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바르셀로나 여행: 향수병

광장의 오후와 라멘의 위로, 그리고 키스의 벽

by 꿈 공작소

구엘 궁전에 돌아본 뒤, 구엘 궁전 앞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러 미국으로 돌아가 선물할 것들을 좀 사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Reial광장으로 갔다. 미국에는 유럽처럼 광장문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광장 노천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은 항상 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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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Glaciar)라는 1922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역사와 전통 때문이라기보다는 오렌지 색상의 파라솔이 마음에 들었고, 광장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리 주위에 앉은 여자들이 담배하고 전생에 원수지간인지 이 세상 담배는 모조리 다 피워서 없애겠다는 느낌으로 줄담배를 피워댄다. 나도 예전에 담배를 피울 때는 기차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줄담배를 피우기는 했지만, 해도 너무 했다. 무슨 너구리를 잡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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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는 남자보다 여성의 흡연율이 훨씬 높다고 하는데, 이는 여권 신장을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 게다가 광장 테라스 노천 테이블은 흡연자를 위해 만든 것이기에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흡연에 관대한 스페인에 폐암 발병률이 높을 것이라 생각해 찾아보니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도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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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스페인에서 맛을 붙인 판타를 시켰다. 스페인 판타는 청량음료와 주스의 중간쯤 어딘가에 있는 음료로 참 맛있었다. 청량음료의 왕이라 불리는 미국은 왜 이런 음료를 만들지 못할까? 어쨌든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1일 1젤라토와 함께 하루 최소 한 병씩은 마셨던 것 같다. 늦은 점심이라 저녁을 먹기 위해 과하게 먹지 않고 먹물 빠에야와 오징어 요리를 시켰다. 그럭저럭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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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어김없이 젤라토 하나를 구입해 오늘의 약속을 지키고, 짱구언니 회사 식구들에게 선물할 것들을 구매하기 위해 Torrons Xocolates를 찾았다. Torrons Vicens라는 사람이 1775년부터 초콜릿과 누가 (Nougat)를 만들어 팔았다고 하니 믿음이 갔다. 샘플 하나를 먹어보고는 그 맛에 반해 바로 구매 결정. 그러나 가격은 만만치 않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짱구언니는 열심히 자기 부하 직원들에게 나누어 줄 것들을 챙겼다.


'저기요... 이거 겁나게 맛있는데 남편 복지도 좀 생각해 주세요.'


ㅎㅎ 사탕가게에서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짱구언니를 졸라 내가 먹을 맛있는 누가도 득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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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에 다시 바르셀로나 거리에 나섰다. 오늘 저녁은 특별한 스케줄이 없기에 지금껏 돌아보지 못한 덜 중요한 (Minor)한 곳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저녁 8시가 거의 다 되었는데도 초저녁 같은 느낌이 든다. 젊은이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청춘을 불태우고 있었고, 식당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즐거운 저녁으로 활기가 넘쳐 보였다.



먼저 Casa Calvet에 들렀다. 가우디의 초기 건축물로 알려진 이 건물은 의뢰인 칼벳 아저씨 집으로 그리고 연립주택 형식으로 지었다. 기존에 있던 건물들 사이에 지어야 했기에 가우디의 창의성이 가장 떨어지고, 그의 건축물 중 가장 일반적인 건물로 여겨진다. 개인 소유라 내부는 돌아볼 수 없고, 굳이 안쪽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China Crown Barcelona에서 저녁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오늘은 중국요리를 먹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저 건물 벽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성였다. 발코니 장식 같은 것을 잘 뜯어보면 바뜨요 아저씨 집에 있는 것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칼벳 아저씨 집 바로 옆에 있는 집도 잘 지었는데 잘 생긴 연예인 옆에 서면 민간인의 외모가 오징어가 되듯, 칼벳 아저씨 집과 비교되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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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시간이 다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뜨요 아저씨 집을 다시 한번 찾았다. 소문처럼 용의 비늘이 반짝이지는 않았다. 역시나 소문은 소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바뜨요 아저씨 집이 석양에 반짝 반짝 빛나며 겁나게 멋이 있었다면 그곳에서 시간을 더 보냈을 텐데... 감동이 내부 구경을 할 때에 미치지 못했다. 그때 짱구언니가 제안을 하나 한다.


'바르셀로나에 왔는데 자라 (Zara)도 한 번 안 가?'


엉? 당연히 가야지. 부랴부랴 그리 길지도 않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자라에 도착을 했는데... 아! 구 선생... 분명 10시에 닫는다고 해서 왔는데 9시에 문을 닫았네. 왜 이렇게 맨날 배신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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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욕구를 한껏 끌어올렸던 짱구언니는 적잖이 실망을 한 모양이었다. 의욕상실... 그냥 근처에서 대충 주전부리를 집어먹고 호텔로 가잖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향수병이 나를 덮쳐왔다. 집에 가고 싶고, 고양이들이 보고 싶고, 소울 푸드가 먹고 싶어졌다. 해외에서 소울 푸드를 찾을 때는 맥도날드를 가든지 아니면 중국 식당에 가서 매큼한 수프를 먹는 것이 해결책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중국 음식이 당기지 않는다. 그래서 검색을 해 라멘집 하나를 찾았다. 숙소에서 꽤 떨어져 있고,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 찾아가야 하는 곳. 살짝 외진 곳에 있는 곳이라 어둠이 내린 골목길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향수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꼭 찾아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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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비도 내리고 해서 그런지 괜히 센티멘털 했었나 보다. 특히 집을 떠난 지 일주일 정도가 되어가면 몸이 피곤해지며 정신적인 침체가 오는데 이날이 딱 그랬다. 촘촘히 세워 놓은 여행 계획을 점검하고 신경 써서 진행하다 보니 탈진 상태가 오는 셈이다. 우리가 찾아간 백인들이 하는 Koku Kitchen은 그런 모든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씻어주는데 한몫을 했다. 교자와 차슈 라멘으로 몸과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내 몸에 Sweet Spot이라는 것이 있다면 시기적절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그 지점을 마사지해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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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오는 길. 무작정 걷다 보니 항상 사람이 많아서 그냥 지나쳤던 키스의 벽 (El Muro del Beso)을 만난다. 바르셀로나 시민 4천여 명의 행복했던 순간의 기록을 모자이크로 만든 것인데, 작품 아래에는 "키스의 소리는 대포 소리보다 크지 않지만, 그 메아리는 더 오래간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향수병도 치료한 낭만적인 밤. 우리도 그 긴 메아리를 이어가 봤다. 아주 길게. 25년 차 부부는 좀 부끄부끄 한 일을 길거리에서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참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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