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당의 다정한 답장
요즘 통영의 골목마다 비파나무 꽃이 한창이다.
벚꽃처럼 화려한 자태로 행인을 멈춰 세우지는 못하고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저 스쳐 갈 담백한 얼굴이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살구를 닮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기 시작하면, 나무는 비로소 행인들의 눈길을 낚아채고 입맛을 다시게 하는 탐욕스러운 유혹자가 된다.
6월 초, 바다 건너 망종(芒種)의 절기가 찾아오면 통영의 바람은 눅진한 소금기를 머금고 골목의 낮잠을 깨운다.
이 무렵의 비파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고집 센 초록을 내뿜는다.
가죽처럼 두툼하고 짙푸른 잎사귀들은 정오의 날카로운 햇살을 투과시키는 대신, 퉁기듯 밀어내며 제 몸을 지킨다.
잎 뒷면에 돋은 촘촘한 회백색 털들은 열기를 걸러내어, 그 아래 서늘하고 밀도 높은 '그늘의 영토'를 선포한다.
비파나무 아래 서면 공기의 결부터 달라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겹쳐진 잎들이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서걱거린다.
그것은 벽장에서 꺼낸 빛바랜 약봉지를 부스럭거리는 할머니의 손길 같기도 하고, 집안 어른이 나직하게 읊조리는 지나간 생의 기록 같기도 하다.
그 서늘한 그늘에 몸을 밀어 넣으면, 한낮의 소란은 금세 먼 나라의 일처럼 아득해지고 만다.
통영의 낡은 보도블록 한 귀퉁이, 느닷없이 서 있는 비파나무를 볼 때면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게 된다.
이 자리는 본래 누군가의 고즈넉한 안마당이었을 것이다.
약이 귀하고 병원이 멀던 시절, 어머니들은 마당가에 비파나무를 심어 집안의 명줄을 지켰다.
아이가 열이 나면 잎을 달여 먹이고, 가래가 끓으면 뿌리를 캤으며, 배가 아프면 노란 열매를 건네던 나무.
그것은 식물이 아니라 한 집안의 상비약이자, 말없는 수호신이었다.
이제 집은 흔적도 없이 헐리고 담벼락은 무너져 누구나 밟고 지나는 길바닥이 되었지만, 나무는 여전히 그 경계를 기억하며 뿌리를 뻗는다.
주인을 잃은 나무는 이제 만인의 것이 되어, 제 몸을 찢어 노란 열매를 토해낸다.
사라진 것은 집일 뿐이다.
누군가를 살리고 싶었던 그 지독한 마음은 뿌리 끝에 남아, 해마다 잊지 않고 노란 과육을 게워내고 있는 것이다.
동네에 마당이 딸린 작은 편의점이 하나 있다.
그곳엔 서너 그루의 비파나무가 황금빛 등불처럼 서서 6월의 밤을 밝힌다.
술 한잔에 하루의 고단함을 헹구고 돌아가는 이들이 하나둘 파라솔 아래로 모여든다.
캔맥주를 따는 ‘치익’ 소리로 밤의 문이 열린다.
안주는 따로 필요 없다.
머리 위로 손만 뻗으면 그만이다.
손바닥에 닿는 비파 열매의 솜털은 갓 태어난 짐승의 등을 쓰다듬는 것처럼 애틋하고 부드럽다.
얇은 껍질을 손톱 끝으로 누르면 톡 하고 터지며 말간 과즙이 배어 나온다.
옆 테이블의 낯선 이가 투박한 손으로 따온 노란 알을 내밀며 툭 던진다.
"이거 한번 드셔보이소. 올해는 비가 적당해서 아주 달아."
서로의 내력을 묻지 않은 채, 그들은 잘 익은 비파를 씹는다.
밤이 깊어갈수록 작은 ‘비파 페스타’가 열린다.
맥주 캔 부딪치는 소리와 낮게 깔린 웃음소리가 망종의 밤공기를 채우고, 사람들은 단단한 씨앗을 바닥에 뱉는다.
씨앗이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경쾌하고 단단한 타악기 소리.
그 소리가 잦아들 무렵, 누군가의 손바닥에는 과즙의 끈적하고 달콤한 흔적이 훈장처럼 남아 있다.
예전 그 마당에서 아이의 배앓이를 달랬듯, 비파나무는 지금도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허물어진 담장을 대신해 사람들의 고단한 마음을 가로막아 주며, 노란 위로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