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바르셀로나 여행: 피카소 미술관

좁은 골목길 끝에서 만난 피카소

by 꿈 공작소

간밤에 비가 내렸다. 우리가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동안 딱 하루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그 예보가 이렇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줄이야. 늘 화창한 날씨를 선사하던 바르셀로나의 아침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촉촉한 공기에 바람이 불 때마다 한기가 느껴졌다. 하루아침에 여름에서 겨울로 시간 이동을 한 듯 피카소 미술관 향하는 골목길 사이로 치고 들어오는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다.

IMG_E0602.JPG?type=w466
IMG_E0603.JPG?type=w466
IMG_E0604.JPG?type=w966
IMG_E0605.JPG?type=w466
IMG_E0606.JPG?type=w466

오늘도 오픈 런을 했다. 걸음이 빠른 것도 아닌데 도착을 하고 보니 시간이 남았다. 광장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할까 생각하다가 입구부터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에 문 앞에서 기웃거렸다. 어디선가 나타난 경비 아저씨가 나와 손을 좌우로 저으며 정문은 다른 쪽에 있다고 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건물을 돌아 골목길로 돌아서니, 정말 거기에 정문이 있었다.

IMG_E0608.JPG?type=w966

유럽 국가들 (특히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에서는 종종 이해하기 힘든 일들과 마주한다. 예를 들면 화장실 문 잠금장치가 오른쪽을 향해 달려 있는데 문을 잠그려면 반대쪽인 왼쪽으로 돌려야 한다든지. 문을 밀어야 하는 상황에서 당겨야 한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피카소 미술관의 입구도 넓은 광장이 있는 곳에 있지 않고 대신 좁은 골목길에 위치해 있어, 줄을 서있다가 청소를 하는 사람이 오거나 하면 줄이 흩어졌다가 다시 만들어지곤 했다. 게다가 입구는 인터넷 예약자, 단체 관광, 그리고 당일 현장 구매 이렇게 셋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일단 미술관 안에 들어서면 오디오 가이드 빌리는 곳으로 무조건 가도록 동선을 만들어 놓아 서로 다른 입구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 마구 뒤섞였다. 오디오 가이드 필요 없다고 했더니, 그럼 아까 들어왔던 문 옆에 있는 계단을 통해 미술관으로 들어가란다... 입장할 때 미리 구별하면 될 일을 굉장히 효율적이지 않게 만드는 느낌이다.

IMG_E0610.JPG?type=w466
IMG_E0618.JPG?type=w466
IMG_E0615.JPG?type=w966 Science and Charity-마스터피스 중 하나

살짝 기분 나빴던 것은 뒤로 제쳐놓고, 피카소 미술관을 돌아보자.


피카소는 파리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태어나기는 스페인 남부의 말라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풀네임은 무려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피카소'인데 과연 그의 부모는 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말을 하기 전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운 피카소는 청소년기를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그 이유로 훗날 그의 초기 작품 900점을 바르셀로나에 기증했고 그 덕에 이 미술관이 만들어졌다.

IMG_E0613.JPG?type=w466
IMG_E0620.JPG?type=w466
IMG_E0617.JPG?type=w966

미술관에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추상화뿐 아니라, 피카소가 젊은 시절 그린 스케치부터 시작해 인물화, 정물화 그리고 판화까지 이름있는 화가로 자리 잡기 전까지의 그의 시도와 노력이 들어가 있는 작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의 후기 추상화 작품보다 초기 작품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의 천재성이 더욱 확실히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IMG_E0622.JPG?type=w466
IMG_E0629.JPG?type=w466
오른쪽 작품 Madame Canals는 피카소 작품이 아닌 것 같다.
IMG_E0627.JPG?type=w966 The Dead Woman

우리는 그의 그림의 시대를 따라, 또 리스트를 작성해 간 마스터피스를 따라 미술관을 관람했다. 그러다 마스터피스 중 하나인 The Dead Woman이라는 작품을 만났다. 이는 피카소가 청색 시대라는 시절을 지내고 있을 때 그린 작품인데, 청색 새대는 그의 1901년부터 1904년 작품 활동 시기를 일컫는다.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파리로 넘어가 자신이 지금껏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 청소년 시절 절친이었던 카를로스 카사게마스(Carlos Casagemas)의 자살 이후 깊은 우울에 빠졌던 그의 심리 상태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검푸른 색이나 짙은 청록색의 색조를 띄고 있고, 작품의 대상도 매춘부, 거지, 알코올 중독자와 같이 음울한 소재였다.

