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이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
나는 2020년 결혼하여 미국과 멕시코 칸쿤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뉴욕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전시를 본 뒤 칸쿤의 한 리조트에 누워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한국에 돌아오기 전 라스베이거스를 경유했다.
라스베이거스는 정말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환락의 도시여서 거리에는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언니들이 쇼를 볼 사람들을 모객하고 밤에는 근처 카지노가 불야성을 이루어서 암막 커튼 없이는 잠에 들기 어려웠다.
나와 아내도 호기심에 카지노에 들어가 적은 돈으로 슬롯머신을 돌려 보았는데, 운이 좋아서 카지노 사장님 돈으로 호텔의 뷔페도 즐길 수 있었다. 이 웹페이지 한구석을 빌려 팜스 카지노 사장님께 감사를 표한다.
슬롯머신은 재미있었다.
게임의 설계 자체가 재미있게 되어있다.
내가 가진 돈으로 불확실성을 구매하고 그에 대해 즉각적인 보상을 해 준다. 마치 즉석 복권 같은 느낌이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투자한 금액도 되지 않는 소액의 보상이지만 가끔 등장하는 화려한 이펙트를 가진 높은 배율의 보상과 쉬지 않고 돌아가는 Free spin을 보면 정말 하루 종일이라도 그 앞에 앉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를 때마다 도파민을 제공해 주는 버튼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위대한 발명이 아니겠는가.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나에게 유독 관대했던 슬롯머신 Phoenix 이야기를 아내와 종종 했다.
그 슬롯머신을 특히 좋아한 이유는 짜릿함 뿐만 아니라 높은 확률로 보상을 함께 제공해 주었기 때문인데, 나는 그 둘 모두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바다이야기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현실에서 비슷한 것을 찾고 싶은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레 주식을 해도 되는지 물어봤고 절대 집의 다른 재산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3천만 원을 얻을 수 있었다. 결혼 전 거의 전 재산을 투자했던 주식에 긴 시간 물려 있다가 운 좋게 탈출한 나를 아는 그녀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경제학 혹은 경영학에 대해 깊게 공부한 적이 없는 내게 도박과 주식은 굉장히 비슷했다. 유일한 차이점은 도파민이 슬롯의 회전 주기마다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주식 투자를 도박하듯 했다는 소리인데 많은 분들이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도박을 오래 즐기기 위해서라도 시장에서의 생존 전략을 수립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영어 원서를 포함한 수많은 가치투자 구루들이 쓴 주식 관련 도서들 어디에도 나와 어울리는 투자 방법은 없었다. (물론 영어를 핑계로 제대로 읽은 책이 없다.)
결국 찾아낸 것은 어떤 주식 블로거이자 유튜버가 쓴 테마주 매매법이었고 나는 그렇게 정파(正派)가 아닌 사파(邪派)의 길로 빠져들고 말았다.
테마주의 높은 변동성으로 인하여 큰 수익이 났을 때 손이 떨려 매도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못하는 경험도, 단 몇 분 만에 발생한 거대한 손실 앞에서 머리가 하얗게 되는 일도 처음 경험할 수 있었다. 위아래로 어지럽게 움직이는 호가창은 담이 약한 나에게 놀이공원의 다람쥐통처럼 현기증을 유발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겉으로 잘 티를 내지는 않지만 나름의 승부욕이 있는 나로서는 시장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살아남아서 내 가치를 증명하고 싶고 내게 돈을 내어준 아내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몇 번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 뒤에야 보수적이고 겁이 많은 나에게 맞는 투자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미 내가 가는 길을 앞서간 사람들이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내 일이 되기 전까지는 와닿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식은 결국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여기 아직도 아이 티를 벗지 못한 초보 투자자의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