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청춘 사용설명서 #2
저는 취미로 ‘영화 감상’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80년대에 인기 소설작가라 일컬어지는 톰 클랜시의 작품은 마치 날 위해 만들어진 영화처럼 내게 필요한 그 모든 것을 단번에 해소해 줄 만큼 안성맞춤의 작품이었다. 톰 클랜시의 작품을 벗 삼아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랬고, 낳선 영어를 배웠고 또 비록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톰 클랜시의 책들 덕택에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특별히 톰 클랜시 영화의 ‘터줏대감’ 주인공 잭 라이언 그리고 그 역할을 도맡아 한 배우 헤리슨 포드의 대처 불가능하기만 했었던 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 로망이었고 내 인생의 벤처마케팅할 인물이 되었다.
톰 클랜시와 잭 라이언의 무엇이 이 이방인을 그토록 매력에 빠지게 했을까? 단연코 떠 오르는 명장면이 있다. ‘패트리어트 게임’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잭 라이언이 가족을 데리고 영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버킹엄 궁전 앞에서 복면을 쓴 테러리스트들이 영국의 왕세자 가탄 자동차를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하필이면 테러 공격의 현장에 있었던 이 시대의 마지막 사나이 잭 라이언은 불의 앞에 그냥 절대로 지나치지 았는다. 순식간에 맨손으로 테러리스트 한 명을 제압하고 그의 총을 빼앗아서 다른 테러리스트 한 사람을 사살하였지만 그만 자기도 총에 맞아 스러지고 만다.
그가 쓰러진 틈을 타서 테러리스트들은 도망갔지만 그래도 그의 용맹 덕분에 왕세자의 가족은 무사할 수 있었고 부상당한 잭 라이언은 병원으로 갔지만 곧바로 회복하고 원래 직장으로 돌아왔다. 영웅 대접을 받게 된 잭 라이언에게 한 직장 친구가 이렇게 질문을 한다.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그 상황에 뛰어든 것이냐? 죽으려고 환장을 한 것이냐?’ 잭 라이언이 대답한다. ‘나는 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분노를 느꼈을 뿐이다. 그 나쁜 사람들이 하는 짓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는 그냥 화가 났다.’라는 함축되고 응축된 말을 한다. 그 말이 지금 떠 올려도 참 잊지 못할 명대사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사실 그 테러사건은 잭 라이언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의 가족들에게 행해진 테러도 아닐 뿐만이 아니라 잭 라이언은 영국 사람도 아니고 경찰관도 아니고 또 왕실가족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도 아니다. 단지 외국인 관광객으로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온 것뿐이다. 더 더욱이나 그는 무장을 한 것도 아니고 맨손으로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무조건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잭 라이언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마음속에 분노를 느끼고 테러리스트들과 맞짱을 떨었던 것이다.
제가 깨달은 것이다. 미국의 발전의 역사에는 늘 그때마다 한 사람의 분노가 촉매제이었다. 저는 감히 말한다. 한 사람의 분노가 진짜 미국의 힘! 의 원산지라고 말이다. 1955년 12월 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로자 파크스 부인은 퇴근 후 집으로 가기 위해서 버스에 올라탔다. 피곤한 몸을 지체하기가 힘들었던 42세의 로자 파크 스은 앞쪽 백인 좌석 바로 뒤 첫 번째 자석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 기사는 “방금 올라탄 백인 손님들이 앉아야 하니 흑인들이 앉는 뒤쪽으로 옮겨 앉으라”라고 날카롭게 고함을 쳤다. 파크스 부인과 함께 버스에 오른 다른 흑인들은 운전기사의 말에 따랐지만 그녀는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훗날 그녀는 외쳤다. “나는 다른 승객과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그런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자리 양보를 거부한 그녀는 결국 경찰에 체포, 수감되었고 이 사건에 분노한 흑인들은 대대적인 ‘버스승차 거부 운동’을 벌였다. 미국 역사에 있어서 거대한 분수령이 되었다. “시대가 영웅을 낳고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이 분노한 흑인들의 힘은 훗날 흑인 민권 운동 지도자이며 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라는 전설적인 명연설을 남기게 되었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노예로 살던 이들의 자녀들과 노예를 부리던 이들의 자녀들이 한 핏줄 한 동기나 다름없이 의좋게 한자리에 둘러앉을 수 있으리라는, 그런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미국 언론은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대서특필한 적이 있다. 그 젊은이는 앞날이 창창했었고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27살의 풋볼 선수 패트 틸먼이었다. 2002년 3월 미 풋볼 팀 애리조나 카디널스와 3년간 360만 달러라는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으로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 젊은이가 돈과 보장된 명예를 다 마다하고 누구도 가라고 하지 않았던 군입대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그 이유가 미국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몇 달 전 일어난 9·11 동시 테러가 이 젊은 선수의 인생행로에 관한 결심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왜 테러리스트들이 죄 없는 사람들을 죽게 했을까?”라는 분노감에 결국 2002년 5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틸먼은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선수였던 동생 케빈과 함께 육군 특전사에 자원입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고 27살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비록 그는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지만 한 젊은이의 분노가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은 패트 틸먼의 죽음에 분노하였고 나라가 픙전등화의 시대에 군입대를 자원한 젊은이들이 숫자가 전례 없이 높기만 하였다. 이 이방인의 눈에 ‘아하! 저런 게 미국의 저력이구나!’라는 전율을 느끼게 했음을 고백한다. 그들은 거리로 뛰쳐나가서 시위를 벌이지 않았다.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나름대로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가야 할 길을 찾았던 것이다. 그 당시에 저는 미국에 있으면서 고국에서 들려오는 내 나라의 현실을 보고 있었다. 어떤 현실? 바로 청문회에서 걸핏하면 터져 나오는 고관백작들 자식들에 병역 기피 사건들 이야기다.