IMG_E0631.JPG?type=w966
IMG_E0634.JPG?type=w966

그렇게 피카소 그림의 시대별 변천사가 잘 정리된 전시실을 따라가다 보면 이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벨라스케스의 Las Meninas(시녀들)를 피카소 생각대로 재해석한 연작을 만나게 된다. 이게 원체 대작인 관계로 이 작품들을 그리다가 힘이 들면 칸 (Cannes) 바다가 보이는 자신의 집 발코니에서 볼 수 있는 비둘기들을 연작으로 그렸다. 그래서 그는 비둘기 연작을 Las Meninas(시녀들)의 한 부분으로 봤다고 한다. 분위기는 같은데 조금씩 다른 그림들. 그의 기분에 따라 색상도 다르고 비둘기의 모습도 각기 다른 것이 특이했다.

Las_Meninas,_by_Diego_Vel%C3%A1zquez,_from_Prado_in_Google_Earth.jpg?type=w966 벨라스케스의 Las Meninas(시녀들)

Las Meninas(시녀들)은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56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작품에 수수께끼 같은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어 가장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작품 중 하나다. 어떤 것이 실재하는 것이고 어느 것이 환상으로 그려진 것인지 불확실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IMG_E0636.JPG?type=w966 원작하고 가장 비슷한 작품
IMG_E0637.JPG?type=w966
IMG_E0639.JPG?type=w966

피카소는 어느 날 이 그림을 벨라스케스의 해석이 아닌 자신의 해석으로 그려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해서 그려진 연작이 무려 58점이나 된다. 작품들에서 피카소의 후기 화풍을 느낄 수 있어 재미있었고, 작품을 완성한 날짜들이 깨알같이 기록이 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은 필받아서 서너 점씩 그리기도 했던 그의 괴짜 같은 모습을 상상하니 더욱 즐거웠다. 작품을 통해 피카소의 기분 변화까지도 엿보는 느낌이었다.

IMG_E0642.JPG?type=w466
IMG_E0643.JPG?type=w466

그렇게 미술관 돌아보기를 마쳤는데 마스터피스 리스트에서 두 점이 부족하다. 그의 작품 시기를 더듬어 되돌아갔는데도 작품이 없다... 할 수 없이 미술관 직원 찬스를 썼는데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 닭하고 오리하고 대화하는 것처럼 꼬꼬와 꽥꽥의 소통이다. 영어로 된 리스트를 보여줘도 모른단다... 인터넷을 뒤져 이미지를 보여줬더니 그제야 전시 안 한단다. 대여를 한 것이냐 물어봐도 모른단다. 대체 유니폼은 왜 입고 있는 건지...

IMG_E0644.JPG?type=w466
IMG_E0645.JPG?type=w466

미술관을 떠나기 전 중정에서 시간을 좀 보냈다. 뮤지엄 건물 자체가 고딕 양식의 개인 저택 다섯 채를 연결해 만든 곳이라 보통의 미술관하고는 차별화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특별했다. 미술관이라기보다는 귀족이 살던 성을 탐험하는 것 같았다. 명성이 있는 화가의 이름을 건 미술관이라 화려하리라 예상을 했는데 꽤 소박했고, 피카소라는 특별한 화가의 어릴 적 모습부터 작품 성장과정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좋았다. 미술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들러야 할 바르셀로나의 명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꿀꿀해지는 것이 비가 다시 내릴 것 같다. 빨리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오늘 하루 온전히 여행을 할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5 바르셀로나 여행: 플라멩코 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