참 고마운 삶의 은인이기 때문이다. 알아두면 우리 젊은이들의 좋은 삶의 격려자 또 응원자가 되리라 믿는다. 수많은 시인들은 펜으로 끝을 내지만 박노해 시인은 삶으로 자신의 시를 살아간 참으로 더문 이 시대의 귀한 시인이다.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무엇으로 따듯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듯한 방을 고마워하고/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처음 이 시를 처음 접하면서 우연하게 박노해 시인의 프로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웠다. 아시다시피 박노해 시인님은 "노해"라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노동자의 해방" 운동을 위해 젊음을 불사른 장본인이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모습이었던 불의한 권력을 향해 몸 바쳐 투쟁하는 삶에 치열했던 혁명가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우리들에게 너무나 판이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느 날부터 운동가라는 익숙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낯설기만 한 모습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그것이 알고 싶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변하게 했을까? 항상 ‘네 탓이오’만 외치던 사람이 이제는 ‘제 탓이오 제 탓이오 그리고 네 탓이오!`라고 한다.
이런 추측을 감히 해본다. 혹시나 인생의 겨울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추측말이다. 겨울의 찬 날씨 때문에 우리가 더 포옹하고, 더 서로를 향하여 깊어지는 사랑, 그리고 사소하고 하찮아 보였던 것들에 더 감사할 줄 알게 되지는 않았을까? 우리 젊은이들도 그런 천지개벽의 변화가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라는 과욕을 부려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너무 지나친 허무맹랑한 희망고문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젠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전례 없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에 못 보던 한 현수막이 식품의약 안전처 건물에 적혀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라는 문구이었다. 그 당시에 모두가 힘들어할 때에 그 현수막은 저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었던 감동을 주었다. 추운 겨울이 있기 때문에 서로 마음을 모으는 계기를 삼자는 권면이었고 또 코로나 덕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낯설게 보면서’ 살아가라는 권면이었는데 그때만큼이나 내게 주어진 하루를 깊이 성찰하고 통찰하면서 살아가야 하리라는 깨달음을 느낀 적도 없었던 것 같았다. 아무쪼록 올 겨울이 오기 전에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한번 고민해 보시는 젊은이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어떻게 아나요 운명이 확 뒤 바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