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덫? 즐거움은 가득한 보케리아 시장
오늘 낮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좀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골목길을 헤집고 다닌다. 이제는 바르셀로나의 골목길에 제법 익숙해져서 헤맨다거나 두렵거나 하지 않다. 오히려 동네 골목길을 걷는 것처럼 편안하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종교단체 퍼레이드. 북 치고 장구(?) 치며 살랑살랑 춤을 추며 지나가는데 꽤 흥미로웠다. 여행 중 만나는 이런 예상치 않았던 재미는 여행의 질을 한 단계 높여준다. 무희 중 한 사람은 우리가 사진 찍는 모습을 보자 두 손을 들어 흔들며 반겨주기도 했다. 음... 영상은 아닌데.
오늘 저녁은 식당이 아닌, 바르셀로나의 대표 재래시장 보케리아 시장 (Mercat de la Boqueria)에서 시장 음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해외여행 중 시장 투어는 필수 코스라 기대감에 가득 차 골목길을 걷는 발걸음마저 가볍다. 종종 우리에게 인사하는 벽화마저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보케리아 시장의 정식 명칭은 Mercat de Sant Josep de la Boqueria인데 그냥 줄여서 보케리아라 불린다. 기록에 이 시장이 처음 등장하는 것이 1217년이라 하니 8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이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36년부터라고 하고 1914년에는 지붕을 얹어 날씨에 상관없이 장이 설 수 있게 되었다.
위치도 여행자가 많은 람블라스 거리를 끼고 있어 저녁을 먹기에 애매한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도 이 북적거림에 몸을 맡겨 보기로 했다. 산처럼 쌓인 과일들이 우리를 유혹했고, 그 앞 가게 파는 과일 주스의 유혹에 넘어가 주스를 구입해 들었다. 이럴 때 약해지는 짱구언니는 미국 어딜 가도 마실 수 있는 평범한 망고 주스를 나는 특별한 수박 주스를 선택했다. 원샷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양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싱싱한 과일로 만들어서 그런지 맛은 훌륭했다.
시장 구석구석에는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가 있었다. 순대같이 생긴 음식, 엘에이 갈비처럼 생긴 음식과 절임 식재료는 여행자에게는 큰 메릿이 없어 그냥 구경만 했다. 다음으로 우리의 눈길을 끄는 집은 하몬을 파는 집이었는데, 숙성된 뒷다리를 걸어놓고 썰어서 판매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보케리아 시장을 대표하는 인기 있는 상품답게 하몬을 파는 집이 꽤 많았는데 유독 한 집만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하몬을 구입하고 있었다. 줄을 서는 것을 별로 즐기기 않는 우리지만 우리도 대열에 동참해 14유로짜리 프리미엄 하몬을 구입했다. 5J라는 이름의 가게는 진공포장이 되어있는 하몬을 종이에 돌돌 말아서 아이스크림콘처럼 담아주었는데, 다른 가게에 비해 훨씬 보기도 좋고 먹기도 편하기에 사람들에게 당연히 인기가 많았다. 같은 품목을 파는 것인데도 조금만 발상의 전환을 하면 이처럼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몬은 예상보다 부드럽고 풍미가 깊었다. 멜론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과일가게에 가서 멜론을 사는 일은 자제했다.
우리의 발걸음을 멈춘 곳은 콘펙셔너리 (confectionery) 가게였다. 보기 힘든 동양 아주머니가 주인이었는데 남대문 시장의 '골라 골라'를 방불케 하는 호객 행위로 사람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귀여운 동물과 곤충 모양의 콘펙셔너리를 불쌍해서 어떻게 먹냐며, 우리는 생명력이 없는 견과류가 들어간 초콜릿 두 개를 집어 들고 10유로를 강탈당했다. 해외여행 중 들어가는 비용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인데... 10유로짜리 초콜릿 두 개는 조금 마음이 아파서 건네는 돈을 보낼 수 없는 연인처럼 꽉 잡았다 놓아주어야만 했다.
시장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식재료 위주의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유난히 사람이 많은 해산물 집이 있어 탐색을 해보니, 즉석에서 굴을 까주고 있었다. 가격도 좋은 생굴을 우리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바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굴을 주문했다. 예전 같으면 짱구언니가 굴을 먹지 않으니 눈치를 봤어야 하는데, 뉴욕 첼시 마켓에서 생굴의 세계에 눈을 뜬 짱구언니는 이제 물어보지 않아도 당연히 먹는 줄 알고 달려든다. 굴이 신선하고 맛있어서 '토렌스의 작은 손' 짱구언니는 굴을 까는 총각에게 팁까지 하사했다.
육해공 식재료 집들을 돌아보며 갑자기 응? 아까 봤던 집들이 다시 나온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이 미로처럼 되어 있어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개미굴 같은 콘셉트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장사가 잘되는 종목을 파는 가게들만 살아남았고, 목이 좋은 곳에서 인기 품목을 팔아 자본을 확충한 가게들이 뒤쪽에 인적이 뜸한 가게들을 구입해 입점을 한 모양새였다. 우리가 하몬을 사 먹은 5J도 후문 쪽에 입점해 똑같은 품목을 팔고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시장 안에서도 부의 편중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케리아 시장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오징어튀김집에 멈춰 섰다. 다양한 튀김들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우리는 오징어 다리 튀김 하나만 구입했다. 살짝 너무 기름지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부산 깡통시장에서 먹었던 비빔당면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넷이 같이 먹었는데 나 혼자만 더운 여름의 식중독에 대한 걱정을 했다가 나만 된통 아팠던... 생긴 것은 철근을 씹어 먹을 것처럼 생겼는데 소화기관은 부잣집 도련님처럼 만들어주신 부모님 덕분에 탈이 날까 걱정이 되어 오징어튀김에게서 슬며시 멀어졌다.
시장 구경은 즐겁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지만, 한 시간 조금 넘게 돌아다니며 지출한 금액이 60유로를 넘는다. 괜찮은 식당의 한 끼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결론적으로 이곳은 그냥 일반적인 시장이 아닌, 여행자를 위한 화려한 여행자의 덫 같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