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바르셀로나 여행: 구엘 공원

모자이크처럼 반짝이는 구엘 공원

by 꿈 공작소


'어린이 여러분.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강한 어린이가 됩시다.'


9시 뉴스가 시작되기 전 어김없이 방송을 통해 나오던 멘트다. 하도 들어서 이 멘트만 나오면 잘 놀다가도 잠을 자러 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짱구언니가 집시들이 행하는 소매치기 괴담을 하도 들려주는 바람에 버스를 타고 졸려도 잠을 잘 수 없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찍어 누르고 사수해야만 했다.


개선문과 시우타데야 공원을 돌아보고 버스를 탄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구엘 파크 정문으로 왔다면 악명 높은 언덕을 올랐을 텐데 후문으로 입장을 하니 언덕을 오를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예약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입장도 가능하다네. ㅎㅎ 입구에서 기쁜 마음으로 공원 안으로 들어서던 순간, 옆에 서 있던 몇몇 관광객들의 실망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표 예매가 끝이 나서 더 이상 입장이 불가하다는 소리를 듣고 적잖이 실망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린다. 계획의 부재는 여행에서 곧 감정의 손실인데... 5분만 투자해 사전 정보를 알아보면 예약 필수 정도는 그냥 구할 수 있는 정보인데... 부디 그들에게 돌아올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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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가우디 박물관을 찾았다. 가우디가 22년이라는 세월 동안 살았던 곳이다. 스페인 최고의 건축가 소리를 들었고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과 추앙을 받는 그가 살던 건물치고는 소박했다. 그의 방은 작고 꼭 필요한 것만 놓여 있었고, 전체적으로 검소한 인상이었다. 박물관 전시관 중 하나에서는 가우디의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 중 잠시 짬을 내어 저녁 기도를 드리러 갔다가 노면전차에 치었던 그는 남루한 행색 때문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길가에 방치되어 있다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사흘이 지나고 나서야 친분이 있는 신부 한 사람이 기본 치료만 받은 가우디를 찾았으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며 그들로부터 치료받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입원한지 사흘 만에 사망했다. 천재 건축가의 마지막이라 하기에는 참 씁쓸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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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벗어나면 바로 세 개의 구름다리 (Viaduct-돌회랑이라고도 한다)중 하나인 중간 구름다리와 위쪽 구름다리를 만난다. 돌을 쌓아 만든 것이라 투박한 느낌은 있지만 시원한 그늘과 자연하고 조금은 분리된 안락한 공간을 선사한다. 하지만 촬영 포인트로 인기가 높아 사람을 구경하는 것인지 구름다리를 구경하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특히 동양 사람들끼리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눈치게임은 정말 치열하다. 서양인들은 건축물을 배경으로 인물 사진만 재빨리 찍고 건축물 구경에 더 집중하지만, 동양 사람들은 소위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사진을 찍고 또 찍고를 거듭한다. 건축물이나 자연보다 자기 사진에 관심이 더 많다. 작은 카메라 프레임 안에 웅장한 배경을 욱여넣으려는 노력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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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_8684.JPG?type=w966 듕귁 처자가 역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카메라에 욱여넣기 위해 캠핑을 하는 바람에 뒤에 서있던 사람들의 증오를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대충 사진을 찍고 Trias House를 보기 위해 언덕을 올랐다. 트리아스 집에 가기 전, 구엘 공원이 조성된 이유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구엘 공원은 기업가 에우세비 구엘이 고급 주택 도시를 만들 계획으로 가우디에게 의뢰한 프로젝트다. 하지만 카멜힐 (Carmel Hill)이라는 곳은 접근성도 나빴고, 인기도 없어 원래 계획한 60채의 택지 중 정작 2곳만 매매되었다. 그중 하나가 트리아스 집인데 트리아스는 구엘의 개인 변호사였고, 지금도 집은 트리아스 후손이 소유하고 있단다. 주택 도시인데 집은 별로 없고 가우디가 자기의 열정을 쏟아부은 정원과 조경 그리고 부대시설만 가득하다. 시간이 흘러 고급 주택 도시 건설에 실패를 깨달은 구엘의 후손들이 부지를 시에 기증했다. 그리고 시는 가우디와 구엘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구엘 공원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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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언니는 트리아스 집을 본 후, 곧장 과자집처럼 생긴 모자이크 장식이 된 구엘공원에서 유명한 건물들이 있는 광장으로 내려갈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 발길은 더 언덕 위에 있는 십자가 세 개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시 언덕을 오른다고 짱구언니가 죽을 상을 한다. 그래도 끝까지 가야 이 여행이 끝나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세 개의 십자가가 서있는 Ore Hill에 도착했다. 이곳은 원래 도시가 완공이 되면 교회를 지으려던 부지였다. 하지만 도시 계획이 무산되고 공터로 남아 있던 곳에 십자가 세 개를 만들어 넣어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신 골고다 언덕을 상징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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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한국 사람들이 타일 광장이라 부르는 Nature Square (자연 광장-Green Theatre라고도 함)을 찾아가야 한다. 나는 중간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동선을 택했는데, 짱구언니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그녀가 앞장서서 나를 이끌었다. Biodiversity Itinerary라 불리는 숲길을 지나 도착한 자연 광장. 지친 짱구언니는 그늘에 앉혀두고, 나 혼자 광장 옆 테라스를 구경했다.


