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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Sep 07. 2023

‘나이 듦’에 대해서

’나이듦‘의 무서움과 ‘젊음’에 대한 강박 (episode -1)

‘정열이란 정말 멋진 것이다. 그것은 때때로 젊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는 말은 유머요, 웃음이다. 스스로가 덧없는 저녁 구름의 유희 같은 존재인 것처럼, 모든 일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항상 세상을 관망하며 비유로 바라보는 것, 사물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헤르만 헤세- 청춘이란 무엇인가 중).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각자의 인생관은 다양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신념이 확실한 이들을 존경해오고 또 그런 이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 유동성으로 인해, 신념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나는 허상의 것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내가 사랑하는 허상 중에서 으뜸인 것은 ‘젊음’ 그리고 ‘나이 듦’에 대한 것이다.


나이 듦은 세상에서 내가 죽음만큼이나 두려워 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책 ‘ 청춘이란 무엇인가’ 에서 그의 두려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즉 자신의 삶과 생활의 무상함에 대한 깊은 불안감이다‘   나이가 들어 쭈글해지는 얼굴을 바라보는 매일의 아침도 두렵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헤르만 헤세가 언급하듯 생활의 무상함을 직면할 때의 나의 모습이다. 사람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은 막연히 마주하게 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 선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행에 대해 생각해보면 된다. 여행이란 가서 경험하는 현재를 지내는 것보다는 그 여행을 위해 짐을 싸거나, 나를 위한 옷을 살 때등과 같이 미래를 기대하는 것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내게 젊음이 소중한 이유는 경험한 것보다는 경험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고, 경험하지 않은 것들이 내 인생에는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경험하지 않은 것들 중에서는 나를 뒤바꿔놓을 혹은 나를 이끌어줄 진주같은 경험들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 듦’에 대한 공포를 우리 할머니로부터 처음 배웠다.

우리 할머니는 아팠다. ‘아팠다’라는 서술보다도 우리 할머니를 더 잘 설명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아픈 다리는, 그녀의 활동범위를 제한했다. 잘 들리지 않는 귀는 그녀의 소통범위를 제한했다. 이제 그녀에게는 5평 남짓한 작은 방이 남았고, 그녀가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은 이제는 구식이 되어버린 배불뚝이 텔레비전을 통해서였다. 24시간을 그녀는 그의 방에서 지냈다. 1년에 2번은 그녀의 딸들이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러 왔다. 바쁘면 그마저도 어려웠다. 어려서부터 그녀는 나와 함께했는데, ’나이 듦‘의 공포를 그녀를 통해 인식했을 때는 내가 10살 때의 일이다.그때는 그녀의 인생이 10년도 남지 않았을 때이다.


나는 자주 그녀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왜 그녀의 인생은 이리 기구한가. 어떠한 희망도 목적도 없는 그녀의 무상함은 나를 그 오랜 기간동안 괴롭혔다. 테레비전을 바라보고, 그녀의 무심한 손자들을 보는 것을 낙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어떤 삶일까. 항상 의문이였다. 그건 나를 꽤나 철학자로 만들었는데 오랜 기간 그 이유를 고민한 결과 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건 그녀가 늙었다는 사실  그것 뿐이였다.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건 삶의 무상함을 받아들이는 것이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나이드는 건 너무나 무서운 일이였다. 그녀의 죽음을 바라보는 건 나에게는 그리 끔찍하거나 충격적인 것은 아니였는데. 그 이유를 사후적으로 생각해보니 나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녀에게 주어진 너무나 오래된 죽음과도 같은 무의미와 나이 듦을 봐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듦’은 유년시절 나에겐 누구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못할 만한 공포와 무상함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젊음’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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