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바르셀로나 여행: FC 바르셀로나 직관

FC 바르셀로나와 시차의 한판 승부

by 꿈 공작소

아무리 생각해 봐도 FC 바르셀로나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사람은 파워 P가 분명하다.


3월 초에 바르셀로나 여행 계획을 마무리했지만, 머리 위에 떠다니는 먹구름처럼 신경이 쓰이는 일정이 하나 있었다. 바로 FC 바르셀로나의 경기 직관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경기 날짜와 시간을 딱 정하지 않고 “토요일이나 일요일 경기 예정, 시간 추후 통보”라는 말만 계속 홈페이지에 떠 있었다.


빨리 표를 사고 복습을 시작해야 직성이 풀리는 파워 J인 나에게 이 일정은 첫날 계획 속 깨끗한 화장실에 이빨 빠진 타일처럼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두 달을 마음 졸이며 보내다가, 스포츠 티켓 사이트에서 일제히 ‘일요일 경기 확정’이라는 발표가 났고, 그 즉시 표를 질렀다. 그런데 FC 바르셀로나는 내가 비행기를 타는 날까지도 경기 시간을 확인해 주지 않았다. 정말,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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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FC 바르셀로나 경기를 보러 가는 날이 왔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지 팬보다 외국인이 훨씬 더 많았다는 것. 홈팀 경기라기보다는 관광지 콘서트를 보러 온 느낌에 가까웠다. 아이들과 가족,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경기장으로 향하는 모습은 다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듯했고, 꽤 가파른 몬주익 언덕을 오르는데도 모두의 발걸음은 엄청나게 가벼워 보였다.


잠깐 FC 바르셀로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 클럽은 1899년 스위스인 조안 감퍼에 의해 창단되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거쳐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그간 거쳐간 선수들 중에는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도 이름은 들어봤을 마라도나와 메시가 있다. 또 이 클럽은 여느 유한회사 소속 구단과 달리 시민 자본으로 운영되는 시민 구단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특히 프랑코 정권 시절, 카탈루냐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존재했고, 내전 시기 시민들이 어려움을 버틸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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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은 약 9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Spotify Camp Nou’지만 현재는 내부 공사 중이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 경기장이었던 ‘Estadi Olímpic Lluís Companys’를 임시 홈으로 사용하고 있다. FC 바르셀로나 경기를 보러간다면 Camp Nou 경기장 한쪽 관중석에는 카탈루냐어로 "클럽 그 이상(MÉS QUE UN CLUB)"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것이 국룰인데... 이것을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현실은 받아들여야 하기에 그냥 경기장 직관 자체에 만족하기로 했다.


워낙 유명한 구단이니만큼 인파가 엄청날 것을 예상해 일찍 입장했다. 자리를 확인한 후, 짱구언니가 입을 바르셀로나 유니폼도 하나 구입하고 인증샷도 찍었다. 그 후 겁나게 맛없는 핫도그를 우거 거리며 시합 시작을 기다렸다. 기다렸다. 기……다……렸…… zzz.


여행 중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는데, 핫도그도 먹고 아무것도 안 하며 선수들 몸 푸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다 보니 갑자기 시차라는 문제가 몰려왔다. 아… 잠에는 장사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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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되려 하자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그런데 한 번 놓친 정신줄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카탈루냐의 혼이 담긴다는 시작 전 떼창은 뭉클했고, ‘내가 지금 FC 바르셀로나 경기를 직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지만… 감동보다 잠이 더 강했다. 경기장이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를 반복했고, 짱구언니가 옆구리를 계속 찔러도 효과가 없었다. 코만 골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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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과 싸우는 동안 바르셀로나는 비야레알 CF (Club de Fútbol)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FC 바르셀로나의 시즌 우승이 결정된 상태라 큰 의미 없는 경기였지만, 주전 선수들이 대부분 출전했다. 선수 보호보다는 팬 서비스 차원인 듯했다. 비야레알도 이미 시즌을 5등으로 마쳤지만,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오락가락한 정신 속에서도 느낀 점 하나는, 바르셀로나의 전방 압박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상대가 중앙선을 넘지 못할 정도로 전방부터 압박을 펼쳤다. 물론 그렇게 하다가 역습을 맞고 어이없이 한 골을 헌납하긴 했지만.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바르셀로나의 17세 유망주, 라민 야말(Lamine Yamal)이었다. 앞으로 큰 부상만 없다면 메시 이후 최고의 선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2024 UEFA 유로 우승 팀에서도 활약한 이 선수는 드리블 실력이 정말 대단했는데, 상체 페이크나 중심 잡아 상대 수비를 제치는 방식은 17살이라기엔 믿기 힘든 성숙함이 있었다. 그의 활약 덕분에 바르셀로나는 경기를 뒤집었고, 전반은 2 대 1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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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전을 보기 위해 몸을 스트레치 하는 순간, 짱구언니의 한 마디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이제 집에 가자.”

……야, 티켓값이 얼만데 전반만 보고 가냐?

궁색하게 반항해 봤지만, 직진형 인간 짱구언니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웃기시네. 전반전도 절반은 졸았거든? 넌 여기까지야.’

사형선고도 아니고… 나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축구장을 비척거리며 빠져나왔다.

그 와중에 귀에 들리는 응원가. 응? Sweet Caroline? 그냥 카탈루냐 음악 쓰지… 신토불이 모르나? 하긴, 이만큼 떼창하기 좋고 흥 돋우는 노래도 없긴 하지.


저녁은 동네 파에야 가게에서 1인분 포장으로 해결했다. 보통은 1인분을 안 해주는데, 셰프 아저씨가 투덜거리며 만들어주었다. 혹시 만들면서 침이라도 뱉나 싶어 매의 눈으로 지켜봤다. 그날 밤, 다음 날 동선을 확인하다가 노트북을 안은 채 그대로 잠들었다. 집 떠난 지 24시간 훌쩍 지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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