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실수 혹은 축복, '망각'과 '얍상함'
작년의 봄은 불길한 징조와 함께 도착했다.
아랫배를 무딘 젓가락 끝으로 내장 어딘가를 꾹꾹 누르는 듯한, 기분 나쁘고 집요한 통증이 있었다.
한 달쯤 그 불쾌함에 익숙해질 무렵, 지인의 입을 통해 도착한 소식은 내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
나와 비슷한 통증을 앓던 누군가가 대장암 선고를 받았다는 이야기.
그때부터 내 배 속의 통증은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 무언가 불안한 신호처럼 읽히기 시작했다.
사건의 결정타는 세차장 강아지 ‘봉달이’를 아내가 산책시키고 돌아온 저녁,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식탁 위에 불길한 예언을 던져놓았다.
세차장 사장님이 내 안부를 묻더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무당이었다는 그 사장님은, 지나가는 말로 내 안색이 ‘보기에 영 안 좋다’며 건강을 걱정하더란다.
아내는 까르르 웃으며 그 집 사장님이 참 오지랖도 넓다며 국을 펐지만 내 숟가락은 허공에서 멈췄다.
무속의 피가 흐른다는 사내의 예언과 내 배 속의 통증, 그리고 이름 모를 이의 암 투병 소식.
이 세 가지 점이 연결되자 내 눈앞엔 선명한 별자리가 그려졌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이름의 성좌였다.
정말로 나의 불안에 불꽃이 피어오른 것은 하필 다음 날이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며 마주한 평상시와는 다른 신호는 내 눈엔 이미 사형 집행관의 단두대처럼 보였다.
당장 인터넷 창에 검색을 시작했다.
아......인터넷 검색창은 잔인했다.
'복통', '대장'을 입력하자 알고리즘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암 환자 커뮤니티로 안내했다.
식은땀이 이마를 적셨다.
그리고 나는 내가 없는 세상을 상상했다.
남겨진 아내는 저 아파트 대출금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내가 가입한 보험금은 그녀의 노후를 지켜줄 만큼 넉넉한가.
상상 속의 나는 이미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진 채, 창밖의 낙화를 보며 마지막 숨을 고르는 고귀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바로 비장한 각오로 대장내시경을 예약했다.
검사 하기 전 마시는 약은 마치 사약을 받는 기분이었다.
속을 비워내며 나는 내 죄도 함께 씻겨 내려가길 바랐다.
검사 당일, 검사실로 가기전 나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눈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부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
하지만 반전은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찾아왔다.
마취에서 깨어난 나를 맞이한 의사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해서 도리어 야속할 정도였다.
"용종 하나 없네요. 아주 깨끗합니다."
"그럼 그... 통증은요?"
"아, 치질이 좀 있으시네요. 그것 때문에 아랫배까지 신경이 쏠렸을 겁니다."
대장암이라는 대하소설의 결말이 고작 ‘치질’ 두 글자로 요약되던 순간이었다.
비극의 주인공은 순식간에 코미디의 조연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조선 시대 선비가 임금에게 올릴 법한 극진한 배꼽인사를 서너 번이나 거듭하고 병원을 나섰다.
병원 문을 밀고 나오는 순간, 세상은 과장된 필터가 씌워진 영화 세트장 같았다.
매연 섞인 공기는 달콤했고 자동차 경적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서곡처럼 들렸다.
"좋다! 오늘은 내가 오마카세 쏜다!"
아내에게 호기롭게 외쳤다.
죽음의 문턱에서(적어도 내 머릿속에선 그랬다) 돌아온 남편이 쏘는 최고급 초밥 앞에서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근사한 식사를 마치고 취기가 기분 좋게 올라올 무렵, 길가에 흐드러진 벚꽃이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장례식에 뿌려질 조화처럼 보이던 저 하얀 꽃잎들이, 이제야 비로소 생의 축복처럼 보였다.
죽다 살아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더니, 그게 이 말이구나!
나는 벚꽃 나무 아래서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이 3일간의 지옥 같은 시간과, 지금 이 찰나의 환희를 기억하며 웃으며 살겠노라고.
하지만 신이 인간을 만들 때 가장 공들여 넣은 재료는 아마도 '망각'과 '얍상함'인 모양이다.
한 달이 지났을까.
나는 다시 사소한 일에 집착하고 밴댕이 소갈딱지만 한 자존심으로 화를 내고 괜한 걱정으로 시무룩해지기 일쑤였다.
벚꽃 나무 아래서 했던 그 숭고한 맹세는 시간과 함께 증발해 버렸다.
우리는 대단한 철학자가 되어 삶을 관조하다가도, 당장 내 발가락에 박힌 가시 하나에 온 우주가 무너지는 얍상한 존재들이다.
그래도 가끔 배꼽인사를 하던 그 병원 진료실의 공기를 떠올린다.
대단한 비극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치질 정도의 고민을 안고 투덜대며 살 수 있는 이 하찮은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거대한 축복이었는지를.
인간은 참으로 얍상하다. 그래서 참으로 살아있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