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노포에서 단골이 된다는 것

아구내장수육을 맛보며

by 레비나스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는 것은 외지인들이 덧칠한 비릿한 분칠에 불과하다.

이 도시의 진면목은 해풍에 깎여나간 바위처럼 거칠고, 그 바위 틈새에 끈질기게 발을 붙인 이끼같다.

화려한 수식어를 걷어내고서야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통영의 살결은 무뚝뚝하고 차갑지만, 그 속에는 한번 달궈지면 좀처럼 식지 않는 뚝배기 같은 열기가 숨어 있다.


지도가 가리키는 길 끝에서도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아구찜 식당이 하나 있다.

포털의 매끈한 리뷰 대신 사람들의 젖은 입김을 타고 전해지는 곳.

그곳엔 주름진 생을 맞잡고 살아가는 노부부가 있다.

아내는 평생 아구의 차가운 배를 갈라 속살을 발라냈고, 남편은 아내가 길어 올린 바다의 정수를 손님들의 식탁으로, 혹은 낡은 오토바이에 실어 겨울 바닷바람 속으로 날랐다.

남편은 경상도 사내치고는 드물게 다정한 눈을 가졌는데, 그 눈동자의 낙처는 언제나 주방 안쪽, 아내의 굽은 등 위에 머물렀다.

“우리 할멈, 아침부터 무릎 아프다 카더니 괘안나?”

무심하게 던지는 그 한마디가 화려한 고백보다 묵직하게 식당 안을 부유했다.


외지인들에게 그곳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성채와 같았다.

겨울에만 한시적으로 허락되는 ‘아구 내장 수육’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낯선 이가 조심스레 주문을 넣으면, 아내의 대답은 도마 위의 칼날처럼 단호하게 잘려 나왔다.

“다 떨어졌심더. 딴 거 시키소.”

주방 찜기 위에는 뽀얀 김을 올리는 내장이 수북했지만,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한정된 귀한 음식은 단골손님에게만 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것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긴 시간 마음을 섞은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일종의 비급이었기 때문이다.


통영의 식당에서 ‘단골’이라는 이름표를 얻기까지는 수천 번의 파도가 밀려왔다 가듯 시간의 퇴적이 필요하다.

우리 부부 역시 수년을 드나든 뒤에야 비로소 그 완고한 문턱 안쪽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어느 날, 늘 얼음장 같던 사장님이 먼저 툭, 웃음 섞인 알은체를 건넸다.

"켈리 맥주 있는데…….”

냉장고 구석, 투명한 병들 사이에 낯선 황금빛 병들이 수줍게 자리하고 있었다.

2년 전, 우리가 지나가는 말로 던졌던 사소한 갈증을 그는 가슴 한구석에 금포처럼 쟁여두었던 모양이다.

오직 우리만을 위해 준비된 그 황금빛 병 앞에서 나는 이 도시가 지닌 지독한 다정함을 깨달았다.


마침내 ‘아구 내장 수육’이 테이블에 올랐다.

생색 한마디 없이 접시를 툭 밀어 넣고 돌아서는 손길이었지만, 그 무게는 남달랐다.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집어 올린 아구 간은 입술에 닿자마자 버터처럼 허물어지며 녹아내렸고, 위와 대창의 쫄깃한 식감은 통영 바다가 품은 가장 은밀한 속살을 씹는 듯했다.

그것은 인간이 가공한 맛이 아니라, 바다가 긴 세월 품어온 비밀을 한 점의 고기로 치환해낸 성찬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설 무렵, 사장님이 투박한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믹스커피 두 봉지를 탁자 위에 툭 던졌다.

“이거 묵어라. 뜨신 물은 정수기에 있다.”

다음에 또 오라는 인사도,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하지만 손바닥에 닿은 커피 봉지의 미온은 그 어떤 작별 인사보다 뜨겁게 살을 파고들었다.


가게 밖을 나서자 칼날 같은 겨울바람이 뺨을 스쳤다.

하지만 종이컵에서 피어오르는 김과 뱃속 깊이 갈무리된 아구의 온기 덕분에 마음만은 봄볕 드는 양지 같았다.

조금 느리고 투박하지만, 한 번 뜨거워지면 영원히 식지 않을 것 같은 온도.

나는 그날 비로소, 분칠하지 않은 통영의 진짜 온도를 온전히 맛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