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바르셀로나 여행: In Transit

양말을 벗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by 꿈 공작소

바르셀로나로 향한 비행이 시작되고 안정을 찾아가니 배가 고파왔다. 아침에 여행에서 다녀오면 버려질 운명에 처한 달걀을 먹고, 필라델피아 비행 중 나누어준 쿠키를 하나 받아먹은 것이 오늘 먹은 것의 전부. 배가 고플 만도 했다. 비행기의 고도가 어느 정도 정상화가 되자 마침내 첫 기내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음식은 파스타와 닭고기 요리가 있다는데 짱구언니가 하나씩 시켜?라고 묻는다. 얏! 오늘 첫 끼인데 무조건 고기야. 닭고기 시켜. 짱구언니도 배가 고팠던지 오물오물 엄청 잘 먹는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이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그러면서 뱉는 귀여운 말. ‘오, 이것 맛있는데?’ ㅋㅋ 거 봐. 이 오빠야 말만 잘 들으면 이렇게 자다가도 닭고기가 나온단다.

IMG_E0373.JPG?type=w966 첫 끼. 인도식 닭고기 요리였는데 보기하고 다르게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었을까?

민생고를 해결했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자야 한다. 그래야 바르셀로나에 아침에 도착해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다. 눈을 감고 과연 레드 아이 비행 (야간 비행)이 효율적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공항에서 만났던 아줌마가 했던 것처럼 대박이 나서 은퇴를 하고 문제없이 일등석을 타고 다니지 않는 한, 좌석이 좁아 편하게 잠을 자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작은 공간에 수없이 구겨 넣어봐도 제대로 된 스위트 스팟 (가장 효율적인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몸이 피곤해지면 정신 상태마저 피폐해져서 여행의 퀄리티가 심히 떨어진다. 나야 여행에 나서면 초인적인 정신적을 발휘하는 인간 승리를 이룰 수 있지만 카탈레나 짱구언니는 상황이 다르다. 몸이 피곤하면 불만이 올라와서 신체 한 부분에 막대기를 꽂고 다니듯 얼굴이 근엄해진다. 맛있는 식당에 데리고 가도 입맛이 없다고 징징댈 것이 뻔하고, 예쁜 장소에 데리고 가도 시큰둥할 것이 너무 안 봐도 비디오이기에 아무리 스케줄 짜기에는 완벽하다고 해도 레드 아이 플라이트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도 하루를 버는데… 다음 여행 기회가 돌아오면 오늘의 고생을 금세 잊고 또 티켓팅을 하겠지?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것이 참 다행이다.


이제는 진짜 자야 하는데 뭔가 계속 거슬린다. 기내에 에어컨을 엄청나게 켠 상태라 추워서 그런가? 하며 가려도 작은 담요로 다 가려지지 않는 덩어리를 최대한 감싸느라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했다. 절대로 감싸지지 않는 덩어리의 부피. 어쩔 수 없이 여분으로 있는 담요까지 동원해 몸을 이등분해 덮었다. 따뜻한 열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뭔가 이상하다. 이렇게 마음이 편치 않으면 절대로 잠을 잘 수 없는 더러운 성향을 소유했기에 정자세를 하고 불편함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 이빨을 닦지 않았구나. 모두가 잠이 든 시간이라 화장실 가기 위한 눈치 게임을 할 필요도 없이 1을 외치고 문제를 쉽게 해결했다.


IMG_E0375.JPG?type=w966 아침일까? 간식일까?

이제는 진짜 자야지. 다시 자리에 앉아 덩어리를 감싸고 자리를 잡았는데도 뭔가 또 이상하다. 이번에는 이유가 뭘까? 다시 분석을 해보니… 아! 양말을 신고 있구나. 양말을 벗었다. 해방감에 취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지금 이 상태라면 새우잠이기는 하지만 한숨 잘 수 있겠다.


눈을 감고 잘 준비를 하는데 양말에 관한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 삼 남매는 실내에 들어오면 실내 온도와 상관없이 무조건 양말부터 벗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생전에 우리가 집에 돌아오면 우리의 양말부터 따라다니며 벗기셨다. 다른 일에는 굉장히 무심한 것처럼 표현도 안 하는 양반이었는데 양말에 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여름에는 양말을 벗고 마룻바닥을 걸으면 시원하기라도 하니 괜찮은데 겨울이 돌아오면 이게 엄청나게 곤욕스러운 일이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양옥집은 현대식으로 짓는다고 해서 거실에는 온돌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기름보일러를 때서 물을 끓여 공기를 데우는 라디에이터가 두 개 있었는데 거의 장식용에 가까웠다. 기름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한파가 몰려와도 보일러를 켜서 라디에이터를 사용하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덕분에 겨울 거실의 온도는 바깥 온도와 맞먹는 수준이었고, 마룻바닥의 느낌은 빙판을 맨발로 뛰는 것을 방불케 했다. 행여 안방 온돌에 모여서 놀다가 부엌에 물이라도 뜨러 가야 하면 마루를 건너가는 것은 거의 벌칙 수준이었다. 최대한 발이 마룻바닥에 닿는 면적을 줄이고 빨리 뛰어서 부엌에 갔다가 임무를 수행하고 방으로 돌아와야 하는 미션인데 성경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다고 했던가? 대결을 해볼 수는 없지만 우리가 마루를 가로지르는 스피드라면 우리는 물 위를 걷는 수준이 아니라 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겨울이 와도 양말을 신고 실내공간에 있을 수 없고, 발의 피부는 찬데 발의 내부는 뜨거운 감자 같은 이상한 현상을 경험하며 이불 밖으로 발을 내어 놓아야만 잠을 잘 수 있도록 단련되었다. 아니 사육되었다. 대체 왜 그렇게 양말에 집착을 하셨는지 아버지께 여쭈어 보고 싶지만 천상 그 질문은 내가 천국에 간 다음에나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다.


네 시간 후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도착해서 좀비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이 고생 끝에 만날 바르셀로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기대감을 벗 삼아 잠을 청해본다.

IMG_E0376.JPG?type=w966 졸다 깨어보니 스페인 상공을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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