잭 라이언, 패트 틸만 그리고 로자 파크스를 생각하면 기억나는 ‘로베레 장군’이라는 영화가 있다. 나치 정권에 대항한 레지스탕스들이 무참히 처형당한다. 저항운동에 한 번도 참가한 일이 없는 사람이 경찰의 실수로 잡혀와 처형의 위기에 처했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저항운동에는 관심도 없고, 참여한 일도 없다. 내가 저들과 함께 죽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외쳤다. 이때 레지스탕스 대원이 그를 향해 말한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죽어 마땅하다. 당신은 어디에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전쟁은 5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갔으며, 도시가 파괴되었다. 조국과 민족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는데 도대체 당신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언제부터 내 귀를 후벼 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라는 성난 목소리인데 ‘로베레 장군’ 이후에 세월이 이렇게도 많이 흘러갔지만 여전히 인간들의 세상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인간들의 이야기로 귀가 따갑기만 하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어느 날 그들이 흑인 노예들을 잡으러 왔었어. 나는 가만히 있었지. 왜냐하면 나는 흑인이 아니니까. 그다음에는 그들이 유대인들을 잡으러 왔었어. 그때도 나는 가만히 있었어. 왜냐하면 나는 유대인이 아니니까. 그다음에는 그들이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었지. 그때 역시 나는 가만히 있었지. 왜냐하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니까. 그 다음엔 그들이 또 동성애자를 잡으러 왔었어. 그때도 나는 가만히 있었지.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니까. 마지막엔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어. 그때 나는 억울하게 잡혀 죽을 수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나를 보호해 줄 이웃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러고 보니 우리 인류의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저절로 그렇게 흘러간 것이 아니었다. 누가 기꺼이 불공평과 부당함에 분노를 느꼈고 그리고 기꺼이 그 도전에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나 16살 스웨덴 소녀로 노벨평화상을 탄 그레타 툰베리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레타는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16세 환경 운동가로 마구잡이로 상처를 입은 지구환경문제에 분노했던 십 대이다. 201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여성이 보편적 교육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한 10대 파워블로거이었다. 그 길 선상에서 그는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 것이다. 역사적 사건인 ‘아랍의 봄’은 2010년 12월 17일 인구 12만의 튀니지 중부도시 시디 부지드에서 채소 노상상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여성 공무원의 단속에 항의하며 시작됐다.
또 방글라데시 출신의 경제학자로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가로 불리는 무하메드 유누스 박사는 유난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자세로 일관하였던 기존의 은행들에게 분노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융자를 하기로 한 ‘그라민은행’의 문을 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었다. 소문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이 ‘언제 한국은 노벨 수상자가 나올까?’ 안달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혹시나 ‘분노하면’ 단번에 딸 수가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서 실없이 웃는 내 모습을 쳐다본다.
미국에 로자 파크스 또 마틴 루터 킹목사가 있었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에는 안창호라는 젊은이가 있음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독립운동가 그리고 교육자인 도산 안창호는 1894년(고종 31년) 자신의 나이16세때 이웃날 청과 일본이 전투를 벌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16 세라 나이에 ‘걸 맞지’ 않게 “왜 싸우는 쪽은 청과 일본이라는 나라인데 정작 피해를 보는 쪽은 죄 없는 조선 사람들일까? 왜 죄 없는 조선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또 왜 조선 사람들의 집과 공장들이 불타고 왜 조선 사람들은 피난을 가야만 한다는 말인가?”라는 의분을 품고 또 분노하기 시작을 한 것이다. 훗날 대한민국의 역사는 말하고 있었다. 소년의 분노는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그래, 우리나라가 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 있는 민족이 되면, 어떤 나라도 우리 땅에서 소란을 피우지 못할 것이다.”
