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바르셀로나 여행: 카사 바트요

지중해 용왕님 집을 방문하다.

by 꿈 공작소

둥근 해가 떴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첫 여행 장소인 카사 바트요의 예약도 천천히 잡았다. 동네도 구경하며 괜찮은 분위기의 장소에서 아침을 챙겨 먹고, 천천히 걸어서 카사 바트요까지 가면 딱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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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아침을 먹을까 기웃거리던 중, 사람들이 연신 들락거리는 식당을 하나 발견했다. 가게의 이름은 어떻게 발음을 하는지 상상하기도 힘든 Txapela (자펠라로 발음한다). 바스크 스타일 (Basque Style) 타파스 식당이라고 한다. 바스크는 프랑스와 스페인 접경 지역에 있는 프랑스 색채가 강한 곳이다. 아, 그래서 창업주 사진에 할아버지가 프랑스 빵떡 모자를 쓰고 있었구나. 음식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가격이었다. 미국에서 먹으면 한 사람 가격도 안되는 비용이었다. 이렇게 가성비 좋은 식사를 하면 하루가 잘 풀릴 것 같은 근거 없는 기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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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 Amatller vs. Casa Batllo

아침 식사 후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바르셀로나의 가장 부요한 거리라는 그라시아 (Pg. de Gràcia)를 누려본다.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동안 꽤 괜찮은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카사 바트요 건물 앞에 서는 순간, 우리가 스쳐 지나온 Casa Amatller를 포함한 다른 건물들은 그저 괜찮은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일단 카사 바트요는 다른 평면적인 건물과 다르게 입체적이다. 화려한 타일로 수를 놓은 외벽 (혹자는 가우디가 모네의 수련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은 다른 건물과 비슷하다 하더라도 발코니와 테라스가 앞으로 튀어나와 있어 그 아름다움이 가히 독보적이다. 특별한 입체감을 주는 카사 바트요의 발코니와 테라스 그리고 기둥은 뼈를 연상하게 하기에 카사 바트요는 '뼈의 집'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15727788039978.jpg?type=w966 용모양의 지붕 출처: 와그

특이하게 외벽이 뼈와 해골의 모양을 하고 있는 이유는 지붕에 장식된 용 때문이다. 화려한 타일로 장식이 된 용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유골을 표현했다는 것이 설명이다. 또 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의 은유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지붕의 용은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인 성 조르지와 싸움을 하다가 성 조르지가 던진 칼 (십자가 기둥)이 등을 관통해 죽었다. 푸른 타일로 장식이 되어 있는 용의 등이 십자가 기둥 부분부터는 빨간색으로 바뀌어 용이 흘리는 피를 나타내는 것만 보아도 기존의 건축 양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건축 방법을 택한 가우디의 천재성과 상상력을 여실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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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 바트요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아름다운 건물 앞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도 예약 시간 10시에 맞추어 줄을 섰는데 앞에 한국에서 온 노부부가 서있었다.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듯 두 분이 다 연신 핸드폰을 만지며 안절부절못하고 계신다. 그들의 손놀림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여행 중에는 묻어 둔 또 다른 자아가 고개를 든다.


'어르신, 뭐가 잘못되었나요? 도와드릴까요?'