역시 남의 돈으로 무엇을 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섬세한 건물의 디테일서부터 조경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쏟아부은 듯했다. ㅎㅎ 하긴 내 돈이 들어가는 것 아닌데 뭔들. 그를 믿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바르셀로나의 메디치라고 불리는 구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우디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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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벤치다.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나는 Josep M. Jujol이 설계한 타일 모자이크 벤치에 앉으면, 입구의 과자집 모양 건물과 멀리 보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한 프레임에 담긴다. 인기만큼 사람도 엄청 많다. 어렵게 빈 벤치를 하나 찾아 짱구언니 사진을 찍고 돌아서려는 찰나, 벤치에 앉아 엉엉 울고 있는 처자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 와서 왜 싸우고 울고 난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의 손에 모자이크보다 더 반짝이던 다이아 반지가 보였다. 아! 프러포즈 이벤트를 했구나. 남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축하해. 성공했어. 완벽한 이벤트였어.”


예상치 못한 감동적인 장면은 여행의 깊이와 풍성함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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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ostyle Hall (혹자는 신전이라고도 부르는데 공식 명칭은 다주식(多柱式) 방이다)을 가기 위해 들렀던 세탁하는 여인의 포르티코 (Portico)의 물결 모양 회랑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짱구언니도 프러포즈 이벤트에 덩달아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주변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기쁨의 스텝을 밟아 주었다. 그런데... 짱구언니 기쁨의 스텝 때문에 정작 세탁하는 여인 기둥은 보지 못했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하나를 하면 둘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편의상 '신전'이라 부를 방은 원래 시장을 염두에 두고 지은 공간이다. 지붕은 작은 돔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돔은 86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받치고 서있다. 천장은 역시 호세 마리아 주졸이 설계한 트렌카디스 (깨진 타일 모자이크) 양식의 원형 패널로 장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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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_8780.JPG?type=w966 경비실이 이렇게 예쁠 일인가?

이제는 구엘 공원 돌아보기를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되어간다. 구엘 공원의 마지막은 도마뱀 분수대와 카탈루냐 문장 앞에 조각된 용의 머리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방점을 찍었다. 원체 경쟁자가 많은 곳이라 사람이 없는 틈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도마뱀 분수대 사진에서는 아줌마 하나를 포샵으로 지워내야만 했다. 경비실로 사용하려고 지었다는 예쁜 건물은 기념품 가게로 사용이 되고 있기에 잠깐 들러 기념품을 몇 개 구입하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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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타데야 공원에서 출발해 점심을 먹는 것이 애매해서 지금까지 쫄쫄 굶고 있었는데 뭔가 먹기는 먹어야 할 것 같아 구엘 공원 근처의 식당을 찾았다. 보통 이렇게 관광 명소 근처에 있는 식당을 바가지 씌우는 Tourist Trap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이 시점에 함정에 빠진다고 해도 지금은 허기를 달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음식 맛은 보기보다 괜찮았고, 가격도 그 정도면 만족할 정도였다. 소매치기도 피했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지도 않았으며 공원의 돌아볼 곳을 다 돌아보고, 근처 식당에서 바가지를 쓰지도 않았으니 오늘 하루 성공적인 여행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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