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준한] 영겁의 갈증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 묘사하는 사랑의 모습

by 이준한

행복을 추구하는 건 동물적인 본능이다. 그러나 그 본능을 넘어 갈망하고 이를 어떻게든 외부에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회 분위기를, 나는 너무 싫어한다. 이를 회피하려 일종의 반골기질로 에스엔에스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가끔 자신의 행복을 외부에 자랑하는 이들과 거기에 더해 이 역시 부족하다고 어필하는 사람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대체 저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행복을 내세우며 갈망하는 걸까. 행복해지기 위해 저런 일까지 해야 했던 걸까,라는 고민에 다다르게 되면 절로 피곤해져 생각을 접는다.


나 역시 행복을 갈망했던 적이 있었다. 말했잖아, 동물적인 본능이라고. 20대 초반에는 영화를 보는 것이 행복해서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일용직을 뛰어 어떻게든 한 편의 영화와 먹거리를 즐길 돈을 마련했다. 20대 중반에는 4년제 대학교만 가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고 대학교 편입을 위해 여름방학에 하루 4시간만 잠을 자고 공장 청소를 하면서 영어단어를 외웠다.


원하던 편입을 했지만 행복 참 쉽지 않더라. 3학년으로 편입한 대학교에서는 적응에 실패했다. 불행하기보다는, 불안했다. 고시원에 살면서 매일 학교가 끝나면 고깃집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기름기를 닦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 후로는 행복이 아니라 생존이 문제였다. 사람을 만나야 했다. 2학기가 되자마자 개강총회에 달려가 영화제작팀으로 들어갔다. 이 선택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라 기대했지만 나는 고시원에 기생하는 영화광 대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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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에 대해서-

아르바이트를 다녀와서 노트북을 열었다. 영화제작팀의 감독이 회의에서 강조했던 레퍼런스 영화들 리스트를 훑었다. 본 영화들과 아직 못 본 영화들이 뒤섞인 리스트 속에서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했다. 여기서 약간의 TMI. 나는 감독이나 배우의 필모그래피와 상관없이 스틸 컷이 매력 있는 영화를 고르는 버릇이 있었다. 그때 내가 고른 영화는 짐 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였다.


다섯 대의 카메라가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사람들을 찍는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는데 이 테이크의 짤은 호흡이 열한 번 이어진다. 이 이상한 영화에 몰입됐다. 별 다른 의미 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괴상한 템포 앞에서 당시 비흡연자였던 나조차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싶은 충동이 들어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짐 자무쉬 감독에게 매료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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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80년대 미국 인디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기록되고 있다. 나는 짐 자무쉬가 가진 능력에 비해 겸손했던 남자로 기억한다. 그를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시대를 공유했던 감독들과 비교하는 건 별 다른 의미가 없다. 이를테면 조지 루카스나 스티븐 스필버그같이. 그는 미국보다 유럽에서 인지도가 더 높았고 가치를 인정받았다.


왜일까. 나는 그의 다재다능함이 영화에 녹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영화뿐 아니라 음악에도 재능이 있었다. 청소년기에 록밴드에서 활동했던 그는 <고스트독>(1999)에 RZA 힙합을 믹스해 사운드 트랙으로 삽입하기도 했다. 그 음악적 관심과 재능이 가장 돋보였던 건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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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는 톰 히들스턴이 나온다. 매력적인 배우다. MCU의 록키를 통한 특유의 유머와 창백함마저 그에게는 마력으로 표현된다. 이 영화에서 그는 그 창백함을 이어가 수천 년을 살아온 뱀파이어 뮤지션 '아담'을 연기한다. 그러나 아담을 이끌고 그들 삶의 당위를 찾아내는 건 틸다 스윈턴이 연기하는 '이브'다.


신기한 배우다. 성별을 분별하기 힘든 특유의 분위기, 작품바다 변하는 눈빛과 어조는 이 배우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울릴지 고민하게 한다. 매력을 넘어 고혹적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비정상적으로 큰 동공을 내내 보여주는데, 그녀보다 더 뱀파이어 백작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마치 성격에서 모티브를 딴 것처럼, 아담과 이브는 수십 세기를 살아왔다. 소크라테스부터 기타리스트 잭 화이트까지 친분을 쌓아왔다. 그들은 인간을 '좀비'라고 부른다. 아담은 그들에게서 염증을 느끼고 불쾌함을 표출한다. 하지만 어쨌든 같이 살아야 하는 이 공동체 속에서 아담을 진정시키기 위해 연인 이브가 그의 곁을 지킨다. 행복한 나날이 이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이브의 동생 에바가 그들 꿈에 나타나고 아담은 87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불안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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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는 수십 세기를 살아오며 현대에도 적응했다. 이브는 아이폰을 사용하고 정체를 감추기 위해 다양한 국적의 여권과 이름을 사용한다. 아담은 아예 뮤지션으로 경제활동을 이어나간다. 흡혈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흡혈은 구식이다. 대신 피를 사서 마신다. 뱀파이어란 수식어를 제외하곤 그들도 아담이 '좀비'라 부르는 인간들과 다르지 않다. 밤낮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이브에 비해 아담의 물건과 악기의 시간대는 1970년대 이전에 멈춰있다. 그의 기타는 영화에서 거의 홈쇼핑처럼 소개된다. 수포로, 핵스트롬, 실버스톤, 그레치 등 1960년대에서 70년대 제작된 기타들부터 하다못해 1905년 산 깁슨 L2까지. 나는 이 장면들이 짐 자무쉬가 자신의 음악적 관심을 자랑한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오락거리가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 피를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담과 이브는 거의 죽어가던 상황에서 어느 커플을 발견한다. 그들처럼 사랑스러운 커플이다. 그들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커플을 흡혈한다.


타인에 대한 착취를 전제로 보존되는 누군가의 행복이란 얼마나 불안정할까.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제목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역설적이며 다소 자기 방어적이다. 애당초 아담과 이브가 피를 구매해서 마신 것은 그들이 뱀파이어로서의 폭력성을 버려서가 아니었다. 그저 스타일의 문제였던 것이다. 폭력과 갈취, 협박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들 뱀파이어의 본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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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이 영화의 제목을 아담과 이브가 내뱉는 자기변명으로 결론지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우리들은 흡혈을 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는 누군가를 흡혈해야만 했다는 논리.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논리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사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마냥 뱀파이어의 논리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게 되었다.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식당출입을 막는 어느 커플의 고함이나, 동성애 커플에게 키스를 강권한 뒤 그들이 거부하자 행사된 폭행. 이 모두 자신들의 행복을 우선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나도 그들과 같이 이기적으로 굴었어야 했을까. 이 글을 썼을 당시에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지금도 역시 그렇다.



원본 :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544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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