애써 미소를 지으면 괜찮다고, 지인이랑 만나서 함께 카사 바트요를 돌아보기로 했는데 연락이 안 된다며 걱정하지 말고 먼저 들어가라 하신다.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다른 뭔가를 해드릴 방법은 없어 우리만 먼저 입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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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역시 가우디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투어는 살짝 어두운 공간에 위치한 계단부터 시작되는데, 계단의 난간이 동물의 등뼈 모양이다. 카사 바트요는 단순한 무기 건축물이 아니라 생명력이 있는 유기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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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의뢰인은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요세프 바트요 카사노바 (Josep Batlló i Casanovas). 가우디의 건물들은 부자 의뢰인의 자본으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웬만한 부를 가지고 있지 않고는 가우디에게 감히 의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집도 가우디가 심혈을 기울여 허투루 만든 부분 없이 깨알 같은 디테일로 채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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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공기의 순환구조를 고려해 집을 설계해 실내가 밝고 쾌적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보았던 것처럼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에 가우디 고유의 직선이 빠진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문틀, 창틀, 장식 등이 눈에 띄었다. 특히 버섯 모양의 벽난로에서는 역시 가우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는 확실히 뭔가가 다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커다란 숲속에 있는 느낌이었다면 카사 바트요의 장식에는 비늘도 있고 물방울 모양 (거북이 등껍질)의 창문도 있는 것이 수족관에 와있거나 해양 동물의 뱃속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건축물 하나로 이런 다른 느낌을 선사할 수 있는 가우디야말로 천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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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요 가족이 쓰던 거실도 가우디의 천재성이 엿보인다. 커다란 곡선창을 통해 거리를 내다볼 수 있으며, 유리의 상단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집어넣어 해의 각도 변화에 따라 빛이 형형색색으로 흩어지도록 설계되었다. 천장은 나선형 소용돌이 모양으로 장식해 바다의 소용돌이나 공기의 흐름을 표현했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처럼 뜨내기 여행객으로 이곳을 방문하면 가는 곳마다 우~~ 아~~ 감탄할 수 있지만 만약 이곳이 내가 거주하는 실생활 공간이라면 조금 피곤하지 않을까? 내 생각에는 집은 좀 단조롭고 심플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손잡이며 난간이며 모든 것을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한 친절함이 있다고 해도 그냥 주거지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화려했다. 아마 그래서 바트요의 부인 아밀리아는 가우디를 달가워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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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계속 이어져 뒤뜰을 돌아 응접실 같은 곳을 들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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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의 압권인 중앙 아트리움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아직도 사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푸른빛 타일로 장식된 채광정 (빛의 우물)이 나온다. 이곳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와 빛을 집 전체에 분배하는 구실을 한다. 이는 바르셀로나의 바다를 연장한 듯 바닷속에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타일의 상단은 진하고 하단은 연하고 밝은색을 사용해 빛의 분배와 바다의 깊이를 표현했고, 또 창문의 크기도 상단은 작게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크게 만들어 더 많은 빛을 받을 수 있게 설계했다. 창문이 하단 부분에는 나무로 된 셔터가 있어 통풍을 조절할 수 있는데 이는 물고기의 아가미에 착안했다. 자연의 미와 실용적인 결합은 가우디의 천재성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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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우디가 설계한 건물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특별한 지붕에 가야 할 차례인데... 어? 여기서 표를 검사해 사람을 가르네... 이런. 카사 바트요는 막대기 사탕 Chupa Chups를 만드는 the Bernat family의 사유지이다. 사유지이기에 당연히 입장료도 다른 곳에 비해 비싸고, 또 등급이 있어 가격이 다를 뿐만 아니라 입장할 수 있는 지역에 차별을 두었다. 티켓을 예매할 때 공부를 좀 더 하고 할 것을... 기본적인 것만 봐도 된다고 생각해 가장 기본 티켓을 구입했더니 아치가 아름다운 다락과 용의 등 타일을 볼 수 있는 지붕은 출입 금지라니...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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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럴 때는 빨리 포기하고 돌아서야 한다. 참 아름다운 건축물을 구경하고 이렇게 뒤끝이 씁쓸할 줄이야. 건물 밖으로 나오자, 평소에 여행 중 계획 같은 것은 없이 나만 졸졸 따라다니는 짱구언니가 갈 곳이 있다면서 따라오란다. 응? 무슨 다른 계획이 있구나 생각하며 짱구언니를 뒤를 쫄레쫄레 따라갔더니 그라시아 명품 거리에 있는 채널로 들어간다. 그리고 벌써 지름신이랑 작당을 다하고 왔으면서 스페인에서 뭔가를 사면 세금 공제를 받아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다는 둥의 궤변을 늘어놓는다. 내가 뭐라고 한다고 안 살 것도 아니면서. 떳떳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아무것도 안사면 그 돈이 다 굳고, 그 돈이면 카사 바트요 지붕을 열 번도 더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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