소년 안창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깨달았다. 이때부터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게 된다. 우선 외국인 선교사가 세운 구세학당에 들어가 영어와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한다. 그리고 1902년 안창호는 25세의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섰다. 마음에 의분을 품은 사람의 눈에는 그냥 지나치는 것이 없었던 모양이다. 마치 버킹엄 궁전 앞에서의 잭 라이언처럼 말이다. 어느 날 안창호는 길을 가다가 대한의 사람 둘이 서로 상투를 잡고 싸우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나가던 미국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조롱하듯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안창호는 멀고 먼 낯선 나라에서 이런 동포들의 모습에 속상하고 분통이 터졌다. 안창호는 그날부터 자신의 학업을 뒤로한 채 교포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모으는 일에 앞장섰다. 훗날 독립운동의 초석을 깔게 되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시대를 상징하는 수식어로 ‘3무’의 시대라고 한다. 즉 첫째는 무관심의 시대, 둘째는 무책임의 시대, 셋째는 무감동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me-generation’의 시대이고 ‘I do not care’의 시대라는 말이다. 그 시대들에게 감히 나누고 싶은 책이고 인물들이 있다.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일약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입성한 ‘분노하라’는 재목의 책이다. 나치 독일 치하 시절에 불란서에서 레지스탕스 저항 운동에 참여하였던 노전사 스테판 에셀이 93세의 나이에 프랑스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비장한 목소리’의 외침을 담아낸 책이다. 노병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부디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이상을 부활시키고, 전파해 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당신들이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 그는 외치고 있다. 그는 현상유지와 안주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외친다. ‘우리가 그 무언가에 분노할 때, 비로소 우리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참가할 수 있으며 또 그럴 때 비로소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고 원하는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역사를 흘러가게 할 수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노신사’는 말한다. 분노의 최대의 적은 바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할 수밖에……" 이런 식의 무관심과 방관이라고 한다. 그러니 "제발 좀 부당하고 불공평한 그 무엇을 찾아보시오. 그러면 찾아질 것이오"라고 외친다. 같은 맥락에서 ‘BTS 방탄소년단'을 일약 세계적 스타로 키워낸 방시혁(47)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모교 후배들에게 했었던 축사의 권면도 기억했으면 참 좋겠다. “오늘의 저를 만든 에너지의 근원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화'(火), 즉 '분노하는 방시혁'이었다. 적당히 일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음악 산업이 처한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았고, 그것들에도 분노했다.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와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내고,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분노하라’는 말 자체가 우리에게는 굉장히 거북하게 들리고 또 마치 분노라는 단어가 어떻게 보면 폭력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그리하여 전혀 긍정적인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인물들의 삶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렇게 '올바른 생각으로 분노할 수 있구나'라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뭐라고 말할까? 마치 원자탄이라는 폭탄은 가공할만한 힘으로 사람들을 죽인다 하지만 잘 사용이 된 방사능은 암 환자를 살리고 또 X-ray 사진으로 인명을 구하는 일등공신이 되기도 한다고 할까. 또 어떤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되기도 하지만 장군의 손에서는 나라를 구하는 정의의 도구가 된다고 할까.
하여튼 부디 젊은이들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너무나 평범하고 그 평범함에 안주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창조했음을 말이다. 당신이 훌륭한 의사가 되려면 하나는 분노의 마음이요, 또 하나는 사랑의 마음이다. 환자를 사랑으로 보듬고 또 이 시대에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에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는 질병을 반드시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분노의 마음이 강할수록 연구에 정진하지 않겠는가. 모든 위대함에는 기술은 당연한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그 위대함은 반드시 분노하는 마음으로 완성을 한다.
젊음이라는 혈기로 화나는 대로 행동하고 화 에너지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그로 인해서 수많은 희생자가 생기게 된다. 거룩한 분노, 거룩한 불만이야말로 위대한 세상 좀 더 건설적이고 좀 더 정의로운 세상을 성취하기 위한 원동력임을 기억하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에도 눈하나 깜짝 않고 분노할 줄 모르는 이 시대의 ‘로베레 장군’들 같은 속물들이 수두룩한 이 세상에서 안주병이라는 ‘고질병’에 걸린 내 가정, 내 나라, 내 직장 그리고 내 공동체를 구할 이 시대의 분노한 잭 라이언이 당신의 될 수는 없을까? 내 가정, 내 직장, 내 공동체 그리고 내 나라의 운명이 달라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