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는 언제 가?
공항에 도착을 하고 보니 중학교 아이들이 필라델피아로 수학여행을 가는 모양이다. 우아. 정신없어. 애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시끄럽게 하는 아이가 한 둘만 있어도 정신이 없는데… 5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동시에 떠드니 이건 뭐…. 완전 시장통이다.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영혼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다. 그 시끄러움을 뒤로하고 필라델피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섯 시간의 평화.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전자책을 읽기도 하고 검은 고양이가 주인공인 영화 Flow도 감상하는 여유를 부려본다.
헐레벌떡. 필라델피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필라델피아 공항에서 바르셀로나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5분. 처음 와보는 공항을 제대로 구경할 시간도 없다. 게다가 우리는 터미널 C에 내려 터미널 A 끝까지 가야 한다. 구 선생은 거리가 0.6마일 (966미터 남짓)이라고 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 씩씩한 짱구언니는 오늘도 앞장을 선다. 동서남북을 분간하지 못해 길치면서도 저렇게 당당하게 사람을 인도한다. '또 시작이다...' 싶었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다. 대체 어디서 저런 용기가 나오는지 알 수 없지만 저런 리더십은 어쩌면 재능일 수도 있다.
다행히 커다란 변수 없이 무사히 게이트에 도착을 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바르셀로나에 가려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비행기 기종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좌석을 마구 섞어 놓은 것이다. 우리는 웃돈을 주고 창가 자리와 통로 자리를 예약해 놓았는데 변경된 좌석에는 둘 다 마주 보는 통로 자리로 바뀐 상태. 짱구언니의 재빠른 대처로 같은 줄에 창가와 통로에 앉을 수 있도록 표를 앱을 이용해 바꾸었는데 멍청한 앱은 자꾸만 예전 좌석에 집착한다. 전자 탑승권을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받아도 무슨 낙인이 찍힌 것처럼 예전 번호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창구에 가서 탑승권을 인쇄해 받았다. AI다 뭐다 아직까지는 소리만 요란하지 사람이 개입해야 문제가 완전해 해결되는 것을 보면 겁쟁이들이 떠드는 것처럼 기계가 우리 문명을 정복할 날은 내가 살아있는 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오늘도 역시나 가장 인기 있는 인기템은 가방에 달린 플래그 배지. 금속으로 된 플래그 배지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 성분이 포함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아까부터 뒤에 서있던 아주머니가 계속 입이 근질거렸는지 자꾸만 우리에게 말을 걸려 한다.
'Hello.'
'Hi!'
'Wow! Look at all these badges! Are these for all countries that you traveled?'
'Yes.'
귀찮아서 단답형으로 말을 받아 주었더니 이 아주머니 방언이 터졌다. 그리 알고 싶지도 않은 자기가 바르셀로나를 가는 이유에서부터 자기를 데리고 가는 친구 소개까지 모든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만 했다.
방언이 터졌으니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해 주기 전까지는 계속 괴롭힐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플래그 배지에 대한 설명을 좀 해주었다. 내 왼쪽에 달린 배지들은 미국 50개 주중 다녀온 31개 주를 나타내고 오른쪽에 달린 배지들은 지금껏 방문한 해외 국가들을 대표한다고 했더니 우리더러 혹시 은퇴를 했냐고 묻는다. 우리가 벌써 은퇴를 했다면 내가 성공을 했다는 가정을 해야 하니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갑자기 응? 우리가 은퇴가 가능할 정도로 나이가 들어 보이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짱구언니의 뒷모습을 보면 20대 후반으로 보이니 그런 오해를 사지 않을 것 같고. 엄지손가락을 닮은 몸매에 이제는 흰머리가 지분을 꽤 차지하고 있는 나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한 것 같은데… 아, 마상.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면 반드시 염색을 해야 할 것 같다.
대범하면서도 대범하지 못한 나는 그 생각을 비행기를 탈 때까지 곱씹고 있었다. 마침내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비행기에 오르고 보니 중간 자리는 비어 가게 생겼다. 짱구언니의 기지를 마구 칭찬해 주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꿀꿀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동부는 날씨가 좀 구렸던 모양이다. 전날은 토네이도도 오고 기상 상태가 꽝이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비행기 연결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연착을 하는 바람에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을 비행기에 앉아 한 시간 기다려 주어야만 했다. 자사 비행기가 연착을 했기에 기다려주는 미덕을 보여주었지 다른 항공사 비행기를 타고 왔다면 얄짤없이 문을 닫고 반쯤 빈 비행기로 출발을 했을 것이다. 마지막 승객이 우리와 같은 동선으로 카트까지 타고 등장했고 이제 바르셀로나로 출발한다. 이제 여덟 시간이라는 비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