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체니는 어떻게 기억/기록 되었나.
<바이스>는 미합중국 전 부통력 딕 체니에 대한 영화다. 딕 체니는 흥미롭다. 모두가 주목하는 권좌가 아닌 쉽게 바라볼 수 없는 그 뒷자리에 앉았던 인물이다. 동시에 바로 그 곳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은 남자였다.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
-부시 정부의 가장 강력한 부통령-
딕 체니는 타고나길 분별력이 좋았다. 자신에게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명백히 구분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드시 잡아챌 만큼 영민했다. 예일대학교를 중퇴하고 와이오밍 대학에 입학해 해당 지역 주 상원 입법부에 겸입 입법 교생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불과 스물 네살의 일이었다.
그의 부모는 민주당원이었지만 딕 체니는 공산당원이었다. 부모와 다른 정치성향을 가지게 된 이유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건 딕 체니가 엘리트 코스를 걸었으며 여러 공화당 지사들의 측근으로 일하다 도널드 럼즈벨트가 경제기획국장이 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인물로 활약했다는 점이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에는 백악관 수석을 지냈다. 위기도 있었다. 정치생활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껴 인생 첫 심근경색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다섯 번의 재선에 성공했다.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정부 시절에는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대부분 사람들이 걸프 전쟁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주요 업적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숨은 주도자는 딕 체니였다. 딕 체니는 1992년에는 정부를 떠나 민간 군사기업 핼리버튼 사의 CEO가 되었다.
이 많은 직업적 성취와, 가정의 안녕, 경제적인 풍요가 딕 체니에게는 있었다.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 그리고 수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의미로 귀감이 될 수 있는 정치인이었다.
한 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말이다.
-부통령, 딕 체니-
전화가 울렸다.
조지 워커 부시에게서 온 전화였다. 당시 조지 워커 부시는 2000년 대선을 준비하며 자신의 러닝 메이트로 수많은 정치 경험과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던 딕 체니를 원했다. 아버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정치 경험을 쌓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시야가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채우기에 딕 체니는 굉장히 매력적인 카드였다. 그는 딕 체니에게 러닝 메이트 대가로서 당선 시 부통력직을 제의했다.
딕 체니는 수화기를 들고 빠르게 계산했다. 부통력직은 단지 상징적인 직위인데다 별다른 권한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에 의해 권한이 추가될 수 있다. 딕 체니는 역제안, 즉 미끼를 던졌다.
"당신과 내 이해관계는 다릅니다. 당신은 직관적인 일을 하지만, 저는 좀 더 일반적인 일을 하죠"
"그것 참 좋네"
미끼를 물었다! 딕 체니는 부시에게 관료에 대한 감시, 군대 관리, 에너지와 외교정책에 대한 권리 등을 요구했다. 그렇게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쥔 남자가 되었다.
-당위보다는 철저한 이해에 기반한-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지면 스스로 몰락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그 힘을 철저히 계산하고 저울질해 손바닥 위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다. 딕 체니는 명백히 후자였다.
그에게 다른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미국적인 가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되려 그가 추진하는 정책은 ‘정의’나 ‘미국적 가치’에 위배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을 국익과 연관지어 대중을 설득하고 현혹하는 데 탁월했고 법의 레이더망을 피해 다니는 것에 능숙했다. 자신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취할 수 있는 이득은 모두 챙겼다. 딕 체니는 타고난 ‘정치꾼‘ 이었던 것이다.
딕 체니는 하원의장 시절 절대적 사유재산인정과 개인주의, 납세 반대 등 극단적 자유주의자의 행보를 걸어왔다. 법에 어긋나지 않거나 법망만 피할 수 있다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일관했다. 때문에 현재까지 언론을 통해 네오콘(극단적 자유주의자)이자 부시 정권의 후견인, 그리고 정권유착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로 평가된다.
세계무역센터 테러(9.11테러)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건 발발 즉시 변호사와 상담해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계산했다. 극 중에서는 이를 표현하는 장면으로 부시가 체니에게 은밀히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 뒤 부시 정부는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이 이라크의 무장세력과 결탁해 테러를 일으켰으며 미국과 연합군이 이라크를 침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노의 대상이 필요했던 미국 국민들에게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로 파생되는 군수업체에게서 받는 이익은 모두 챙겼다.
-기록과 기억의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에 대해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화씨 9/11>는 9.11테러에 대해 음모론의 태도로 다가가 연역적인 방법으로 당시의 내막을 파헤친다.
<화씨 9/11>은 단순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이의를 제기하고 선후관계와 인과관계를 맞춰가며 9.11테러 이전과 이후 부시 당시 대통령의 행보를 다룬다. <바이스>는 딕 체니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었으며 부시 부자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묘사한다. 이에 공화당원은 딕 체니의 이미지를 이기적으로 묘사했다고 영화를 혹평할테고, 민주당원은 딕 체니의 역겨운 자기 변명을 영화 속에서 보았다고 영화를 평가할 것이다.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건 기록일까, 기억일까. 그에 대한 기록이 기억을 낳을까. 반대로 기억이 기록을 만들까. 이에 선후,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스>는 시각적으로는 딕 체니의 영민한 정치감각을, 청각적으로는 경탄할만한 자기 변명을 보여준다. 나에게 딕 체니는 자기 변명으로 가득찬 정치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일간, 이라 해놓고 이틀만에 글 올리네요. 주말에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