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바르셀로나 여행: 카탈루냐 음악당

카탈루냐 음악당-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날

by 꿈 공작소

카사 바트요의 지붕을 돌아보지 못한 탓일까? 여행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버렸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가우디의 머릿속을 AI로 구현했다는 영상을 틀어주는 공간이었는데, '영상 촬영 금지'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영상 시작 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영상 촬영을 하는 동양 아줌마가 있어 좀 불편했다. 우리는 그가 부디 한국 사람이 아니었길 빌고 또 빌었다.


밖으로 나와 짱구언니 자신만의 여행 계획인 명품점 돌아보기를 했는데도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뜬다. 시계를 보니 간밤에 우연히 알게 된 고딕 지역 맛집, Colom에 오픈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일단 목적지가 정해지면 태엽을 감아 놓은 장난감 자동차처럼 직진밖에 할 줄 모르는 짱구언니. 축지법을 쓰듯 곧장 콜롬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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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 앞에 도착하니 정말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여행 중 오픈런이라는 것은 '맛집의 옆집'을 사랑하는 우리에게는 기념비적인 일이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메뉴를 공부하고 있는데 주인으로 보이는 동양 아저씨가 빗자루를 휘두르며 줄은 저쪽 벽을 따라서란다. 좀 친절하게 말을 해줘도 되는데, 누가 보면 내가 구걸을 하다가 쫓겨나는 줄 알겠다. 간밤에 공부한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집의 대표 메뉴는 국민음식인 토마토 빵, 감바스 그리고 파에야 정도였다. 물론 음식 리뷰라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10%도 신뢰하지 않지만 참고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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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에야는 무조건 2인분을 시켜야 하기에 이걸 시키면 다른 음식은 손도 못 대니 패스했고, 이집 대표 음식인 토마토 빵과 너무 맛이 있어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감바스를 시켰다 (설마 테이블도 작은데 죽어서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모를까). 거기에 너무 해양 동물만 먹는다는 불평을 감안해 치킨 윙을 하나 시키고 바르셀로나에 가면 꼭 먹고 싶었던 대구 요리를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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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곁들어져 나온 감자가 가장 맛있었다.

토스트도 돌덩이처럼 딱딱한 것을 좋아하는 짱구언니는 토마토 때문에 빵이 눅눅해졌다고 시큰둥했던 판 콘 토마테. 또 닭고기 요리도 우리는 최소한 버펄로 윙 내지는 교촌 치킨 정도의 소스가 범벅이 된 치킨을 예상했는데… 기름에 담백하게 튀긴 닭고기 고유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슴슴한 요리여서 우리의 예상을 빛나갔다. 우리나라 사람들(미국)이 음식을 얼마나 자극적으로 먹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뒤를 이어 감바스가 나왔는데… 엄청 기대를 했으나 역시나 '엉? 그냥 새운데? 그냥 새우를 기름에 말아온 것이잖아. 여기 사람들은 음식을 정말 심심하게 먹나 봐.' 했다는. 마지막 요리만이 이 가게의 맛집 타이틀을 수호할 수 있었는데... 우앗. 우리의 이야기를 셰프가 들었을까? 아니면 소금을 뿌리다 뚜껑에 열려 왕창 쏟았을까? 염장 대구를 먹는 것처럼 짰다. 그리고 난 바르셀로나에서 대구를 시키면 다 꿀 대구 (Bacalao al Ajol i Oli Mel)가 나오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완전히 맛집에게 배신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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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를 채우고 나서는 고딕 지역의 좁은 골목을 따라 걸었다. 굽이굽이 끝이 없이 이어진 골목길에 작은 상점들과 조우하며 걷는 길. 바르셀로나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골목 탐험일 것 같다. 그렇게 걷다가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불쑥 들어가 구경도 하고, 군것질거리가 있으면 발걸음을 멈추었다. 원래 성향대로라면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목표 지점을 향해 직진을 했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얻는 지혜 중 하나가 이렇게 여유를 누릴 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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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누비다 만나는 건물은 카탈루냐 음악당 (Palau de la Música Catalana)이다. 궁전이라는 엄청난 이름이 붙어 있어 엄청나게 클 것을 예상했지만 예상보다는 작았다. 1905년에서 1908년에 걸쳐 지어진 건물은 합창단의 공연을 위해 지어진 건물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원인 산파우 병원 (Hospital de la Santa Creu i Sant Pau)을 설계한 카탈루냐 모더니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도메네트 이 몬타네르 (Lluís Domènech i Montaner)의 작품이다. 이 건물 역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콘서트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카탈루냐의 정체성과 예술적 부흥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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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스페인은 이슬람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파사드는 스페인과 이슬람 양식의 중간쯤 위치해 있었다. 또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바흐, 베토벤, 그리고 바그너의 흉상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도 반가웠다.


바깥의 화려한 파사드에 비해 현관과 계단은 소박했다. 우리가 자꾸 파리에 있는 팔레 가르니에와 비교를 해서 그렇다. 똑같은 대리석 계단이지만 규모가 훨씬 작아 아기자기했고, 화려한 금장식 대신 타일로 장식을 했다. 고급스러운 느낌보다는 타일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주는 다채로운 색감이 돋보였다.

DSC_8927.JPG?type=w966 엇? 앞으로는 무릎을 꿇고 사진을 찍을게... 지못미.

인스타그램 촬영지로 유명한 포이어에 나가봤다. 역시 인기가 있는 곳이라 인스타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선점하고 있어 한참을 기다려서야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너무 오래 기다렸는지... 그때가 되었을 때는 벌써 지쳐 있었다. 그래도 기둥의 세라믹 꽃 장식이 참 예뻤는데 사진을 좀 더 정성을 다해 찍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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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콘서트홀의 천장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압도적이었다. 태양과 하늘을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목이 아플 정도로 올려다보아도 아깝지 않았다. 창문들도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져 자연 채광을 받아 콘서트홀을 빛냈다. 유럽에서 낮 동안 자연광으로 조명이 가능한 유일한 콘서트홀이라 하더니 소문이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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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과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전등과 조각들도 멋짐의 한도를 초과하고 있었다. 매년 50만 명의 방문자가 방문하는 곳인데 보통 교향악 연주회와 카탈루냐 전통가요인 칸소 (Cançó) 공연을 볼 수 있다.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아 주문을 걸었다. 연주를 한 번만 듣고 싶다. 누가 연주를 하든 무슨 연주를 하든 상관이 없으니 짧게라도 이 아름다운 곳에서 연주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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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이 통했을까? 그 순간 마치 응답이라도 하듯 도센트를 따라 투어 그룹이 하나 들어왔다. 그들이 무대로 오르더니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음악당에서 비록 녹음된 연주지만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듣는 기쁨 그 자체로 취해버렸다. 아름다운 음악당 방문의 아름다운 방점을 찍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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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분 좋게 감상까지 마치고 나서려는 찰나... 한국 여행객들이 들어오더니 넓은 빈자리를 남겨두고 굳이 짱구언니 앞으로 밀치듯 지나간다. 이럴 때 작은 배려가 참 아쉽다. 다른 사람의 시야를 가리거나 좁은 공간에서 앞으로 지나가야 할 때는 Excuse me, 이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그리 어렵지도 않은 영어인데. 괜히 씁쓸했다.


이날은 감정의 롤러코스터 탄 것 같았다. 맛집의 배신에 실망했다가, 아름다운 음악당과 연주에 반했다가, 다시 무례한 한국인 때문에 기분이 가라앉았다가, 마지막 호텔로 돌아가는 골목길 정취에 다시 회복되었다. 무슨 조울증 환자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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