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준한] 어른스러움

책임의 범위에서 나오는 어른스러움

by 이준한

어른스러운 태도란 뭘까. 서른이 되고도 두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고민 중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성숙함을 자랑한다. 자신의 물질적인 풍요와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를 설명한다. 하지만 고난의 극복이 어른스러움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 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른스러움은 어떻게 함양되는 것일까. 사랑으로? 희생으로? 이에 대해 알렉산더 페인의 <디센던트>를 꺼내볼 필요가 있다. 카우이 하트 헤밍스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 소설도 재밌지만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에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디센던트>는 돈과 명예, 지식과 뜨거움 또는 진정성 따위가 어른스러움의 조건이 아님을 관객에게 설파한다. 되려 관조와 배려, 차분함과 참을성이 배어있는 자세를 갖춘다. 그리고 미처 준비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을 향해 악수를 건넨다.

IE002521470_STD.jpg <어바웃 슈미트> 속 잭 니콜슨

-영화 줄거리-

<디센던트>는 감독의 전작 <어바웃 슈미트>에서 아버지의 꼬장과 허세를 벗겨낸 버전의 영화다. <디센던트>에는 조지 클루니가 변호사 맷을 연기한다. <어바웃 슈미트>에는 잭 니콜슨이 은퇴한 보험 설계사 슈미트를 연기한다. 두 사람 모두 아내를 잃었거나 잃기 직전이며 자식과의 관계가 망가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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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요트사고를 당했다. 더 이상의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맷은 아내의 병간호를 함과 동시에 자식들도 돌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둘째 스코티는 계속 엉뚱한 행동을 하고 사립학교에 다니는 알렉산드리아는 자신을 돌보지 않은 아빠와 바람을 피운 엄마를 원망하고 있다.


맷 역시 아내가 바람을 피웠던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그 역시 변호사와 신탁 관리인으로 일하며 가정에 소홀했던 점을 수긍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내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내의 장례식이 다가오자 그녀가 바람을 피웠던 작자를 찾아가 장례식 참여를 권유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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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페인의 영화에 등장했던 남자들과 맷은 사뭇 다르다. <어바웃 슈미트>와 <사이드 웨이>, <일렉션>에 등장했던 남자들은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고 매번 소란스러운 루저로 그려진다. 반면 맷은 매우 차분하다. 위독한 아내를 앞에 두고 벌벌 떨며 주저 않기보다는 옆에서 엄마에 대한 감정 탓에 혼란스러워하는 알렉산드리아에게 차분히 속삭인다. "엄마는 못 깨어난대. 확실하게. 그러니 보내줘야 해"


그는 냉정한 남자인가. 아니다. 이제 10살인 둘째 스코티에게는 엄마가 단지 '오래 잠을 자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과 가족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어떻게 해야 이 혼란 속에서 가족을 보호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영민하게 결정을 내린다. 혼란을 제어하지 못해 고함을 지르며 울부짖거나 흐느끼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관객에게 굳건함과 믿음, 신뢰를 주는 이유는 맷의 그 태도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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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는 어른스러운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한 장면 때문이다. 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모르는 맷의 장인어른은 영화에 등장할 때마다 맷을 질타한다. 딸의 죽음이 맷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맷이 딸을 방치했기 때문에, 더 좋은 요트를 사주지 않았기 때문에, 쇼핑을 다녀올 만큼 넉넉한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 딸이 저기 누워 있다고 비난한다. "헌신적인 아내였는데, 더 잘해줬었어야지!" 맷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한다. "맞아요. 더 잘해줬어야 했어요"


<디센던트>는 일에 치이고 아내의 바람에 충격 먹은 남자가 불륜 대상을 찾아 도끼를 휘두르고 총을 난사하는 영화가 아니다. 아내의 불륜을 묵인하고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보다는 아내의 뒤처리를 묵묵히 처리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슬프고 황량한 자신의 감정은 아내와 단 둘이 있을 때에만 조용히 흘려버리는 이 남자의 뒷모습에서 책임감의 범위와 그것이 의미하는 어른스러움을 느껴보자.


"안녕 엘리자베스. 안녕 내 사랑. 내 친구. 내 고통. 내 기쁨. 안녕 안녕 안녕."


원본 :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553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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