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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Oct 11. 2023

생일인데 군대인점에 대해서

생일이라는 날에, 행복했다던가 좋았다던가 뿌듯했다던가와 같은 그런 뻔한 말들을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나는 내 요즘의 가장 기쁨인 신병 친구들에 대해서 적기로 한다. 공군에는 여러가지 특기들이 있고 여러가지 일들이 있지만, 나는 독특하게도 가장 군인답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바로 신병들을 교육하는 일이다. 사실 교육이라기 보다는 육아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어릴 때부터 육아라고 하는 것은 무릇 아침에는 직장으로 출근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출근하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내 현 상태도 그러하다. 일과중에는 신병들을 교육하거나, 그 준비를 마치고 저녁에 와서는 여러 신병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거나 잘 생활하는 지 감독하는 일들을 한다. 그건 내게 꽤 큰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지만  언제는 기쁨이기도 하다.

10.10 생일을 앞둔 어느 9일 평화로운 날 좀 더 평화로운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쪽을 바라보니 신병 두명이 왠지 바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서있었다. 개인적인 시간에. 방해받지 않고 싶은 마음에 살짝 찡그리다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의 가면을 쓰고 살짝 미소지으며 그들을 쳐다보는데 그들의 손에는 쿠크다스와 프로틴 바 한 세트가 쥐여있었다. “생활관장님 생일이라고 하셔서 ㅎㅎ…” ‘항상 싫은 소리하고 찡그리고 뭐든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따뜻함을 느꼈던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곧 그들의 어색한 미소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들의 이름을 물어보는데 하필이면 이름도 은상이 범상이었다. 형제가 아니냐는 말에 둘다 고개를 심하게 가로지으며 아니라고 했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10.10 생일에는 신병교육이 끝나고 원래 대대로 복귀했던 신병 3명이 내가 머무르는 신병 생활관에 들렀다가 걸려서 감점을 받았다는 소식을 당직병에게 전달받았다. 그 친구들이 내 생활관에 올일이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데, ‘아 다른게 아니라 김훈민 상병님 생일이라고 하셔서 큰 건 아니지만 선물을 드리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걸려서…’ 나를 생각하면서 오예스나 초코파이 같은 것들을 사는 그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따뜻해진다. 떨리는 마음으로 과자들을 들고 낯선 생활관으로 올라왔을거고, 텅빈 방을 보면서 아쉬워했을거고, 괜히 먹은 감점에 서운해 했을 거다. 훈련소 물이 아직 덜 빠져서 조금은 겁에 떨리는 여섯 개의 눈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들을 했다.

저녁에는 카톡이 와있었다. 할.이.야.기.가.있.단.다… 서프라이즈 따위는 할 지 모르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후임의 카톡을 받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초코파이와 몽쉘로 쌓여진 탑에 화이트 빼빼로로 초를 대신한 수제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었다. 걔네들은 케이크를 살 수 없는 상황이라 이거라도 준비했다고 했다. 정성으로 만들어진 그 케이크를 감동한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조명이 꺼지더니 크고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가 등장했다. 케이크 불을 불고 케이크를 사람들과 먹으면서 나는, 그 조잡한 수제 케이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제 케이크를 하나 하나 올려가면서 동기들과 웃음을 나눴을 그 순간을 상상하면서 몰래 큭큭 웃어버렸다.

사실 10.10 밤에는 유독 간부님들이 우리 생활관에 많이 들렀던 날이었다.  나는 한시도 쉬지 못하고 그들을 따라다니며, 혹은 피해다니며 눈치를 봤다.아마 중간중간 날 감동시켜주려 했던 걔네들이 없었다면 진짜 서러워서 그날을 내 최악의 생일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오래오래 걔네들과 함께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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